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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신뢰 사회 (이상원 기자, 이진우)

조한 2021.10.19 11:50 조회수 : 292

[나는 분노한다] “지금 한국은 초저신뢰 사회다”
  •  이상원 기자
  •  승인 2021.09.15 06:34
  •  호수 730

〈불공정사회〉를 펴낸 이진우 교수를 만나 한국 사회의 갈등과 분노에 대해 물었다. 그가 내놓은 핵심 키워드는 신뢰였다. 국민이 권력을 믿지 못하고, 개인이 타인을 믿지 못해 갈등 회복이 어렵다.

지난 8월 〈불공정사회〉를 펴낸 이진우 포항공과대학교 석좌교수(인문사회학부)는 정치철학자다. 독일에서 프리드리히 니체 연구를 수행했고, 한국의 현실 정치에 대한 책도 여러 권 출간했다. 이 교수를 만나 한국 사회의 갈등과 분노에 대해 물었다. 그가 내놓은 핵심 키워드는 신뢰였다. 국민이 권력을 믿지 못하고, 개인이 타인을 믿지 못하기에 갈등을 회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비관적이었다.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앓아온 이 질병의 예후가 몹시 나쁘다고 그는 본다.

이번 조사에서는 정부와 공권력, 시스템의 문제에 대한 불신이 읽혔다. ‘자력 구제’를 대안으로 꼽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극적이고 심각한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신뢰를 바탕으로 성숙하는데, 다양한 지표상 한국은 초저신뢰 사회에 가깝다. 가족 단위의 소규모 집단만 믿고, 더러는 가족도 믿지 못한다. 적나라하게 파편화된 사회라고 봐야 한다. 타인을 신뢰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한다. 개인의 권리가 훼손될 때 갈등을 조정하고 상황을 바꾸는 게 국가의 법과 제도인데, 이걸 신뢰하지 못하면 각자의 자기방어 본능만 남아 서로 부딪힌다. 그렇다고 ‘건강한 개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기 이익과 권리는 챙기지만 사회적 책임의식은 없다.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딛고 일어서야 할 경쟁 상대라고만 판단한다.

이진우 교수는 사람들이 시스템을 믿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 정치세력의 양극화에 있다고 말한다.ⓒ시사IN 신선영

왜 시스템을 믿지 못할까?

근본적 원인은 정치세력의 양극화라고 생각한다. 우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제도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면 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쓴 책 〈중간에 서야 좌우가 보인다〉에서도 현실 정치를 다뤘는데, 이때도 우리 사회가 분열되고 양극화되었다는 조짐이 보였다. 다양성이 없고, 중도가 없다. 본래 문화적으로 진보적인 사람이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이고, 경제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도 정치적으로 진보적일 수 있다. 다층적 갈등이 발생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이게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는 좌우 이분법이 통한다. ‘진보적 집단’ ‘보수적 집단’만 남아 이 문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민주주의 제도는 정착되어왔지만 민주주의적 태도, 생활민주주의는 무너져 있다.

〈불공정사회〉에서 한국인은 ‘관용이 없는 갈등 사회’에 살고 있다고 적었다.

다양한 이념과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가 민주주의다. 존 롤스는 이를 ‘공정한 협력체계’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의견이 다른 상대를 협력 대상은 물론 경쟁자도 아니고, ‘제거 대상’으로 파악한다. 이 인식은 부의 분배에 대한 관점에도 악영향을 준다. 사회가 공정한 협력체계라고 인정한다면 내가 얻은 지위와 부에 사회가 기여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노력과 능력을 들여 성과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협동의 산물이고, 사회의 이익이 포함되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한국 사회처럼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고 경쟁만 긍정하는 곳에서는 타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식이 자라날 수 없다.

공정과 능력주의는 수년간 한국 사회의 화두였다.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연관이 있나?

그렇다. 지난 10년간 포항공대에서 사회문제를 토론해보니, 대부분의 학생이 양극화나 빈부 격차, 새로운 빈곤 문제에는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능력주의 비판에는 거부감을 보였다. 한국 청년 대다수가 그러리라고 본다. 그런데 ‘사회적 이익의 배분이 지위나 계급, 신분이 아니라 개인 능력에 따라 배분되어야 한다’는 능력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부모의 지위와 같은 비능력적 요소가 영향을 줘선 안 된다. 20대가 제기하는 공정 문제는 능력에 따라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다. ‘돈도 실력이야’라는 정유라의 글이 논란을 불렀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조국 사태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 사건들뿐만 아니라 생활하면서 피부로 느낀 바가 누적되었다고 본다. ‘능력주의라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것, 즉 제도를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요구다.

흉악 범죄나 집단 일탈에 대해서는 공권력을 확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감지된다.

상당히 위험한 요소다. 우선 공권력의 기능을 어디까지 확장할지가 모호하다. 가령 사회에 범죄 집단이 많으면 강력한 경찰력을 요구할 수 있다. 모든 범죄자를 색출하고 엄하게 처벌해 시민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처럼 AI 감시시스템을 활용해 국민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는 빅브라더를 원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 공권력 통제가 사회 구성원들의 존재 자체를 붕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노동자 권익을 향상시키려는 이익집단이 없다면 노동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누가 보더라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이단·사이비 교회도 있을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의 역량은 이런 집단들의 갈등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조정하는지에 달려 있다. 갈등 조정 능력이야말로 유일한 쟁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해서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는 것은 이 사회적 기능이 떨어져 있다는 의미다. 국가 시스템을 믿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공권력을 요구하는 게 대단히 모순적이다. 나를 간섭하고 구속하는 국가는 싫어하는데, 다른 이해집단과 갈등을 겪을 때는 (이들을 진압할) 강한 경찰과 군대를 요구한다.

이번 분석 결과 한국 사회에 대한 불만은 높은데, ‘한국인상(像)’은 긍정적이었다.

제주도 예멘 난민 신청 사건은 이른바 ‘국뽕’과 연결시켜 볼 수 있다. ‘난민은 도덕의식이 없고 테러 범죄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편견이 가득했다. 추후 거짓으로 밝혀진 뉴스도 여럿 나돌았다. 타 문화에 대한 존중과 이해도가 아주 낮다. 이런 생각이 우리 자존감을 높여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타인과 비교 없이도 자기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자존감이다. 우리 사회는 스스로를 타인에 견줘 평가하려는 자존심만 강하다. 반대로 국뽕은 (선진국) 외신 보도에서 비롯된다. 정책도 행정도 일본과 비교하고 서구와 비교한다. 남들과 비교해 가치를 높이려는 태도는, 남들 시선이 바뀌면 언제든 자기 인식도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책에서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 통합 관점에서 본다면 문재인 정권은 매우 무능하다. 이 정권은 정치적 자원이 많았다. 촛불혁명에 국민 80~90%가 지지를 보냈다. 지금은 촛불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이 양쪽으로 쪼개지고 진영 간에 대화와 소통이 없다. 강력한 지지를 갖고 출범했음에도 대립을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박하게 평가한다. 차기 대선에서 한국을 이끌어갈 지도자가 어느 진영에서 나오든 신뢰를 구축할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이 작업은 오래 걸린다. 지난 4년간 문재인 정부가 이루지 못한 것이라, 차기 정권의 핵심은 국민 통합, 신뢰 구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원 기자
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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