fragility 연약함에 대해
학부 때 음악을 한다며 주변을 어쩍거리던 얼굴 하얀 학생이 있었다.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가정주부가 된 어머니는 늘 아프셨다고 한다.
자상한 아빠가 돈도 벌어오면서 집안일도 하셨는데
둘째 아들이자 막내인 그는
딸 노릇을 하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사춘기 때 우울한 히키고모리로 살았다고 했다.
기타에 심취했던 히키고모리여서 다행이었다고 했다.
마냥 즐겁고 기쁘기 만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와는 물론 많이 다르다.
하자 센터를 시작할 즈음 대학원생이었던 아키는
지금 하자 센터 기획부장이다.
그는 대학원생부터 내가 하려는 일에 자주 브레이크를 걸었다.
내가 사람의 ‘잠재력 (potential, 뭔가를 해낼 가능성)만 본다며 못 마땅해 했다.
연약함 fragility를 보자고 말했다.
우리 둘의 차이를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다.
나는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대번 알아본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끌린다.
자율적인 존재로 자신의 가능성을 한껏 발휘하여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살고 싶다.
그런 여성들이 들불처럼 일어난 1980년대에 페미니스트 운동을 했고
그런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온 1990년대에 청소년 운동에 참여했다.
청소년들에게
기성세대 눈치를 그렇게 살피지 않아도 된다고,
‘서태지’처럼 하고 싶은 것 하면 된다고,
자신의 잠재력을 한껏 발휘할 곳에 만들어 행복하게 살라고 부추겼다.
급기야 하자 센터까지 만들었고
자신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한껏 살리고자 한 청소년들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갔다.
이십년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
아키 말대로 잠재력과 가능성을 말하는 자들은 위험해 보인다.
먹히느냐 먹느냐의 게임을 하는 세상이 왔기 때문이다.
돈을 만드는 거대한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의 기를 빨아먹는 흡혈귀.
아니면 기가 빨리는 좀비.
흡혈귀도 좀비도 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이다.
잠재력이 아니라 연약함을 보면서 갈 때가 온 것 같다.
연약함에서 시작하는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 아니라
‘파상’의 시대를 직시하고 버티는 것,
오래 버티다가 비상하는 것.
아키가 가까이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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