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편
오랫만에 서울 가서 영화 세 편 보았다.
팝콘 팔지 않는 단골 영화관에서.
<애프트 영>
물길과 필름포럼에서
돌봄을 전담하는 복제 인간 영의 이야기. 단편소설을 영화화 했다고 한다.
인간은 AI가 되지 않으면 살기 어렵고 그래서 결국 AI가 아이들 키우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
봐도 좋을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캔디와 필름포럼에서
요즘 화두인 폭력에 대한 이야기.
<우리들<, <우리집>, <벌새> 류의 영화.
돌봄의 감각을 가진 이들에게는 참아내기 힘든,
외면했기에 아직까지 이어져오는 폭력의 세계.
남자들의 세계는 놀이터에서부터 시작한다.
초등학교때부터 어머니와 여선생님이 모르는 가학의 세계를 만들어가는데
여자들은 잘 모르거나 남자세상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놔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폭력을 눈치챈 여동생은 더 이상 순진하게 학교 생활을 할 수가 없다.
그 여동생의 시선을 따라가며 보고 느끼는 시간, 그 그렇게 힘들까?
폭력에 시달린 소년은 그것을 되갚으며 폭력적 어른이 되고
폭력적 세상은 수천년 지속되어 왔다.
한시간 십분 내내 살이 떨리는 불안과 긴장의 시간.
이 영화를 견디며 본 내가, 캔디가 대견하다.
그런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자신이 겪었기 때문일까?
겪어낸 이들에게 이 영화는 어떤 해방을 선물하는 것일까?
<브로커> 캔디 라깡과 아트레온에서 팝콘을 먹으며
국경을 넘은 합작, 다른 언어영역간의 협동은 이렇게 어려운가?
만들지 않거나 개봉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고레에다 감독의 그간의 작업을 아는 나로서는
이 수준에서 영화를 개봉한 것이 믿기지 않는다.
<환상의 빛>부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까지 거의 완벽한 영화를 기쁜 선물처럼 봐온 나로서는
그냥 화가 나서 한참을 팥빙수를 먹으며 풀었다.
나도 요즘 글이 잘 안 써지고 산만하기 짝이 없는 글들이 나온 걸 보면서 절필상태인데
고레에다 감독도 그렇다고 하면 백번 이해한다.
그건 시대 탓이고, 잘 안 되면 내지 않으면 된다.
언어를 이해 못하니 서로 좋게 해석하면서 가게 된 모양이다.
이런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고 싶지만 여전히 화가 난다.
이 영화를 들고 홍보를 하는 그 대단한 배우들도 안타깝고.....
제발 이러지 않으면 좋겠다.
<그대가 조국>
어떤 맥락에서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 보고는 싶었지만
같이 가기로한 이가 코로나에 걸려서 마침 안 갔다.
실은 호기심이 발동해서 혼자라도 갈까 했지만
보면 분명 여러 면에서 화가 나고 침울할텐데
같이 풀 사람이 없다면 안 되지.
조은 선생이 같이 가주면 딱인데
개 밥주고 산책 시켜야 한다고 해서 결국 나도 안 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