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한 대학 시절 이야기
그때 그 물고기들
- 조혜정 선생님과 함께 한 (그리고 떨어져 지낸) 지난 스무해 동안의 이야기들: 1993-2013
“What do you have there?”
“Just a few fish I caught yesterday.”
- Hermann Hesse, “Beneath the Wheel”
1. 시작 - 1993년 봄, 대학 1학년
사실 모든 것은 헤르만 헤세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가 어떻게 그 시커면 폐공장 같던 고등학교 안에서 나를 지켜주었는지, 그리고 소설 속에서 기벤라트가 낚아 올린 물고기들이 왜 내 삶에 그토록 소중한 행복이었는지를 이야기하다보니 우리의 첫 책이 써졌고, 사회라는 호수에서 만난 물고기들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그렇게 선생님과의 스무해가 시작되었다.
2. 벙어리에서 밴드까지
캠퍼스에 여름방학이 찾아올 무렵, 인사 차 연구실에 들린 내게 선생님은 문득 “나 대관령 캠프 가는데, 같이 갈래?” 라는 질문을 해오셨다. 이 어딘가 한없이 무심해 보이면서도 일견 나른해보이며, 앞뒤 사연 없이 안전한 듯 깊숙히 위험한 이 “조한 Style” 의 질문에, 나는 결국 무슨 캠프를 왜 가는지도 모른 채 “또하나의 문화” 청소년 대안학교 Camp에 대학생 도우미로 참석하게 된다. 그 강원도의 목장에서 만난 반짝반짝 빛나는 총천연색의 아이들의 목소리에 매료되었고, 아이들은 할말을 잃은 채 그들을 관찰하는 내게 “벙어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애들이 이름을 얼마나 잘 짓는지, 동욱은 벙어리라며?” 한없이 맑게 웃으시는 선생님의 뒷편으로 끝없이 펼쳐진 그 넓디넓은 목장의 풀밭이 눈에 선해, 지금도 나는 조용히 미소짓는다. 이 때 선생님을 따라 함께 나와 함께 목장에 온 대학생 중에 서울대 사회학 선배가 눈에 띄었고, 그 즈음이 내가 고교 동창과 본격적으로 Band를 시작할 때였다.
3. 음악, 사회학, 그리고 수많은 프로젝트들
잠시나마 음악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것은 지금도 생소하게 느껴질만큼 의외의 일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나자마자 만든 “전람회”라는 밴드로 대학가요제에서 상을 받은 덕이었다. 군대에 낭비한 시간을 빼고 나면, 내가 실제 음악을 하며 보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96년 3집을 끝으로 사회학에 몰입하면서, 실은 그후로 20년간 마치 담배를 끊듯, 그렇게 음악을 끊고 살았다. 그러나 그 후로 선생님과 함께 한 무수히 많은 프로젝트들을 돌아보면, 음악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공통분모로서 늘 우리와 함께 했다. 그런 프로젝트들을 몇개만 짚어본다:
3-1. 선생님과 함께 한 가장 골치 아팠던 프로젝트는 아마도 서울시와 함께 만든 하자센타다. 관과 함께 일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던 내가 이 일에 그토록 깊이 “말려” 들어가게 된 것에는 물론 조한 특유의 “엮기 신공”이 큰 역할을 했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건재하다는 이 문화센타를 만들기 위해, 그 숱한 공무원 여러분들을 “모시고” 선생님과 함께 쌓은 만리장성은 달에서도 보일 것이다.
3-2. 아마 개인적으로 가장 난리였던 프로젝트로는 “애들이 그 표를 이미 다 팔아버렸다는데 나 어쩌지..?” 라는 무시무시한 질문으로 시작된 백양로 난장과, 그 후로 이어진 “일할 애들은 많으니까 공연 하는 법만 가르쳐주면 돼” 로 시작된 여학생 문화포럼 행사를 꼽아야 할 것이다. 이 두 막장 공연 프로젝트로 인해 나는 거의 모든 면에서 너덜너덜해졌지만, 아마도 선생님과의 전우애가 가장 깊어진 계기가 되었을 것도 같다. “조한 화재의 소방수” 라는 영예로운? 호칭도 이 프로젝트들을 통해 들었던 것 같다. (그 엄청난 양의 불들을 우리가 어떻게 다 껐는지, 그 동백꽃 같은 스토리들을 과연 다 아실까 라는 점은 지금도 무척 궁금할 때가 있다.)
3-3. 가장 예상하지 못했던 프로젝트는 역시 문화관광부/교육부와 함께 한 대한민국 청소년 헌장일 것이다. 수많은 사연을 뚫고 지나다 보니, 어느새 나는 몇주 밤을 하얗게 새우고 난 뒤 세종문화회관에 앉아 “내가 쓴” 대한민국 청소년 헌장의 의의를 발표하고 있었고, 행사장 안엔 TV 카메라와 신문 기자들이 가득했었다. 이 또한 어떻게 시작된 일인지 정확히 설명할 방법은 없다. 희미하게 “청소년 얘기 하러 가는데, 샤브샤브 먹을래?” 라는 독특한 질문에 “음... 네” 라는 엄청난 대답을 해버린 기억은 있다.
4. 롤러코스터. 그후 이어진 모처럼의 휴식들
연세대학 미식축구팀이 전국우승을 한 1999년, 사회학 박사 유학을 준비하던 나는 우연히 그런 직업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경영 컨설턴트”라는 명함을 들고 전세계적 장똘뱅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무서운 속도로 돌아가는 롤러코스터에 올라타니, 14년이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래도 그 동안 2-3년에 한번씩은 꼭 선생님과 후배 학생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이자 위안이었다. 특강이든 대담이든 그저 짧은 Tea time이든, 이러한 순간들은 롤러코스터에서 잠시 내려 숨을 고르고 세상을 둘러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어 주었다.
그런 휴식같은 만남들에서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을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이럴 때마다 선생님은 조한 특유의 간단한 화법으로 늘 바짝 말라가는 내 텃밭에 조한 식 “물 주기” 를 해주셨다. 딱히 아주 특별한 말씀을 해주신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짧은 대화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멀리 고향을 떠나 객지에 나가 있는 제자들의 마음 속엔 오래도록 기다린 단비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곤 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그 특유의 “잘 지내냐?” 라는 말씀이 그렇다.
또는,
“이제 안내리냐, 롤러코스터?” 라든가,
“요즘 공연 볼 시간 잘 없지? 어제 홍대에 누가 공연 한대서 갔는데.” 라든가,
“노자는 인도가 좋은가봐.” 라든가,
“만두국 먹으면 되냐?” 라든가,
“이제는 기업들도 그런거 많이 하는 거 같던데” 라든가,
“그건 아닌거 같던데.” 라든가,
“내 책 줬냐?” 라든가,
혹은,
그저 “차 더 마실래?” 라든가.
그러한 조한 식 짧은 “물주기” 대화들은 사실, 건조한 마음 한켠에 늘 작은 한평 짜리 텃밭을 가꾸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소중했던 한 청년의 후기산업사회 내 성장과정에 미묘하고도 중요한 역할들을 했다.
5. 사회라는 호수에서 만난 물고기들
사실 지난 스무해 동안, 내게 조한이 참 중요한 분이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내 주변에 없다. 19살때부터 함께 해온 크고 작은 삶의 조각들을 보면 그러하고, 또 딱히 같이 보내지는 않았다 해도, 전화, 삐삐, 핸드폰과 이메일을 거쳐 최근 Google Talk에 이르는 다양한 문명의 이기를 통해, 멀리에서도 삶의 중요한 구비구비마다 함께 나눠온 이야기들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과연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사회학 교수가 될 것이라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졸업과 동시에 경영 최전방에 섰던 나; 그리고 늘 학교와 시민사회의 경계들을 흥미롭게 바라보시던 선생님. 이 둘의 공통 분모가 과연 무엇이었길래, 지난 스무해를 넘겨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로의 삶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아닐까 싶다. 그런 “시각” 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어딘가 동향에서, 어쩐지 이미 아군으로 시작한 것 같다. 그러나 태생이 동향이든 아군이든, 선생님과 다양한 일들을 해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조한의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그 어떤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상이라는 호수에서 잡아올린 물고기들을 함께 바라보며 즐거워 하는, 때론 괴로워 할 줄 아는, 그런 마음가짐에 대한 가르침.
아마 그것이 올해로 21년을 맞는 선생님과의 인연 속에서, 아직까지도 나로 하여금 자랑스럽게 내가 사는 세상에서 만난 새로운 물고기들을 꺼내보일 수 있도록 하는 밑바탕이 되는 듯 하다. “선생님, 이번에 갔던 그 호수에는 이런 물고기들이 있더군요 - 한번 보실래요,” 라며.
6. 다시 새로운 시작 - 2013년 가을
선생님의 은퇴 소식을 듣고, 그리고 그에 즈음에 글을 하나 써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으면서, 내 마음 속에 처음 떠오른 느낌들은 상당히 다양했다. 아쉬움, 자랑스러움, 서운함, 아련함, 놀라움, 짠함... 그것이야 어찌되었든, 나는 선생님께서 앞으로도 (그리고 언제 어디서라도) 선생님 눈에 비친 세상에 대해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의 앞뒤에 자리 할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에게) 이야기 해주시기를 기대한다.
정말이지, 내게 있어 우리 앞에 놓여진 세상은 일견 변화무쌍한 호수와도 같다. 잔잔해 보일 때도 있고, 격랑에 넘실댈 때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호수 안에는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고 있다는 변하지 않는 사실. 어떤 물고기를 만나게 될지, 어떤 물고기를 낚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회과학을 사랑하는 우리는 늘 호수가를 서성이며 물고기들을 기다리게 마련이다. 물고기들과 조우하는 그 신비하고도 흥미로운 순간순간마다, 선생님의 시선은 어떤 것일까를 혼자 음미해보는 즐거움을 놓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전혀 없는 걸 보면, 나는 그만큼 그녀를 사랑하나 보다.
*글쓴이는 올해 마흔살로, 19살 때부터 스무해가 넘게 조혜정 선생님의 제자였다. 수제자가 아닌 건 확실해 보여 애제자를 자처하고 있으나, 사실 돌아보면 소방수 역할을 더 많이 한 것 같다.
선생님과 함께 해온 일들을 참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지금까지 발전/플랜트/건설 쪽 일에 스스로도 놀라울만큼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 계속 전세계로 떠돌아다닐 줄로 알았더니, 그래도 4년전부터는 서울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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