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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위기, 작은 소동, 그리고 재난 학교

조한 2020.02.28 13:50 조회수 :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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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카페에 들른 분이 그린 그림을 찍은 것이다. 이름을 미처 알아두지 못했다.

 

<글쓰기가 어려운 시대>

 

코로나 91 사태 컬럼 소동

 

1. 해외에서 코로나 소식을 듣다

 

2월 칼럼 쓸 날이 돌아오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가기 몇 일 전이다. 우환폐렴이 돌고 있다고 하고 노인들에게 치명적이라 한다. 이번 칼럼에서 코로나 사태를 다루기로 하고 CNN 뉴스와 특집 등을 열심히 챙겨 보았다. 제목도 여럿 적어보았다.

 

모두가 공부하고 탐구할 시간

위험 사회, 생존을 위한 멈춤

믿을 건 이웃 밖에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기후 위기, 재난을 직시하자

마을에서 시작하는 재난 학교

AI 학교, 기후 학교, 재난 학교

 

때마침 뉴욕에서 열리기로 한 학회에서 소식이 왔고 한국에서도 강연과 모임들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국제 학회에서 온 권고문으로 시작하여 이번 사태를 기회로 제대로 온라인을 활용하는 사회로 전환해보자는 이야기를 쓰는 것은 어떨까 싶었다. 그러면 감염 위험도 줄이고, 이동비용과 탄소 배출도 줄고 이동 시간도 줄어 산책할 시간도 좀 날 테고 말이다. 거리를 두고 현실을 보면 왜 다들 그렇게 사무실을 지켜야 했는지, 윗사람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젊은 층에서는 꽤 활성화된 원격회의를 이 기회에 사회 전반에 걸쳐 활성화 하면 어떨까 싶어 이 주제로 쓰기 시작 했다.

 

뉴욕에서 27일부터 열릴 인공지능 관련 학회(AAAI-20)는 일주일 전에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우려스럽지만 학회는 예정대로 열릴 것이고 중국 쪽 발표자들은 출국이 힘들 것 같으니 이에 미리 대처하라는 통문을 보내왔다. 각 분과 위원회는 학문 공동체 차원에서 (직접) 참가가 어려운 발표자와 토론자들의 발표문을 대신 읽는다거나 화상 회의 등의 방식을 활용해서 학회가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방안을 적극 모색하라는 당부였다. 이번 바이러스가 다행히 빨리 잡힌다하더라도 이런 재해가 반복해서 일어날 가능성은 높다. 전염병을 계기로 세계 학회의 포맷도 온라인 참여가 장려되고 사람들은 점점 더 비행기를 덜 타는 방향으로 갈 가게 될 것 같다. 본격적인 글로벌 온라인 학습의 장이 열리면 전 지구적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글로벌 시민들에 의한 지구 정부와 같은 기구도 더 늦게 전에 만들어질 것이다......세계보건기구(WHO)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25일 세계 차원의 정치적, 기술적, 재정적 연대 없이 이런 발병 사태를 이길 수 없다"면서...” 이런 글이었다.

 

2.서울에 돌아오다.

 

서울에 오니 일본은 크루즈 사태로 죽을 쑤고 있는데 한국은 대처를 잘 하고 있었다. 안도를 하고 있는데 신천지 사태가 터졌다. 칼럼들을 찾아보니 모두가 현 상황을 분석하느라 분주했다. 다양하고 깊이 있는 글들이 많았다. 지인들의 글도 보였다. 열공하는 모습, 좀 다른 듯 익숙한 글이다.  

 

조문영은 혐오 정치와 지구 다양체의 공생에 관한 글을 썼다.

 

당황스러운 것은 혐오정치의 문법이 지구 도처에서 반복되다 보니 한국인과 중국인이 동양인으로 묶이고, 어느새 서구인의 저들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우리 한국인은 아니라고 하소연할 것인가, 아니면 분리와 배제를 답습하는 일상의 공포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댈 것인가.”

([세상읽기] 한겨레 202013 “코로나 사태의 기이한 친숙함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28013.html)

 

김찬호는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고 삶의 진실을 일깨워주는 재해에 대해 썼다.

 

 “...중증외상센터조차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공공부문을 어찌할 것인가.... 비상사태는 일상의 속살을 예리하게 드러낸다. 기존의 상식들을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존재의 무한한 사슬로 얽혀 있는 삶을 자각하는 것, 우리는 서로의 일부라는 것, 그 마음의 생태계를 회복하는 데서 사회적 면역력은 배양된다.” ([삶의 창] 한겨레 20200218 “재난이 세상을 멈춰 세울 때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28320.html

 

양승훈은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보건시스템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제대로 가이드 하자는 글을 썼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순발력 있는 친구다.

 

 “무엇이, 누가 이 사태를 만들어 냈는지 다양한 설이 떠다닌다. 중국인의 입국을 막지 않은 정부냐, 몰래 병을 옮긴 신천지 환자냐. 탐정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신천지와 중국을 엮어서 다양한 소설을 쓴다......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상을 다 모으면 여기는 지옥이다. 잠재적 전파자들이 국경을 넘나들고 신흥종교 신도들이 다단계 네트워크를 오가며 선량한 시민들을 전염병으로 몰아넣는 상황.”

 

세 가지 이야기가 시민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정부가 전염병의 창궐을 막고 시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했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둘째는 질병의 전파 속에서 국가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했어야 하고 어떻게 앞으로 정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 즉 보건 행정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다. 셋째는 누가 어떻게 노력하며 싸워 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필요한 이야기는 모조리 빠지고 불신과 혐오를 조장하는 언어만 넘친다.”

 

기시감이 든다. 2015~2016년 조선 산업은 어려움을 겪었다. 해양플랜트 공정 지연 때문이었다. 싼 단가에 수주했고 생산 실정에 안 맞는 도면과 자재를 준비했다. 충분한 인력과 노동량을 산정하지 못했다. 먼저 할 일이 삐걱대면 뒤에서 할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선행 공정에서 제대로 마치지 못한 일은 (방역을 막지 못한 것처럼) 밀려만 왔고, 일은 훨씬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고 위험해졌다.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수십 명이 할 일을 수천 명의 일용직 물량팀갈아 넣어해결했다(질병관리본부, 선별진료소와 음압병동의 의료진처럼). 퇴근을 못하고 설계실에서 밤을 새는 엔지니어, 현장을 사수하겠다며 작업구역을 지킨 노동자들도 현장에서 싸움을 벌였다. 많은 논평가들과 언론은 분식회계하고 시장을 교란하며 저가 수주를 하더니 저 꼴이 났다며 냉소했다. '국민혈세 넣지 말고 청산하라'고 기회가 될 때마다 주장했다. 밤을 새며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싸우는 사람의 목소리는 그저 텅 빈 조선소 앞거리의 사진으로 대체됐다. 하지만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무력하지 않았다.”

 

“2020......일상을 사는 수많은 시민들은 자기의 역할을 하면서 의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휴게소 화장실에서는 손 씻는 동안 생일 축하합니다노래를 2번 불러야 한다며 어린아이가 아빠에게 노래를 가르친다. 손자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할머니는 아이를 돌봐야 한다며 함께 병동으로 들어갔다. 대구에서는 100명의 의료진이 상황을 타개하겠다며 동산병원으로 향했다. 배송 량이 늘어났다는 로켓배송을 책임지는 쿠팡맨들은 감염지역을 돌아다니며 불안에 떠는 시민들에게 생필품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 21일 경남 지역 언론인 경남도민일보는 코로나19 대응보도체제로 전환하며 대응 원칙을 발표했다. 막연한 불안감을 주는 과잉보도, 용어 사용에 주의하겠다고 한다. “언론 종사자가 감염병 전파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취재원칙을 정하고 실천하겠단다. 무엇이 시민들에게 불안, 무력감, 불필요한 혐오를 안기는지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 원칙이다. “

 

([양승훈의 공론공작소] 경향신문 20200223 “지금 필요한 건 응원과 위로의 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2232100015)

 

3. 나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모두가 참회하듯 글을 쏟아낸 세월호 사태 때가 생각났다. 나는 지금 무엇을 쓸 것인가? 불안과 적대를 조장하는 이 패닉상태를 어떻게 할까? 신천지 사태로 하루하루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아침 요가에 가니 사람들이 별로 오지 않았다. 그래서 칼럼을 요가로 시작해보았다. 일상에서 시작하는 보다 친숙한 글이 되기를 바라면서. 

 

아침 요가를 가면서 친구가 말했다. “이 지역에도 확진자가 생겼대요. 계속 가도 될까요?” 요가 스튜디오엔 보통 서른 명 정도가 모이는데 여덟 명이 와 있다. 요가를 끝내고 검색창에서 감염자 한명도 없던 김제, 상주, 경산, 제주도 뚫렸다.”“제주 첫 코로나 19 확진자 발생...대구 방문 군인 확진” “불안한 대구, 이웃과 대화 꺼리고 생필품 사재기등의 단어와 만난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위축감이 들어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쓴다. 점점 우리는 식당에 가지 않을 것이며 사람들이 모인 곳을 피할 것이며 집 앞에 떨어진 쓰레기도 줍지 않게 될 것이다. 행동반경은 점점 좁아질 것이고 마음은 점점 괴팍해질 것이다.”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이 더 이상 꿈이라거나 부러운 삶이 아닌 시대가 오고 있다. 어떤 재난이 닥쳐도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요가도 하고 밥도 해먹는 마을 공동체적 삶이 재난과 재앙의 시대를 잘 살아내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탈근대적, 탈인간중심적 시대의 좋은 삶은 그 전 시대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렇게 소소한 글로 쓰다보니 뭔가 빠진 것 같다. 보다 분명한 방향성과 체계적인 해법을 제시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들이 문을 닫고 생계 자체가 힘들어진다는 이웃의 말을 들으면서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본소득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일단 미친 듯이 달려온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기본소득제도를 조만간 현실화 하면서 곳곳의 시민들이 재난 학교를 만들어 사회의 체질을 전면적으로 바꾸어가자는 이야기. 그래서 이 세 가지, 멈추어서 성찰하는 시간, 그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기본소독, 그리고 대대적인 시대적 학습에 대해 평소 생각을 정리하는 식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너무 긴장하지 말자는 의미로 푹 쉬고 슬슬 재난학교를 만들자라는 제목을 뽑았다.

 

그런데 그 글에 오른 댓글을 보고 아차 싶었다. 급격하게 악화된 상황에서 의도적인 그 '한가로움'이 통하지 않는 듯 하다. 학교도 못가고 직장에도 못 나가고 가게도 열지 못하고 수업도 못한 채 안절부절 시간을 보내는 이들을 보면서 이왕 시간이 생겼으니 미뤄둔 일- 쉬면서 성찰하는 -을 하자고 쓴 글인데 한 시간 밖에 잠을 못 자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과 의료진과 그 주변에서 달리는 자원봉사자들과 현장 기자들의 모습이 눈에 밟히는 이들에게는  기막힌 글일 수도 있겠다. 여기에 명예교수 타이틀까지 얼마나 거슬렸을까?

 

naver 대표계정 입니다.-2020.02.24 06:01 · 공유됨(1)

세상 편하게 살다 은퇴한 노교수의 주저리로, 머리로 세상을 살다 나온 이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이 느껴져서 슬프다.”

002020.02.25 09:16

이 시국에 세상 물정을 모르는 차원을 넘어 황망하기까지 한 이런 내용을 칼럼이라 쓴 교수 본인도 그렇지만, 게재한 경향신문은 편집방향과 다르다고 빠져나가기만 하면 될까? 현장에서 다들 죽어라 일하는 알바 생부터 자영업자, 기업인들까지.... , 얼척없게 만드네요.”

002020.02.26 10:35 · 공유됨(2)

지 힘으로 밥 벌어 먹어본 적 없는 세상 한가한 인텔리겐치아의 오만과 편견

 

머리를 쓰기보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학자라고 '무시'를 당해온 내가 하루아침에 머리로만 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칼럼 초대를 받았을 때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래도 손주 세대를 위해 할머니로 할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서 쓰기로 했다. 주제어를 <마을에서>라고 붙인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재난 사회에 대비해서 상호부조의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맥락에서 다음 세대를 돌보는 이들과 공유할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런 적대적 댓글을 만나 당황스럽고 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어 제목을 바꾸고 " 푹 쉬고 기본소득을 계산하고 재난 학교를 만들자"는 제안을 하게 된 맥락을 추가했다. 

 

 [조한혜정의 마을에서] 탈바꿈을 위한 재난학교를 만들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2232055015&code=990100

 

 지난 한 달은 평소 안 보던 뉴스를 부지런히 챙겨 보면서 지냈다. 전 지구적으로 일어난 두 사건, 곧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와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상 수상이 안겨준 기쁨 사이를 오가면서 말이다. 2002년 사스 이후 심심하면 출현하는 바이러스 탓에 세계는 비상에 걸렸고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던 인간들은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쉽게 잡힐 것 같던 바이러스가 밀집된 종교 집단의 의례와 만나면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조한혜정의 마을에서]탈바꿈을 위한 재난학교를 만들자

 이 사태는 글로벌 차원의 세계적 전문가들과 시민 연대 속에서 풀어가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국제기구는 미약하고 글로벌 시민들은 정신없이 바쁘다. 그 사이에 미국, 중국, 일본 등의 국가 수장들은 자국민 보호라는 명목 아래 언론 통제도 불사하면서 국가 권력을 강화시키는 중이다. 이대로 가면 블롬캠프 감독이 <엘리시움>(2013)에서 그린 미래 -질병과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버리고 소수의 선택된 자들이 위성을 지어 살아가는 시대-는 예상보다 빨리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의 일원이 되면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위험이 체계적으로 생산되는 ‘위험 사회’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울리히 벡은 이런 파국적 상황을 해방적 파국으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탈바꿈’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한국사회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화상회의가 일상화되는 유연근무 사회로 탈바꿈할 것이다. 그러나 이 탈바꿈으로 충분하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탈바꿈은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내는 것으로 애벌레가 고치를 쳐서 나비가 되는 과정과 흡사하다. 이번 사태로 본의 아니게 자가 격리 중인 우리는 그 ‘탈바꿈’을 할 때를 맞고 있다.
 

탈바꿈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일단 쉬어야 한다. 오스카상 수상자 봉준호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자주 ‘역동적 코리아’를 언급했다. 바로 그 역동성은 세계 최고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토양이었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을 탈진시킨 조건이었다. 과로로 인해 현재 한국 생산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 쉬면서 숨을 골라야 한다. 그러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할지가 보일 것이다. 
 

 두 번째 할 일은 기본소득제도를 실현시키는 일이다. 선진국도 못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오스카 시상식 장면을 떠올려보자. 시상식에서 세기의 지성 백인 남성 노년 감독들에게서 역력한 피로감을 본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근대화의 불을 지핀 서구 백인 사회는 늙어가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봉 감독은 폭발적 에너지의 화신이었다. 아직은 변화를 향한 역동적 에너지가 남은 한국에서, 그것도 빈부격차를 소재로 대박을 친 영화가 나온 나라에서 기본소득제를 먼저 시행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세 번째는 재난 학교를 만드는 일이다. 소셜 미디어 상에서 탈바꿈 중인 지구 주민들의 연구와 활동은 눈부시다. 그간 봉 감독이 만든 영화들은 이런 흐름 속에 자리하고 있다.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은 무모한 근대기획을 넘어서 여타 생명들과 인공지능이 더불어 살아갈 세상을 상상하게 하는 훌륭한 텍스트들이다. 재난학교의 학생들은 각자 선 자리에서 자신이 풀어야 할 재난을 알아간다. 전염병이 돌면 모여서 손 소독제와 마스크를 만들며 서로에게 영감과 용기를 주고 안전망이 되어 준다. 이들의 활발한 교류는 선물경제와 사회적 창업으로도 이어지기도 하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동네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학교에서 어린이들은 순진무구한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누구보다 재난 상황에 대한 예리한 감각을 가지고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존재들이다. 
 

 이런 학교들이 지금 우리 주변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제도화된 학교 안에 둥지를 튼 경우도 있고 주말학교나 방학 캠프의 형태로 동네 카페에 둥지를 튼 경우도 있다. 그간 정부에서는 도시 재생과 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크고 작은 물리적 공간들을 만들었다. 특히 서울시는 무중력 지대나 우리 동네 키움 센터와 같이 주민들을 위해 다양한 공간을 마련하고 지원해왔다. 재난학교 시민들과 시민공무원과 공공 인프라가 제대로 만날 수 있다면 서울은, 그리고 대한민국은 또 한 번 역동적인 역사를 써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영화가 일으킨 세겨적 돌풍처럼 한국의 시민들이 재난학교를 통해 세계를 구할 돌풍을 일으키기를! 

그래서 다시 '재난 학교' 아니, 지구를 살리는 큰 그림 작은 학교로!

'재난 학교'라는 표현보다는  '지구를 살리는 (큰 그림) 상작은 학교'라는 표현이 나을 것 같다.  각자가 자기 동네에서 만들고 있는 재난 시대의  배움에 대한 이야기는 온라인에서 공유하면서 협력하면 쉽게 아주 많은 곳에 캠퍼스들이 만들어지는 그림이 나온다. . 그래도 세상은 좋아진다는  진보주의적 신념은 이제 깨지긴 할테지.   세상이 좋아지지 않는 상태에서도 삶은 지탱되어야  하고 우리는 그 붕괴의 시간을 살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선진국에 가보면 대체적으로  시민들이 비관적이고 우울하다. 후진국에 가보면 가난하지만 역동적 에너지가 살아 있다. 세월호 사태, 광화문 시민혁명, 그리고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그리고 BTS <기생충> 돌풍을 통해 우울과 역동성의 한국을 확인한다.  뒤늦게 근대화에 성공한 다이나믹 코리아,  그 대한민국이 좀 다른 미래를 써갈 수 있으면  좋겠다. 

덧붙임: 다양성, 그리고 죽음에 대해: 나는 어떤 존재로 앞으로 올 혼란의 시간을 살아내고 또 사라질  것인가?  거대한 타이타닉이 가라앉을 때 사람들은 각각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는다. 항해를 책임진 사람인데도 악착같이 자기만 살겠다고 구조선에 오르는 사람이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꼭 붙어 있기만 하면 되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살신성인 (殺身成仁) 하는 사람이 있었고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연주를 하면서 죽음의 시간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각각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사라질 것인가? 이 위기를 통해 우리 모두가  자신의 모습을 좀 더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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