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를 보며
현실을 차단하기
나름의 팬심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우디 알렌이 만든 <카이로의 붉은 장미>가 떠오른다.
영화 제목이 잘 생각나지 않는 곤란함을 종종 느끼며
이 영화 제목은 잊지 않으려고 여러 군데 적어두었던 이유도 다시 영화를 보아야겠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검색해보니 1985년 만든 영화다. 천재의 직관력이란!
희망 없는 삶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주인공에게 유일한 기쁨은 영화를 볼 때 뿐이다.
지금은 영화 외에 무수한 것들이 기쁨의 순간을 선물하고 있고
우리 모두가 현실과 가상세계를 넘나들며 지나고 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이 가상세계면 좋겠다.
아니 실은 극히 일부분을 전체라고 믿고 살아가는 면에서 지금 우리는 가상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런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작가가 되거나 팬덤의 주인공이 되면 살기가 좀 쉬워진다.
무엇을 차단하고 무엇을 받아들이며 오늘 하루를 지낼까?
톨레의 책이 도움이 되는 지점은 그의 에고에 대한 통찰,
그리고 연결된 존재가 함께 느끼는 고통체에 대한 알아차림이다.
그리고 알아차림은 차단하는 법으로 이어진다.
기후 변화를 연구하는 H에게, 생각보다 절망적이지도 우울한 것 같지도 않아 물었었다.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는 말했다. 2050년을 살아갈 파키스탄의 어린이를 생각해보라.
어떤 상황인지 불보듯 보이는데 어떻게 우울해지지 않을 수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나?
나름 차단을 하는 법을 터득해야 하지 않나?
그렇지 않고 어찌 기후변화 연구자가 될 수 있고
인류의 운명을 고민하는 인류학자가 될 수 있나....
글쓰기는 이런 상황을 견디게 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나는 그 동네가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 잘 모르지만
글쓰는 사람들의 놀이터이자 데뷔 플랫폼인 <brunch 브런치>를 좋아한다.
<2023년 새로운 작가의 탄생, 10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10인의 수상자전>
이런 광고/홍보를 보면 기쁘다.
또 열명의 작가가 탄생했다는 소식이자 많은 이들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일상을 살며 성찰하는 이야기이다.
적대의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시간을 멈추고 성찰하는 시민들을 그 곳에서 만난다.
글 쓰는 시민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시민들이 미움을 키우지 않게 하는 시공간인 브런치 같은 플랫폼은
그래서 매우 소중한 기관/활동/공간/사람들이다.
근대 국가가 지원해온 교회이자 절과 같은 기능을 한다.
국가/공공이 최근 지원해온 도서관이자 시민대학이자 공원 쉼터이자 다양한 창의적 공유지이다.
그래서 국가가, 시민적 공공이 지원을 하는 것이 맞다.
세금을 면제해주고 지원금도 주고 공간도 제공하면 좋겠다.
너무 기업적으로 가지 않고 잘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적대를 키우지 않는 곳이 될 수 있다.
또문도 일찌기 브런치에 가입했는데 활동은 아직 저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