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기가 아니라 관점과 언어
엄기호 글
새롭게 부상하는 교육 -비대면 맞춤형, 실기와 창의, 그리고 언어.
대학교육과 관련하여 올해 있었던 가장 의미심장한 사건은 서울웹툰아카데미가 설립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아카데미를 주도하고 있는 분이 만화평론가인 박인하 선생이다. 즉 이 아카데미는 '실기'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관점'과 '언어'도 같이 가르친다는 점에서 이전의 만화 아카데미들과는 결을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제도권 교육의 붕괴가 아래에서부터/옆에서부터 시작되는 서막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아카데미가 지향하는 방식은 '맞춤형' 교육이다. '멘토'를 두고 교육한다.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향 자체는 1대1의 맞춤형 교육을 지향한다. 이전에 신천지에 대해 분석하면서 기성교회가 신천지를 이길 수 없었던 이유이자 신천지에 청년들이 대거 모이는 이유를 '맞춤형'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신천지에 있다 나온 한 사람은 "기성교회에서는 목사를 만나 신앙상담을 하려면 몇달을 기다려 겨우 몇십분 볼까말까인데 신천지에서는 원하면 언제든 얼마든지 신앙상담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미 한국의 청년들은 학교 바깥에서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맞춤형' 교육에 익숙해져 있다. 물론 이 말 자체가 중산층 기준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 점에서 맞춤형 교육이 아닌 '양산형 교육'일 수밖에 없는 대학교육은 실기/실무/창작 중심의 분과에서부터 서서히 이론에 이르기까지 붕괴해갈 것이다. 물론 이론에서는 '학위'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분과학문들은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이지만 말이다. 단적으로 말해 지금 인문사회계열 박사학위에도 전문적으로 코치해주는 학원?이 생겨나고 있다. 그 영역에서도 맞춤형 교육이 제도 바깥에서부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대학은 온갖 규제를 받기 때문에 결코 대학 바깥의 아카데미와 비교하여 유연할 수 없다. 누차 강조하지만 리처드 세넷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 역량의 핵심은 '유연함'에 있다. 패턴을 파악하고 그 파악된 패턴을 능수능란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을 역량이라고 부른다. 요구가 바뀔 때마다 유연하게 대처해야하는데 그럴 역량이 대학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단적으로 말해 대학은 커리큘럼을 하나 바꾸는데도 아카데미처럼 절대 유연하지 못하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대학에서 올해에 가르친다면 이런 걸 가르치겠다. '문화창작자가 알아야할 사회적 흐름의 키워드 - 능력주의, 래디컬라이제이션 등등" 대학 커리큘럼에 이걸 들이미는 유일한 방법은 '인류학 특강', '사회학 특강' 등 특강류들이며 이건 주로 4학년때 개설된다. 아무리 간이 큰 나라고 하지만 인류학개론이나 이런 수업에서는 기본적으로 가르쳐야하는 것만 하더라도 많기 때문에 들이밀 수가 없다. 커리큘럼 한번 바꾸는데도 엄청나게 많은 공력이 들고 그거 바꾸고 나면 세상 이미 바뀐 상태인 경우가 허다하게 많다.
게다가 대학은 '연구집단'을 표방하기 때문에 교수들이 가르치는 일에 전혀 익숙하지 않다. 기껏해야 도제식이기 때문에 자기가 하는 일에 연구원으로 함께 하며 가르치는게 다다. 이러려면 대학원 교육으로 가야하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학부는 버림받게 된다. 실제로 지금 많은 대학들은 고등학교보다 훨씬 더 못한 수준이다. 교육적 방법론의 측면에서 보자면 거의 방치하다시피한 상태다. (대학원이라도 다른 것도 없지만 말이다.)
대학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유능'한 사람들과 이 사람들을 이용할 줄 아는 자본이 결합한다면 그 파급력은 엄청나게 될 것이다. 쓸데없는/반드시 필요한 양쪽 모두에서 불필요한 규제와 번거로운 간섭과 절차를 다 생략하고 일대일로 맞춤형에, 실기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관점과 언어까지, 그리고 방법론까지 가르친다면 더 이상 학력/자격증 장사가 통하지 않는 영역에서부터 대학은 붕괴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전문'대학의 실기 영역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이 흐름은 인문사회과학과 이론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고 확장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