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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유네스크 잡지에 낸 글

조한 2020.12.30 20:45 조회수 : 607

올해 만난 귀인, 북살롱 이마고 김채수 대표가 쓰라고 해서 엉겹결에 쓰겠다고 해놓고

마감 날이 와서 급하게 써서 보냈다.

더 깔끔하게 다듬어야 하는데 찜찜하다.

 

민들레 글 다듬으면서 짜집기도 했다. ㅎ

이런 걸 자기 표절이라고 하나.... ㅠ 

엄기호가 보내준 글에서도 도움을 받았고.

독자들이 전혀 안 겹치리라 생각하고 쓴 것인데 

이렇게 온라인에 올려놓으려니 또 찜찜하다.

글을 좀 쓰긴하는데 올리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다.

 

무엇보다 말이 왜 이리 많나 싶다.

말 줄이기.긴 글 쓰기 졸업할 때가 된 듯.

 

"SPECIAL ISSU_ 코로나19, 팬데믹의 시대를 건너는 법

 

조한 혜정 (문화인류학자. 연세대 명예 교수, 저서로 탈식민지 시대의 글 읽기와 삶 읽기 1-3』 『성찰적 근대성과 페미니즘,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 《다시 마을이다.》 《자공공-우정과 환대의 마을 살이》 《선망국의 시간등이 있다. 서울시 청소년 직업체험 센터 (하자 센터)를 설립해 2000년대 청소년들을 위한 청소년들에 의한 시민권 운동과 창의적 활동을 지원해왔다.

 

들어가며 : 인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인류사회의 진화를 다룬 [총 균 쇠]의 저자 제러미 다이아몬드는 코로나19 이후를 전망하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각 나라가 협력하게 된다면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여전히 경쟁과 적대의 원리로 난국을 타개해가려고 하면 파국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는 누가 과학기술의 방향을 좌우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인구 1% 정도의 초국적 특권층이 유전자 생물학과 우주개발, 그리고 AI 분야를 두고 방향성에 대한 합의 과정 없이 달리기 시작한다면 99%가 설 자리는 급격히 사라질 것이다. 선진국에서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AI가 사람을 대신하면서 소수 독재의 시대로 갈 가능성은 매우 커지고 있다. 최근 일본의 한 과학자는 TV 토론에서 몇백 년이 지나 사람들은 다 죽어 없어질 수 있어도 AI는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학자는 인류가 만든 AI가 지구상이나 우주에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에 곧 인류도 살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 인간과의 관계가 아닌 추상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생각할 때나 가능한 참으로 황당한 논리적 비약이 아닌가?

 

코로나19로 인해 일 년의 격리 기간을 거치며 세상은 혼돈과 우울 속에 빠져들고 있다. 그간 제주도는 청정지역으로 독야청청할 줄 알았다. 그러나 전국의 하루 확진자가 1,000명 선에 육박하면서 제주도도 이제는 안전하지 않은 지역이 되었다.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다. 특히 우리는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혼자 있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미약하고 취약한 존재로 만드는지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나마 우울한 시간을 잘 버티며 사는 사람들은 동네에 서로 돕는 이들이 많았던 사람들일 것이다. 도시의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지내는 삶이 아니라 이웃과 단골이 있고 품앗이 관계 속에 나름 우정과 환대의 일상을 꾸려가던 사람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소소한 기쁨을 느끼며 잘 지냈다고 한다.

 

한 때 알에서 깨어 더 큰 세상으로 가는 것이 꿈인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고향을 떠나지 않고 서로 사랑하며 안정적으로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간 거대한 것에 매달려서 자신을 잃고 살았다면 이제 다시 자신의 일상, 친밀한 관계, 그리고 자신의 몸을 발견하고 있다. 전 지구적인 인간이면서 아주 작은 친밀한 동네에서 행복한 인간의 시대가 오고 있다. 지속 불가능한 시대를 지속 가능한 삶/살림살이의 시대로 전환해가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이런 시대적 전환기에 성장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삶과 학습은 어떤 형태여야 할까? 이 질문을 팬데믹 재난 시대,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와 연결해서 생각해보자.

 

학교는 준비를 위한 곳이 아니라 삶의 장소

 

재난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매우 새롭고 낯선 경험을 하였다. 창의적이면서 동시에 혼란과 고통을 이겨내는 내공을 키워야 할 때가 오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다. 제주의 청소년들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창의적으로 대응하고 있는가? 팬데믹 상황에서 시대를 읽어내려는 탁월한 움직임들이 보이고 유튜브에 들어가서 잘 찾기만 하면 지금이야말로 시대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최적기이다. ‘포스트 코로나’, ‘위드 코로나등의 표제로 코로나 이후의 삶을 그려보는 석학들의 시도가 줄을 잇고 있고 새로운 실험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현 사태를 직시하고 이 시점에서 자신들의 존재와 역할을 알아내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학습의 장이 광대하게 열리고 있다.

 

이런 혼란기는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유가 가능한 어린 시민들이 활약할 시간이기도 하다. 기존 지식이 무용지물이 되는 시점에 교육부가 할 일은 그간의 수동적 학습대상자를 능동적 학습 주체자로 전환해내는 일이다. ‘입시로 줄 세우기를 해온 교육 방향을 바꾸어낼 수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실험의 시간을 벌려고 하지 않고 기존 교과과정을 온라인화하는데 급급한 교육부의 움직임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중앙 정부의 규제를 거부하고 삶을 살리는 자치적 행보를 하려는 움직임이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했다. 목수정 작가가 코로나 160프랑스의 이유 있는 반란이란 타이틀로 소개한 프랑스 지자체와 시민들의 제2 봉쇄령에 대한 불복종 바람 (2020116일 오마이 뉴스)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로 우리는 2014년 세월호 사태를 겪으면서 가만있으라라는 가르침에 불복종해야 할 때임을 알아차렸다. 만일 교육부가 이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다면 학교 공동체 구성원들, 부모들과 지역사회의 각성한 시민들이 나서서 삶과 학습의 생태계를 바꾸어내야 할 것이다. 이런 움직임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관점/세계관의 공유이다. 함께 공유할 관점은 만물은 서로 경쟁한다가 아니라 만물은 서로 돕는다가 될 것이다.

 

환자를 고치는 의사, 사회질서를 바로 잡는 법관, 사회가 행정규칙에 따라 굴러가게 하는 공무원도 중요하지만 지금 같은 격변기에 가장 필요한 인재는 급변하는 현상을 순발력 있게 읽어내고 사람들을 연결해서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슬기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시대의 청소년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만들어낼 창의적인 공유지, 우정과 환대의 장소가 얼마나 되는지가 코로나19 이후 그 사회의 운명을 좌우할 주요 지표가 될 것이다. 이미 마스크 세대재난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그렇다고 살아남으라라는 무서운 경고로 그들을 위축시키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일이다. 그보다는 적극적으로 망가진 세상을 구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스마트폰 세대인 이들은 이미 충분히 이상한 기류를 감지하고 두 가지 길로 적응해가고 있다. 하나는 스마트폰 속의 오락으로 숨어들어 누군가에게 기생하며 편안하게 사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며 신인류로 비상하는 길이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다양한 분야에서 전에는 상상하지 못한 영특함으로 세간을 놀라게 하는 어린 아이와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팬데믹 이전부터 이미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개성이 강하고 집중력이 뛰어난 아이들을 다양한 경로로 만나면서 맞춤 교육이 가야 하는 길임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네 시간 자면 성공하고 다섯 시간 자면 실패한다라며 집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틀에 박힌 학습을 반복하는 아이들은 장기화할 재난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지금 학생들이 하는 학습은 인공지능이 수천 배 더 잘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배울 수 있다. 컴퓨터가 그들의 일자리를 다 빼앗기 전에 이들이 생기있게 지내고 창의적으로 자신들이 살아갈 세상을 만들어갈 배움터를 마련해야 한다. 작년에 나온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회적 딜레마 the Social Dilemma>가 가감없이 보여준 현재, 곧 거대한 하이테크 기업들이 이들을 온라인 좀비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학습 환경을 바꾸어내야 한다.

 

풍요로운 소비사회에 태어나 스마트폰으로 온갖 정보에 노출된 이 세대는 초등학교 2학년 정도만 되면 나름 뚜렷한 호불호를 가지고 부모와 협상하며 자신을 형성해가기 시작한다. 현실을 숨기고 보호하려 하기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관찰하면서 돌파해가라고 학습 주도권을 주는 것이 이 시대의 교육법이다. 이 때 교사와 부모는 그들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문제를 풀어가며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갈 수 있는 생태계를 마련하는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아이 세계와 어른 세계를 분리하고 아이들을 표준화 시켜 대량생산하려 했던 시대와 결별할 때가 되었다. 학교는 준비를 위한 곳이 아니라 삶을 일구는 장소여야 한다.

 

학교는 입시/실기가 아니라 관점/세계관과 방법론/언어를 익히는 곳

 

새 학교에서 할 가장 중요한 학습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는 현실을 이해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인데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직면할 용기를 갖는 것이다. 그 용기는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자신의 불안과 막막한 심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가능하다. 학교에서 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학생들에게 학교는 이런 안전하고 편안한, 그래서 살아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기존의 학교와 가족은 그 자체로 급격히 해체 중이고 따라서 재구성 중이라고 믿고 가자. 지금은 제도권 학교를 거부하고 해체된 가족을 원망하며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적극적으로 학교를 활용하는 방법들을 고안해낼 때다.

 

마음 맞는 친구 세 명이 의기투합하면 아주 기발한 발상과 작업이 가능해진다. 거대한 근대적 생산체제의 한 부품으로서 현대인은 경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 아래 달리고 있지만 아무리 탁월한 능력을 갖춘 자라고 해도 소통과 연대를 통해 문제를 푸는 협력의 능력을 갖춘 자를 능가하지는 못한다. “협력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관점에서 삶을 풀어낼 수 있는 언어와 삶의 기술을 익힐 때 용기와 지혜의 세상으로 입문하게 된다. [공부 중독]의 공저자 엄기호는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실기가 아니라 관점과 언어라고 말했다. 최근 나온 채록희의 판타지 소설 [쌈룡 학원]에는 소설 첫 머리에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이해할 수 있으면 견딜 수 있다"는 대사로 시작한다. 나 역시 이야기를 가진 아이,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특별하면서 보편적인지를 아는 아이들이 세상을 잘 살아내고 또한 세상을 구할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 70여 년 인류사상 가장 풍요롭고 평화로운 시대가 지속되었지만 지금 우리는 고통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런 시대를 누구보다 일찍 감지한 이반 일리치는 1990년 하노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고통을 겪습니다. 우리는 아픕니다. 우리는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희망과 웃음,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보살피는 기쁨을 알고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선을 돌려 삶의 기술과 고통을 감당하는 기술, 죽음의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근대 인간들이 만들어낸 삶의 고통과 비참을 감지한 존재,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동물과 식물과의 연결성을 감지하는 존재, 더불어 살아갈 세상을 인식하고 AI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탁월한 존재가 성장하는 학교가 만들어질 때가 왔다. 탁월한존재들은 세속적으로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 뒤르켕이 말한 사회적 의식, 사회적 영성을 지닌 존재일 것이다. 자신과 연결된 공동체가 만든 세상의 비참함을 느끼고 비통해하면서도 무력감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고 따뜻한 집을 이루어갈 내공을 키운 존재 말이다.

 

사회적 영성을 회복한 시민들이 만들어낼 세상

 

교사와 부모들은 펜데믹 사태를 겪으며 입시 체제로 공고해진 한국 교육계의 허망함을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백신이 나오면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벌써 변이 바이러스들이 생겨나고 있고 백신의 부작용도 생겨나고 있다. 균형이 깨진 지구촌에서 역병과 재난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백신을 둘러싸고 가난한 남반구와 부유한 북반구는 함께 협력하고 싶어 하겠지만 이윤 창출이 목적인 거대 기업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1, 2차 대전의 참상을 겪으며 세계 보건기구 WHO가 생겨났는데 지금 그 기구는 세계 주민 모두가 백신을 맞을 수 있게 할 협상력도 없다. 제대로 된 세계교육을 하려고 유네스코 UNESCO가 생겨났는데 역병에 대한 면역력 교육을 포괄한 미래 세대 교육에 관한 탁월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게는 여력이 없다.

 

엄청난 세계 전쟁과 그 이후 전쟁을 막는 것에 급급했던 20세기, 그 혐오와 적대의 잔상과는 이별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모든 생명이 서로에게 기운을 주는 생명 평화의 세상을 열어갈 때이다. 오로지 자신이 살아갈 시대만 생각하고 다음 세대의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는 것에 대한 감각이 없는 황금 숭배자들, 정권을 잡기만 하면 된다고 시장의 편에 선 권력 숭배자들은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레타 툰베리라는 한 소녀의 용기가 세상을 각성시킨 사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툰베리 세대의 청소년들이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시위에 나가면서 세상을 구할 탁월한 존재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앞으로 펜데믹 사태가 지속될 것 같지만 아이들은 온라인 학습에 익숙해지면서 엄청나게 새로운 학습을 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그 밝은 슬기로운 인류의 후예로서 세상을 구할 수 있도록 금요일은 자율학습의 시간으로 정하면 어떨까? 제주도부터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한가득 움츠려 들어버렸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온라인 수업을 통해 새로운 시대 실험을 하는 학생과 교사들, 돌봄 교실에서 교육의 핵심이 돌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아가는 선생님들, 아이의 가정 형편까지 알고 아이들을 돌보는 동네 작은 도서관과 지역 아동센터 선생님들, 북 카페와 동네 텃밭 공동체 주민들이 서로 돕고 새로운 배움을 길을 트기 시작했다. 면대면 캠페인은 힘들어졌지만, 온라인을 통해 바다를 살리려는 캠페인은 더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그간 피상적 관계를 맺어온 것을 반성하며 어른들은 자신의 성장 과정을 뒤돌아본다. 각자가 선 자리에서 교사로서, 친구의 부모로서, 조부모로서, 피를 섞지 않은 삼촌과 이모로, 이웃으로 다른 세대와 특별한 인연을 맺어가기 시작한다. 아이를 통제 관리하려는 강박을 내려놓고, 시대를 몸으로 느끼고 있는 아이와 손잡고 그들의 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일상에서 서로로부터 배우며 좋은 기운을 주고받는 존재들이 늘어날 때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서로를 공동의 운명체로 느끼는 이들이 곳곳에서 생기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갈 때 나/우리 마을은, 지역은, 나라는, 아시아는, 그리고 세계는 다시 좋은 기운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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