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문화야말로 지금 가장 거대한 바이러스 (반다나 시바)
“자연을 죽이고 삶터 빼앗는 ‘범죄경제’, 코로나로 가속도 붙어” [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 ④] 경향신문 20200528
안 = 당신이 정의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인가요.
시바 = 첫째, 우리가 지구의 일부분임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수많은 관계 속에 있고, 모두가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음을 인식하는 거죠. 꿀벌에겐 존재할 자유가 있어요. 지렁이에게도 있죠. 식물은 유전자조작을 당하지 않을 자유가 있습니다. 모든 생명을 위한 자유를 보장하는 지구 민주주의입니다. 그 안에서 인류는 생태를 말살시키는 독점화된 탐욕의 경제로부터 생명을 지속시키는 경제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살림 민주주의입니다. 몬산토가 우리 종자를 도둑질할 때, 저는 농부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우리의 자유를 무엇이라고 보는가?” 농부들이 답했어요. “우리의 자유는 숲의 자유다. 우리의 자유는 강물의 자유다.” 살림 민주주의는 모든 생명 공동체를 바탕으로 합니다. 공동체는 자기들 물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흡입하는 공기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마땅히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삶의 문화입니다. 새뮤얼 헌팅턴은 우리들이 증오로 만들어졌다고 말했어요. “만약에 내가 누구를 증오하는지 모른다면,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다.” 쓰레기 같은 말이죠. 저는 평론가인 토머스 프리드먼과 자주 토론을 했는데, 그가 9·11 때 이런 시대비평을 했어요. “나는 옆에 테러리스트가 있을까 무서워요. 정부가 확인하도록 권한을 줄래요.” 지금은 이렇죠. “나는 옆에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있을까 무서워요. 정부가 확인하도록 권한을 줄래요.” 여기에 한 가지 더 분명히 하겠습니다. 새로운 불가촉천민을 탄생시켰다! 사람들은 단지 무섭다는 이유로 서로를 증오합니다. 우리는 이 바이러스가 1%의 치사율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단지 1%입니다. 의료전문가들이 말합니다. 가장 안전한 길은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며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라고요. 우리는 지금 면역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요. 이 작은 바이러스가 인류와 행성을 지배했다고만 말합니다. 바이러스는 적이 아니에요. 이 바이러스를 죽일 수도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는 결과만을 만든 겁니다. 하지만 타인이 없으면 나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이 두려움의 문화야말로 지금 가장 거대한 바이러스입니다.
안 = 이미 경제위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감염되지 않았다고 해서 안전하다 할 수 있을까요.
시바 = 당신은 경제위기가 시작됐다고 했는데, 저는 여기에 인류 비극으로 가고 있다고 덧붙이겠어요. 왜냐하면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생계를 잃는 거고, 작은 상점은 특히 한번 문을 닫으면 다시 열기가 아주 어려워요. 지금 어렵사리 유지하는 사람들은 지원받기조차 까다롭습니다. 경제를 이야기할 때면 늘 시장을 말하고 기업 경영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현실은 생계경제예요. 바로 우리 삶이죠. 소시민들의 경제는 바로 목숨입니다. 생계 수단이 무너지면 언제나 자살 뉴스가 나옵니다. 인도에서 특히 그랬어요. 30만명의 농부가 목숨을 끊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 위기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자살을 보고 있습니다.
안 = 나브다냐가 추구하는 지역경제 시스템이 답이라고 생각하나요.
시바 = 그것이 답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