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기쁨의 만남
예전부터 스승에 날에 나는 연구실에 가지 않았다.
그런 시간 있으면 해야 할 일이나 더 열심히 하라고 했다.
자신을 살리고 나라를 살릴 일을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도 그런 일로 일초를 아끼고 살았으니까....
실제로 교수추천에 따라 취직이 되는 과의 교수실은 꽃다발로 방이 비좁을 정도였다.
취직 할 때 추천서를 써준 제자들이 은혜를 잊지 않고 있음을 알려주는 의례적 선물,
그 제자들은 선후배 관계도 든든하다.
그 인맥으로 일들을 잘 풀어가기도 한다.
먹이 사슬, 인맥사회를 극복해야 한국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나는 더욱 기를 쓰고 스승의 날 안부 묻는 일 따위로 에너지 낭비 말라고 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약간 후회가 되긴 한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고마움의 마음을 갖는 것 자체가 그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인데
무슨 세상 살릴 일 있다고 그렇게까지 달려라고 했을까?
만나는 즐거움, 기쁨의 순간이 우리 삶을 살게 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삶의 난망함을 느끼는 요즘, 나는 같이 있음으로 기뻐지는 관계의 중요성을 나날이 알아간다.
청개구리 동화 생각이 나는 대목인데 그렇게 누누히 스승의 날 챙기지 말라는 내 말을 안 듣고
줄기차게 안부와 감사 선물을 보내오는 제자들이 있다.
영의 화분이 배달이면 나는 스승의 날이 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의 화분이 교수실을 환하게 만들다가 이제는 집안을 환하게 만든다.
이어서 문자 메시지들이 온다.
선생님
또 한해가 지나서야 연락들 드리게 되네요.
코로나 상황이 계속 되는데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하네요.
제주도에 간다고 하면서도 일상이 늘 그렇다 보니 쉽게 실행을 못하고 있어요.
모쪼록 건강 잘 챙기시고요, 하시는 일들 모두 재미있게 잘 되시길 바래요.
정말 많이 뵙고 싶네요~^^
진 드림
요즘은 풍선 카드 등 재미난 표현의 문자와 카톡.
내가 전화를 싫어하는 걸 아는지라 다른 방법을 사용하지만
통화를 고집하는 그녀의 전화도 어김없이 걸려 온다.
한번은 남자 교수가 강의 중에
"여학생들 가르쳐봐야 다 소용없다.
졸업하고 감사 선물 하는 놈 하나 못봤다."
는 말을 듣고 자신만이라도 꼭 선물을 챙기리라 결심했다는 은.
나는 생전 처음 그녀/제자로부터 은퇴 기념 돈을 선물 받았다.
그녀는 절대 남 주지 말고 선생님의 즐거움을 위해 써셔야 한다고 했다.
맹랑한 친구라 생각했다.
그는 내가 작년부터 코로나 불루에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마을과 주변 곳곳에서 내 책을 읽고 그대로 실천하면서
열심히 사는 이들의 경우를 전해주면서 이제는 용 쓰지 말고 마음 편히 지내시라고 했다.
전화로, 생 목소리로 전하는 마음이 새삼 고마운 것은 코로나 불루 탓일까?
꼭 이메일로 보내는 친구도 있다.
올해 세번째 책을 낸 은이 대학 일학년때 모습을 상기하면서 보낸 글.
그리고 스승님으로 시작하는 썬의 편지은 해마다 감동이다.
존경하는 스승님,
제자들과 즐거운 스승의 날 보내셨나요?
저도 학기 마무리하고 있는 중인데 학생들한테서 감사 이메일이 종종 옵니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 시시한 선생님 따위 되고 싶은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교육을 통해 사회 운동 제대로 해 볼 욕심에 대안학교를 가게 되었는데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 만들면서 '아... 애들 어르고 달래는 거 지겹다... 이런 거 내가 하고 내가 더 성장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자주 들었죠.
석사 마치고 유학 갈 때도 공부 더 하고 싶은 욕심이었지 선생님이 될 마음은 없었어요.
정규직 교수가 되고도 수업은 해야 하는 일이니 하는 것이었는데.
하면 할 수록 선생님이라는 일이 참 복 받은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르치는 것보다 더 많이 배우게 되는 일.
돌보는데 들이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돌려 받게 되는 일.
그저 작은 걸 좀 해 주었는데 열 배 백 배 크게 받아 가는 아이들.
스승님이 왜 또문 어린이 캠프니, 난장이니, 하자센터니
억세게도 일복 터지고 책임도 크게 져야 하는 프로젝트들을 줄줄이 하셨는지 이제 좀 이해가 갑니다.
스승님 보면서 부지불식 중에 배우게 된 것들,
대안학교 하면서 기를 쓰고 했던 것들이
수업할 때 학생들 만날 때 불쑥불쑥 튀어나와요.
'본 데 있이 컸다'는 건 이럴 때 하는 말이겠죠? ㅎㅎㅎ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써니
편지와 메모를 읽으며 또 한 해가 감을 새삼 느낀다.
돌이켜보면 나는 무엇보다 선생이었고 선생임을 즐겼던 것 같다.
<낡은 것은 가고 새 것은 아직 오지 않은>,
정치 철학자 낸시 프레이즈가 펴낸 책의 제목처럼
쉽지 않은 시절을 지나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 하지 않았던, 작은 기쁨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작은 기쁨 속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지내는 시공간의 중요성 말이다.
자신을, 이웃을, 나라를, 인류를, 땅을, 반려식물을, 반려동물을, 오래된 노트북을
텃밭을 가꾸듯 가꾸면서 사랑하고 가꾸면서 즐거운 하루 맞이하길!
2021년 5월 16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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