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실천 0228 나무 심고 수다 떨고
벌써 2월 말이다.
봄이 왔다.
어제는 오일장에 가서 매화, 금목서, 천리향, 열매 치자, 낑깡나무와 보리수 묘목을 구해서 데려왔다.
이웃들도 다와서 흙과 친하고 있었다.
밤에는 철학자 K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상 카톡 수다를 떨었다.
책으로만 보다 실제로는 처음이다.
그런데 아주 오래된 관계인 듯 수다를 떨었다.
실은 책을 통해 이미 만난 관계.
헤겔 연구로 시작했는데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을 읽고
정신분석과 리좀 등 포스트 모던적 사유를 따라가다가
로지 브라이도티의 포스트 휴먼으로 학위를 하고 저서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요즘 코먼즈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고 한다.
영성, 촌스럽지만 수행 이런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오래전 내 책을 읽은 이를 만나면 약간 부담스럽다.
그러나 게의치 않는 편이다.
그는 만나서 정말 기쁘다고 했고
나는 후배를 만나서 정말 좋다고 했다.
그는 내가 왜 인류학을 했는지 오래전부터 묻고 싶었다고 했고
인류학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왜 못하는지 답답해했다.
인류학이 한국에 학문으로 뿌리 내리는 과정에서의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인류학의 핵심은 진화론인데
"인간도 멸종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기후 위기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너무 자연스럽게 멸종의 감각으로 다시 삶의 장을 열어야 하는데 말이다.
진화의 논의를 나름 열심히 펼치는 분은 사회진화론자인 최재천 교수가 아닌가 싶다.
80년대 학생들은 힘들어했지만 90년대 친구들은 잘 알아들었었는데 2010년대 넘어서면서 또 좀 달라졌다.
멸종, 망한다는 것은 너무 자명해서 이야기 되는 것 자체가 싫어서 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는 진보, 발전에 대한 믿음이 여전히 너무 뿌리 깊다고 했고
한국의 진보정치의 방식, 그 한계도 변증법적 사고방식을 넘어서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니겠냐고 했다.
투표는 하기로 했다고 한다.
전쟁의 관점에서 생각한 결론인데 누가에게 할 지는 비밀이라고 했다.
투표로 국민이 된 자부심을 느낀 할머니 같다고 놀렸다.
제니 오델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법>, 자본주의와 절연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세라 허디의 모성/상호 이해의 진화적 기원 <어머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핵심 애증관계로 떠오르고 있는 모녀관계를 그린 김지윤의 <모녀의 세계> 이야기를 하니까
<레이디 버드>라는 영화를 추천했다.
한국서는 <지랄발광 17세>라는 제목으로 나온 듯.
이 이야기는 실은 또문 동인지를 이 주제로 해볼까 해서 내가 떠본 것.
그런데 그녀는 사유할 때 명확히 거리를 두는 편인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분석은 그래서 지금은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철학하는 사람은 모든 것에 명료한 생각을 말해서 좋다.
그는 내가 요즘 우울하다고 하니까 "그러면 안 돼요" 라고 소리쳤다.
자신은 보이 그룹의 열렬한 팬이라고 했고 많이 웃는다고 했다.
"많이 웃으세요. 오늘 많이 웃었지요? 많이 웃었지요?"
몇번이나 다짐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영상통화를 마쳤다.
오늘의 기쁨의 실천은 나무 심기와 영상 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