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짝 웃어라!- 문화인류학자의 북한이야기> 추천사
< 활짝 웃어라!- 문화인류학자의 북한이야기> 저자 정병호,
추천사
만나면 유쾌한 사람이 있다. 엉뚱한 일도 곧잘 벌이는 그의 주특기는 흑백으로 나뉜 세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이다. 동급생 친구들이 독재 타도를 외칠 때 그는 공동육아운동을 시작했다. 남북 적대가 고착되어갈 때 그는 탈북자 연구를 시작했고 잠시 화해 무드 틈을 타 기근에 시달리던 북한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었다. 한일 감정을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분위기에서 일본에서 강제 징용을 가서 떼죽음을 당한 일제 때 조선인 귀무덤을 찾아낸 그는 한일 평화 시민들의 순례 길을 만들고 완강한 국가를 설득해 위령제를 지나고 고향에 묻히게 했다. 때로 너무 앞서가거나 뒤서가는 듯한 그는 실은 누구보다 시대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훈련된 인류학자이다.
이번에 그가 한 유쾌한 작업은 북쪽 ‘사람들’과 만나게 하는 일이다. “심리를 리해 못 하십니까?” “꼭 같으셔요” “민족”보다 “국민” “평양 ‘SKY캐슬’과 대안교육” “기근 구호와 관료주의의 벽” “다문화는 민족말살론” “얘네들은 돈맛을 좀 들여야 돼!” 이런 제목을 달고 북쪽이 사람들이 사는 곳임을 느끼게 해준다. “소유나 존재냐”의 그 질문을 더 이상 던지지 않게 된 지금이지만 그는 답한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이지. 국가 아니라 사람이지!” 공식비공식의 경계를 허물며 살아가는 북쪽 사람들이 연마한 ‘삶의 기량’과 ‘틈새의 해학’에 감동하면서 그는 분단으로 인한 문화적 이질성이 쉽게 지워지리라는 낙관은 금물이라고 말한다.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북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안경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며 이 책을 낸다고 그는 말한다. 적대와 대립의 질서에 익숙한 이들이 애써 거부하는 ‘문화적 상대주의’로 보는 시선. 이분법적 사유에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역지사지’의 안경. 2020년이 되었다. 오래된 안경을 벗고 새 안경을 쓰기 위해 좀은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하며 남북의 ‘사람들’이 만나서 벌일 유쾌한 무지갯빛 활동들을 상상해본다. 부지런히 그 지침서를 정리해준 정병호 선생에게 감사를 드리며! (조한 혜정, 문화인류학자, 연세대 명예교수, [탈 분단 시대를 열며: 남과 북, 문화공존을 위한 모색] 2000 공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