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모스 6일째
7월 21일 목요일
감기 기운이 있어서 산에 좀 가보려 했는데 그냥 집에서 쉬면서
주말에 할 또하나의 문화 수다 모임 준비를 했다.
주제는 <모녀관계> 발제는 김은주 박사가 해주기로 했다.
김은주 박사는 2017년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는 책을 내서
페미니즘 리부팅에 한 몫을 하였다.
책소개:
여성 철학자 한나 아렌트,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주디스 버틀러, 도나 해러웨이, 시몬 베유, 쥘리아 크리스테바 6인을 다룬다. 이 여섯 인물은 어떤 하나의 주제를 끌어내기 위해 선택된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각각의 사상을 깊이 있게 다루기에는 아주 얇은 책이다. 이 책은 이들 인물들의 멋짐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기획되고 쓰였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여성 철학자다. 사유하고 논의하고 공부하고 가르치며 살아간다. 이 과정은 더없이 기쁘고 즐겁다. 하지만 철학이 ‘남성의 언어’, 특히 유럽·영미 백인 남성의 언어라는 분명한 사실을 자각할수록 ‘이 언어가 내 언어가 맞는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서양 철학사의 계보에는 단 한 명의 여성 철학자도 없으며, 20세기에야 등장한 여성들의 이름은 여성주의 이론과 인문·사회·예술의 주변부에서 언급될 뿐이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괴물을 끌어안고 잠들면서도 치열한 사유와 자기 자신의 욕망을 놓치지 않은 여성 철학자들에 대해.
나는 이 책을 읽고 만나고 싶었는데 마침 철학 서점 소요 서가라는 곳에서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혼자는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은주 선생과 같이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기획과정에서 복잡해져서 안 하기로 하고 우리끼리는 친해졌다.
자기가 뭘 원하는지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어서 함께 이야기 나누면 즐거운 친구.
이제는 영화를 같이 보는 친구가 되었고 또문에도 오게 되었다.
다른 세대와 기쁘게 만날 수 있는 것을 축복이다.
모녀 관계와 모성성,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 모녀 관계를 보고 있다고 해서 발제를 부탁했다.
나는 철학적, 개념적, 진화론적으로 모성과 여성성 문제를 다루고 싶은 데 일단 나중에 하기로 하고
모녀 관계에 집중.
1) 거시 진화적 구조: 근대적 가부장제의 붕괴가 역력해진 상황,
엄격하게 말하면 '붕괴'가 아니라 비인격적 관료제와 자본/돈/사유재산제로 전환이 이루어진 상태
그래서 소유권이 핵심인 부자간의 갈등도 노골화되지 않고 단순해짐
돈 많은 아버지에게는 무조건 복종
돈말 벌어오면 딴 복잡한 소리 안 함.
서로 못 알아들음 (골프치고 자기들끼리 몰려다님),
가족은 모중심 소규모 가족이 됨
그리고 딸들도 자아 실현, 사회적 성공을 목표로 함
이 상황에서 모녀지간의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
2) 상징적 상호작용 차원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모녀관계
- 세대 문화 - 베이붐 세대, 386 세대, 서태지 세대, 아이엠에프 세대 등
- 계급적 조건, 특히 지금 2060을 볼 때 어머니가 대학을 갔는지 안 갔는지의 여부가 주요 변수.
내가 아는 모녀지간이 좋은 경우는 대부분이 고졸에 부부사이가 좋은 경우이다. 건강한 워킹 클라스 출신
- 가족문화 (유교 전통과 제사, 기독교 전통 등 삶의 기본적 오리엔테이션),
- 모녀의 정신분석적 기질 조합 (예를 들어 <나의 해방일지>에서 기정과 미정의 차이
지난 번 가브리엘 타르드의 미시 분석, 특히 '견디는 자'와 '능동적 주체'의 차이,
시노다 볼린 융 분석을 바탕으로한 <우리속에 있는 여신들>에 나오는 7 유형 독립적 여신, 의존적 의신)
성향과 기질, 궁합 차원도 매우 중요하다.
3) 다음세대를 키우는데 관심이 없는 사회
노인들도 자기 권리를 위해 투표하고 오래 살 생각만 하지
지속가능한 삶, 자손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고립/자기생존에 급급한 시대가 되었다.
"모성은 아이를 억압하지 않으면서 주체화/성장시키는 활동"인데
승자독식 사회에서 이 역할을 잘 하도록 키워지는 존재는 없는 듯 하다.
돈을 벌고 성취하고 살아남는데 급급.
이런 과도기적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봉준호의 마더에 나오는 상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아이를 잘 키우려면
적어도 세명 이상의 모성적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또래 집단, 준거집단, 모성적 사회(마을과 같은 유기체적 사회)가 필요하다.
나는 이 점을 계속 강조하고 있지만 매아리 없는 외침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4) 지금의 상황은 관료제가 거의 맡아가고
사실상 아무도 남을 돌보고 fix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아기를 임신하고 낳고 젖을 먹인 어머니라는 존재에게는
여전히 그 막중한 임무가 맡겨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많은 여성들은 비혼, 또는 불임을 택하고
어머니가 된 경우는 자기가 모성에 적절하지 않다는 죄의식을 갖게 되거나
비인간적인/괴물 상태의 막강한 힘과 착각의 존재가 되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영화 로스트 도터 우영우 변호사 사례처럼 어머니는 아이를 버리고
자신은 unnatural mother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미 자폐/오티즘 아이처럼 모와 거리를 두고 있다.
이혼을 하겠다고 하면 슬퍼하기보다 지금 사는 집을 누가 갖게 되는지
자신은 그 사람과 산다고 한 아이 말에 충격을 받고 이혼을 포기한 사례를 나는 알고있다.
오히려 부모 편에서 난리를 치지만 아이는 이미 달라져 있다.
5) 지금 시대를 끌고가는 초거대 기업은 사실상 복제 인간에 더 관심이 있을 것이다.
말없이 스마트하게 24시간 말을 잘 들을 안드로이드과 휴머노이드 제작이 한창 진행중이고
그들이 제대로 활약을 하게 될 때 상황을 논의해야 할 때다.
<또문 수다 모임 형식>에 대해
지난 달 <나의 해방일지>'수다 모임이 겉도는 느낌이었는데 그것은
분석적 비평을 하는 언어와 공감을 하면서 추앙하는 언어가 섞여서 그런 것 같다.
또문 수다 모임을 시작하자는 내 의도는
아무도 아무 것을 fixing 고쳐줄 수 없는 파국의 상황을 두고
새로운 말하기의 장을 열고 싶었던 것.
그런 면에서 fix 하려는 분석 언어를 넘어서고 싶었고 그것을 기대하고 있다.
망가진 행성, 멸종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구도하는 자세,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며 구원의 길을 찾아가는,
아주 새로운 문체, 언어를 찾아가는,
기도문을 만드는 그런 것을 은근히 기대했다.
요즘은 어떤 세미나에서도 만족을 얻기 힘들지만
시와 경전을 읽고 침묵과 명상과 하는
수요 묵상 모임에서 나는 풍성함과 위로를 받는다.
지금 우리는 고요하게 모이는 자리,
그런 자리에서 새로운 언어와 삶의 태도를 익혀야 할 시간을 살고 있다.
달리면 안 되고 성급하게 뭔가 이루려해서도 안 된다.
예외는 있다.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고
분석 언어를 써도 억지스럽지 않는 동네가 있는데
최근에는 장애인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 하는 동네에서 그런 걸 보게 된다.
바닥을 친 곳에서는 여전히 말이 살아 있고 에너지가 나오고 있다.
2022년 퀴어 프레이드에서 #미워해도 소용없어# (국제 엠네스티 부스에서 준비)를 보면서
변화를 향한 힘과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유투브, <미워해도 소용없어>
https://www.youtube.com/watch?v=CJXT-RRM0aQ
꼭 챙겨 보시길!
그래서 개인적으로 또문 수다 모임에서는
총체적 논의, 분석하고 가르치려는 언어를 지양하고 묵상 모임처럼 가면 좋겠다.
분석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분석모임의 이름으로 가면 좋을 것 같고....
여튼 우리 안의 기운을 잘 살려내려면
다양성에 대한 세심한 인지와 함께 수다 모임의 성격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묵상과 추앙, 지지적 수다 모임>이면 좋겠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모임에서는
시작과 끝에 음악을 틀까 한다.
이번에 시작 음악으로는 콜드 플레이의 <Fixing You>
마무리는 <나의 해방일지>에 나오는
최정인의 나의해방일지 노래 정도로 골라보았다.
이준영의 <함께 할 수 있기를>을 할까 하다가
성급한 봉합을 기대해서는 안 됨으로
최정인의 노래로 골랐다. 여성의 목소리여서만은 아니다.^^
그리고, 집에 있으면 뭔가를 듣게 된다.
책 읽어주는 자작나무- 니체 편과 스토익 학파를 좀 듣다가
우영우 관련 유투브들을 들었다.
한 곳에 있으면서 얼마나 대단한 양의 정보를 접하게 되는지....
온라인 세계에 입주한 삶, 심심할 일이 없지만 두렵기도 하다.
하루 세 시간을 걷거나 운동을 해야지~
저녁 식사 후에 감기가 좀 나아져서
밥 로스와 함께 하는 페인트 파티 (밥 로스 paint along party) 한다는 곳을 찾아가보았다.
100불을 내고 참가하는 펀드 레이징 모임이다.
밥 로스는 1983-1994까지<그림을 그립시다>라는 티비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과 그림을 그려 유명해진 사람이다.
EBS 그림을 그립시다
https://www.youtube.com/watch?v=KeuTgFmlcPc
행사 주소를 찾아가니 빌리지안에 있는 작은 와인 가게 테이블 몇개를 빌려서
청년부터 노년까지 모여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대단한 미술가의 갤러리 마당에서 하는 걸 기대했었는데....
허기야 이렇게 가볍게 모여 일을 벌이는 것이 미국의 저력이지.
밥 로스는 1943년 생이고 95년에 돌아가셨다.
그 분의 머리 스타일인 아프로 가발을 쓰고 그분 영향을 받은 세대가 이 자리에 모여든 것 같았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그를 주제로 문화행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풍성한 사회를 만드는 방법이다.
예전 선비들이 자기 스승을 위한 문집을 내고 그것이 곧 학문의 토대가 되었듯이.
학문적이건 예술적이건 이렇게 뭔가를 기리며 같이 모이는 자리, 그것이 시간을 이어가고 삶에 안정감을 준다.
이 분은 워낙 유명한데 지금 검색해보니
스폰서 부부가 돈만 밝힌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2021년도 네플릭스 다큐도 나와 있다.
신비스러움이 없는, 모든 것을 까발리는 세상이 무섭다.
오늘 행사 관련 스넵 사진 몇장 올려본다.
이런 사진 올리는 것도 엄밀하게는 불법이 아닐까 우려가 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