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코로나 서사’를 쓸 것인가 (황정아)
https://magazine.changbi.com/200304/?cat=2466
‘바이러스처럼 퍼진다’는 것이 정녕 어떤 사태를 가리키는지 무섭도록 실감하는 이 시간을 거치고 나면 이 비유를 아무렇지 않게 쓰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어쩌면 훗날 이 시간이 어떻게 기억되는가에 따라 ‘바이러스’를 둘러싼 의미의 자장은 달라질지 모른다. 질병관리본부의 브리핑에 귀를 기울이고 긴급재난문자를 들여다보면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세와 경로를 확인하는 나날들은 공동의 경험이 대개 그렇듯 이런저런 의미를 축적하며 자체의 서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금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유행이 (바라건대 조만간) 끝나리라 확신할 수 있는 것만큼이나 이번이 전염병의 마지막 사례가 아니리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그것이 어째서 마지막이 아닌지, 또 어떻게 기후변화나 지구화가 낳은 위기와 무관하지 않은지는 이미 여러차례 지적된 바 있다. 이 상황을 또다시 겪을 수 있다는 말은 현재 코로나로 인해 발생하는 물질적 결과들을 잠재적인 상수로 예상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런 사태가 발생할 때 적절한 대비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 것과 별개로, 우리의 일상 자체가 그 잠재성에 맞추어 조율되어야 한다. 반드시 지금 권고받는 정도의 격리와 자제까지는 아니라도 우리는 어쩌면 모든 방면에서 조금 덜 활동하고 덜 발산하며 심지어 덜 생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데이비드 하비가 말한 대로 확대재생산이 아닌 단순재생산의 삶으로 질서있게 물러나야 하는 게 아닐까. 성장과 발전을 향한 열망이 정녕 인간의 본능이라면 이제 그것은 물질세계를 질주하는 대신, 멈춰 서서 바로 그 물질세계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데 발휘되어야 한다. 어쩌면 ‘신천지’가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에게 다른 종류의 감염서사가 간절함을 일러주는 또다른 증거인지 모른다.
황정아 / 문학평론가,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2020.3.4.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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