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데우스 시대의 축복
하자 센터 목화학교에서 담임을 했던 교로부터
책을 썼노라고, 추천의 글을 부탁한다고 편지가 왔다.
육아 휴직 후 하자를 떠난 친구이다.
출산사에서 프린트물로 보내준 원고를 읽으며
훌륭한 시민이자 시인으로 성장해가는 그를 만난다.
기꺼이 추천사를 썼다.
<자본주의 비무장지대를 만들고 있는 시인의 기도>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빛나던 때가 있었다. 그들이 펼친 자리마다 마술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안티미스코리아 축제’에서는 아름다움을 한껏 뽐낼 수 있었고 ‘월경 페스티발’에서는 위축된 몸을 한껏 뻗어볼 수 있었다. 그렇게 1990년대부터 2000년도 초 대학 캠퍼스는 페미니스트 열기로 가득했다. 최고 인기 교양 과목은 ‘여성학’이었으며 학내 가장 활발한 활동 부서는 총여학생회였다. 대학 때 페미니스트 강좌를 들은 이들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던 성폭력을 더 이상 묵인 않겠다며 ‘반성폭력 규약’을 만들었고, 데이트 비용을 나누어내는 ‘평등 데이트 가이드북’도 마련했다. 총여학생회에는 남학생들도 있었다. 그들은 흑인해방운동에 참여하는 백인들처럼 때로는 환영을 받았으나, 때로는 눈칫밥을 먹으며 총여 활동을 했다. 이 책의 저자 서한영교 같은 남자 말이다. 이들은 폭력적 남성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아니면 하지않기로 한 남자들이었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는 슬로건을 생활신조로 받아들인 그 당시 청년 페미니스트들은 신자유주의 광풍을 맞은 지금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의 전환을 이루어내고 있다. 이 책 저자의 표현을 빌면 “정체성으로서의 페미니스트라기보다 과제와 책임을 떠맡아 응답하는 자”로서 말이다. 그 중에서도 서한 영교는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응답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이 책에서 보듯 그는 매번 결단한다. 목적을 향해 달리기 위한 근대적 존재로서의 결단이 아니라 해서 안 될 일을 하지 않기 위한 탈근대적, 탈인본주의적 결단 말이다. 눈이 멀어가는 애인의 곁에 머무러기로 했고 돌봄을 도맡는 ‘남성아내’가 되기로 했다. 100일간 아가를 품에서 키우고 매일 기도하였고 신뢰할 수 있는 선배 아빠를 곁에 두면서 자기 속의 여성성을 키워냈다. (취)약한 아내를 선택함으로 그는 ‘금남의 세계 (돌봄)’에 진입할 수 있었고 육아의 시간을 통해 ‘마술적 마주침’(지젝)이 일어나는 실존의 세계에 들어가 구원을 얻는다. 강함이 아니라 (취)약함을 선택한 그는 남성적 동일성을 위해 억압했던 자신의 여성성을 찾았고, ‘여성스러움과 게이스러움과 장애인스러움을 긍정’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선언한다.
지구에 돈만 벌러 오지 않았다.
삶이 아닌 삶은 살지 않겠다.
시를 살아내겠다.
그렇게 시인 서한영교는 우리 곁에 왔다. 서로를 아끼고 돌보는 시간, 용서와 사랑, 분노와 용기, 정성으로 사는 삶, 생사를 오가는 신화의 세계, 더 큰 질서와 연결하는 기도, 천복을 따르는 삶의 이야기보따리를 가지고 왔다. 그의 용감무쌍한 삶이 도달한 결론은 자급과 공유의 원리이다. “선물, 잘 받고 잘 준다. 공유, 나누어 쓰고 빌려 쓴다. 생산, 가능하면 직접 만들어 쓴다.” ‘자급’의 삶이 ‘공유’와 만날 때 인류는 구원 받을 수 있다. 그래서 기본소득 논의가 시급하고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긴급하다. 그런데 그 것을 실현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온몸으로 하는 시인의 기도에 힘입어 “각자의 몫을 잘 감당하자”고 말하고 싶다.감히.
2019년 6월 15일 제주 해변에서 조한
그리고 며칠 뒤 그가 보낸 답장을 읽으면서 또 한번 그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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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이 늦었습니다. 원고마감이 다가온 글들을 헤치우느라
어제와 오늘을 정신없이 보냈네요. 추천사 잘 받았습니다.
저는 가끔 제가 조한을 터무니없이 존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요.
청소년기에 읽었던 글읽기와 삶읽기, 한국의 여성과 남성, 같은 책들의 저자.
대안교육운동가로서 보여주셨던 탁월한 시대읽기의 학교와 마을을 제시하는 제안자.
삶의 웅숭한 깊이와 함께 열렬함을 몸에 지닌 페미니스트.
여러 레이어의 조한을 합쳐보면 인간의 삶이란 어떠해야 하는 걸까? 에 대해서
여러날 애태우며 생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조한을 향한 저의 터무니없이 큰 존경심을 알고, 작업장학교 판돌들이 저를 골려먹기도 했지요. ^^:
오늘 다시금 조한의 추천사를 받고
제 등 뒤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손바닥 하나가 저를 안아주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군분투해나가며 시인과 시민으로서 살고자 하는 모든 친구들이 떠올랐습니다.
격려해주고 싶은 모든 친구들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다른 이들을 격려하며 지내겠습니다.
추천사 정말 감사해, 요. 오래 건강해주셔요. 2
019.06.18. 성미산마을 자락에서 교오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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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메일이 내게는 연애편지이다.
낭만적 사랑 같은 것은 안 해도 된다.
존경할 사람을 가진다는 것이 축복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한다.
모두가 신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이 호모데우스의 시대에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 아닌가?
존경하는 마음이 우리를 괴물이 되지 않게 도와준다.
존경의 마음을 느끼며 감사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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