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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는 예술가

조한 2022.04.17 09:04 조회수 : 273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6168

 

 

우리 할머니는 아티스트

2015.02.25 18:00
[인류의 탄생 ⑦]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모두 설은 즐겁게 보내셨나요. 명절에 일가 친척이 모인다고 하면 흔히 할아버지, 할머니 댁을 방문하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라며 덕담도 하죠.
 
장수는 예전부터 모두의 바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요즘, 장수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걱정거리가 된 듯합니다. 노년층이 미래의 사회와 경제에 부담을 준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띕니다.
 
그런데 문득 의구심이 듭니다. 노년은 정말 우리에게 부담만 주는 문제거리일까요. 우리는 노년의 한 단면만 보고 다른 면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문제가 돼 버린 ‘노년’
 
현대 사회에 노년이 증가한 것은 의학의 발달로 죽지 않게 돼서입니다. 20세기 초만 해도 출산률과 함께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평균수명도 짧았습니다. 특히 유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임신을 해도 섣불리 축하를 하지 않고, 태어나도 100일이 지나서야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런 전통이 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사회에서도 발견됩니다. 이후 안정된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 다시 사망률이 증가합니다. 사망 원인은 주로 사고나 병, 전쟁, 그리고 여성의 경우 출산이었습니다. 현대 문명은 이런 요인을 크게 줄였습니다.
 
하지만 단지 문명 때문에 노년층이 늘어난 것은 아닙니다. 사실 노년, 즉 할아버지 할머니의 수는 문명 이전부터 증가했습니다. 수명은 유전됩니다. 장수하는 가족에서는 장수하는 사람이 많이 나옵니다. 장수에 기여하는 유전자도 여럿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류의 장수는 진화의 결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언뜻 생각해 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오래 사는 게 좋은것이니까요. 그런데 잘 따져보면 좀 이상합니다. 장수가 진화에 유리하려면 어떻게든 자손을 많이 남기는 데에 도움이 돼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여성은 50세를 전후해 폐경을 맞죠. 배란주기가 끝나 더 이상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없습니다. 자손을 후손에 남길 수 없으니, 진화의 ‘효율’을 생각한다면 굳이 폐경 이후의 상태를 오래 유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동물은 폐경기 이후 인간 여성처럼 오래 살지 않습니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고자 인류학자들은 가설을 세웠습니다. 바로 “노인들이 간접적으로 자손 번식에 도움을 준다”는 ‘할머니 가설’입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할머니들은 직접 자손을 낳지는 않지만 손주들을 돌보는 방법으로 후손의 생존률을 높입니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할 가능성도 높아지니 진화에도 유리했겠죠.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 시작은 에렉투스? 사피엔스?
 
할머니 가설을 주장하는 인류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가 처음 등장한 200만 년 전에 노년기가 처음 나타났다고 봤습니다. 그 근거는 두뇌와 몸의 크기였습니다. 할머니 가설이 성립하려면, 나이에 따라 출산률이 떨어지더라도 체력 등 다른 생활력은 쉽게 떨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손주를 돌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자면 아무래도 두뇌와 신체가 점점 커지는 쪽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류학자들은 두뇌와 몸집이 큰 호모 에렉투스가 이런 조건을 만족한다고 봤습니다. 더구나 이 시기에 인류는 뿌리식물을 채집하기 위한 도구를 발달시켰습니다. 이것 역시 육체적 부담이 큰 활동을 할 수 없는 할머니들이 경제활동을 한 근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가설에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검증할수가 없었던 겁니다. 세계 곳곳의 사람들을 실제로 조사해본 결과, ‘할머니 역할’을 한 여자들이 그렇지 않은 여자들보다 특별히 많은 자손을 남기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뼈를 통해 에렉투스의 나이를 측정해 직접 노년인구를 확인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더 어려웠습니다. 일단 성장이 끝난 뼈는 나이와 상관없이 별로 차이가 없었고 개인차도 컸습니다. 할머니 가설은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치아를 통한 연령대의 분류. 맨왼쪽 사진은 제3대구치가 아직 나오지 않은 미성년, 가운데 사진은 제3대구치(맨 아래 치아)가 나온 청년, 오른쪽 사진은 제3대구치가 2배 이상 닳은 노년이다. 세 화석 모두 남아프리카의 유적지 스와트크란스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파란트로푸스)다. - 밀포드 월포프 제공
치아를 통한 연령대의 분류. 맨왼쪽 사진은 제3대구치가 아직 나오지 않은 미성년, 가운데 사진은 제3대구치(맨 아래 치아)가 나온 청년, 오른쪽 사진은 제3대구치가 2배 이상 닳은 노년이다. 세 화석 모두 남아프리카의 유적지 스와트크란스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파란트로푸스)다. - 밀포드 월포프 제공

그래서 저는 레이첼 카스파리 센트럴미시건대 교수와 함께 새로운 방식의 연구를 했습니다. 연령 추측 방법이 정확하지 않으니 과감히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구분할 수 있는 범위인 ‘청년기’와 ‘노년기’로 고인류 화석을 나눴습니다. 청년기의 기준은 고인류학에서 체구의 성장이 끝나고 재생산(임신)이 가능한 때로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치아 중 ‘제3대구치(가장 뒷어금니)’가 나온 시점입니다. 노년은 그보다 치아 마모도가 2배 닳은 시점으로 정했습니다. 어차피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다면 이게 더 솔직한 연구라는 심정이었습니다.
 
저와 카스파리 교수는 모두 768개체의 고인류 치아 화석을 모았습니다. 여기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파란트로푸스 포함)와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유럽 후기 구석기인(호모 사피엔스)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런 뒤 이들 각각에서 청년층과 노년층의 비율을 계산해 비교했습니다.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 노년층 증가가 예술을 꽃 피웠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호모 에렉투스 시절부터 노년기의 삶이 보편화됐다는 할머니 가설의 허점이 발견된 것입니다. 우선 인류의 진화 역사 속에서 노년층의 비율이 점점 늘어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노년층의 비율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약 400만 년 전 등장)보다 호모 에렉투스(200만 년 전)에서 더 커졌습니다. 네안데르탈인(약 60만 년 전 등장)에서는 더 높아졌고요.
 
하지만 노년기가 등장한 시기는 달랐습니다. 네안데르탈인까지는 모두 노년층보다는 청년의 비율이 더 높았습니다. 반면 후기 구석기인(현생인류)에 이르러서는 반대로 바뀌었습니다. 노년 비율이 청년의 2배가 넘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높아졌지요. 우리 현생인류의 시대가 되어서야 인류의 수명이 본격적으로 길어졌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는 삶’이 보편화된 것입니다.
 

후기 구석기 시대인 약 3만 년 전에 그려진 프랑스 쇼베동굴 벽화. 사자가 들소를 사냥하는 모습이다. 쇼베동굴 벽화에는 손바닥 자국이나 발자국, 그리고 상징적인 기호들도 그려져 있다. - 동아일보 제공
후기 구석기 시대인 약 3만 년 전에 그려진 프랑스 쇼베동굴 벽화. 사자가 들소를 사냥하는 모습이다. 쇼베동굴 벽화에는 손바닥 자국이나 발자국, 그리고 상징적인 기호들도 그려져 있다. - 동아일보 제공

재미있게도 후기 구석기 문화는 이전까지의 인류 문화와 혁명적으로 다릅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암각화 등의 예술과 상징 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노년층의 비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은 단순히 우연일까요. 저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예술과 상징은 추상적사고와 연결됩니다. 또 정보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기능이 있지요. 예술과 상징이 늘어났다는 건 그만큼 정보의 전달이 중요해졌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노년은 유용합니다. 3대가 같이 살면 오랜 기간정보를 모으고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세대가 50년 정도를 공유한다면, 3세대는 75년 동안 일어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시기가 많이 겹치면 공유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늘어납니다. 수명의 증가도 오랜 기간 동안의 정보를 모으는 데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 장수해도 3대까지만 모여 산다
 

‘뮐렌도르프의 비너스’. 유럽의 후기 구석기 문화의 대표적인 예다. - 위키피디아 제공
‘뮐렌도르프의 비너스’. 유럽의 후기 구석기 문화의 대표적인 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이런 이유로 후기 구석기 시대 이후 현대까지, 평균수명과 노년층의 수는 계속 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 변하지 않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사는 세대의 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과거 평균수명이 50세이던 시대에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주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살아있었습니다(3대). 그런데 수명이 증가하는 추세대로라면 평균수명이 75세가 된 지금은 증손주가 클 때까지 증조부모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4대가 공존해야 하죠.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칠순이 되도록 증손자는커녕 손자를 보기도 힘듭니다. 예전에 비해 결혼과 출산 연령이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100세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인류는 여전히 3세대가 같은 시대를 사는 후기 구석기 시대의 가족 구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주가 한 데 모인 추석 풍경은 어쩌면 수만 년 동안 끊임없이 반복된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우리가 과거보다 ‘오래’ 살게 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린 그냥 ‘느리게’ 살게 된 것은 아닐까요.

 

●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프랑스의 최고령 기록 보유자인 쟌느 칼멩 할머니의 22세 시절(왼쪽)과 말년의 모습. - 이상희 교수 제공
프랑스의 최고령 기록 보유자인 쟌느 칼멩 할머니의 22세 시절(왼쪽)과 말년의 모습. - 이상희 교수 제공

 

100세 시대를 맞았다고 해서,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더 오래 살게 된 것은 아닙니다. 사고나 병 등 외부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노화로 죽음을 맞이할 때, 이를 ‘절대 수명’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절대 수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절대 수명은 얼마일까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최고령의 기록과 같거나 그보다 많을 것입니다. 현재 절대 수명에서 최고령 기록을 보유한 사람은 1997년 122세의 나이로 사망한 프랑스의 쟌느 칼멩 할머니입니다.

 

(1875~1997). 그리고 최고령 기록 보유자 상위 100명의 나이를 보면 모두 113~119세 사이에 있습니다. 이 가운데 아직 살아 있어서 개인 기록을 깰 수 있는 경우는 6명뿐입니다. 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절대 수명 자체가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간접적인 증거입니다. 100세 시대는 절대 수명이 연장돼서가 아니라, 노년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구 내 노년인구의 비율’이 증가한 현상인 셈입니다.

 


 

※ 동아사이언스에서는 미국 UC리버사이드 이상희 교수의 ‘인류의 탄생’을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2012-2013년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코너로 식인종, 최초의 인류, 호빗 등 인류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상희 교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미국 미시건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2001년부터 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은 고 인류학이며 인류의 두뇌 용량의 변화, 노년의 기원, 성차의 진화 등을 연구하고 있다. 암벽화, 화살촉 등 유적을 자료화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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