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뉴엘 레비나스
요약리투아니아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 후설의 현상학(現象學)과 유대교의 전통을 바탕으로 서구 철학의 전통적인 존재론을 비판하며 타자(他者)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는 윤리설을 발전시켰다.
출생-사망 | 1906 ~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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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1906년 1월 12일(러시아 구력으로 1905년 12월 30일) 리투아니아의 카우나스(kaunas)에서 유대인 부모 아래서 태어났다. 그는 탈무드 교육이 엄격하게 준수되는 집안 환경에서 히브리어 성경과 푸슈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 1799~1837), 톨스토이(Aleksei Konstantinovich Tolstoi, 1817~1875),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1881) 등의 러시아 문학을 읽으며 자랐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의 가족은 우크라이나로 이주하였지만, 러시아 혁명 이후 리투아니아로 다시 돌아왔다. 1923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였고, 1928년부터 1929년까지는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 대학에서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과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강의와 세미나에 참석해 현상학(現象學, phenomenology)을 공부했다. 그리고 1930년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후설 현상학의 직관 이론 La théorie de l'intuition dans la phénoménologie de Husserl>이라는 논문으로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그 해에 바로 출판되었고, 프랑스에 후설의 현상학을 소개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했으며, 1932년 오스트리아의 빈(Wien) 출신의 음악가 레이사(Raissa)와 결혼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파리(Paris)에 있는 유대인 학교인 동방 이스라엘 사범학교(Ecole Normale Israelite Oriental, ENIO)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후설과 하이데거의 사상을 프랑스에 소개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후설의 <데카르트적 성찰 Cartesianische meditation und pariser Vortr¨age>을 프랑스어로 번역했고, 1932년에는 하이데거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레비나스는 프랑스군에 입대하여 러시아어와 독일어 통역을 맡았다. 하지만 1940년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5년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벌목(伐木) 등의 강제노동을 하였다. 그가 수용소에 있는 동안 리투아니아에 있던 그의 가족은 나치스(Nazis)의 대량학살에 희생되었다. 수용소 생활의 과정에서 그는 후설이나 하이데거의 영향에서 벗어나 플라톤 이후의 서구 철학의 존재론적 전통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독창적인 사상을 형성하였고, 그 내용은 1947년 <존재에서 존재자로 De l'existence à l'existant>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레비나스는 1961년까지 동방 이스라엘 사범학교(ENIO)의 교장으로 있으면서 프랑스어권 유대 지식인 콜로키엄(colloquium)을 창설하며 유대주의 재건에 참여했다. 이 시기에 그는 본격적으로 탈무드를 공부하였고, 현상학과 유대교의 전통에 바탕을 두어 자신의 독창적인 사고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장 발(Jean Wahl, 1888~1974)의 ‘철학 학교(College Philosophique)’에서 강의를 하였는데, 1946년부터 1947년 사이에 행한 그 강의의 내용들은 1979년 <시간과 타자 Le temps et l'autre>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1961년 푸아띠에 (Poitiers) 대학의 교수가 되었으며, 1967년에는 낭떼르(Nanterre)의 파리10대학(Université Paris X)에서, 그리고 1973년부터 1978년까지는 소르본 대학(Université de Sorbonne)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1979년 이후에는 교수직에서 물러나 책을 저술하는 데에만 전념하였으며, 1995년 12월 25일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했다.
레비나스는 흔히 ‘네 문화의 철학자’라고 불린다. 러시아의 변방 리투아니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독일 철학을 공부했고, 프랑스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이는 레비나스로 하여금 ‘내부인(內部人)인 동시에 국외자(局外者)’로서 서유럽의 철학적 전통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그가 겪었던 제2차 세계대전의 폭력성은 현대 문명이 지닌 전체주의적 속성에 대한 윤리적 성찰로 이끌었으며, 타자에 대한 인격적인 윤리적 책임감을 출발점으로 하는 독창적인 사상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61년에 출간된 <전체성과 무한 Totalité et infini : Essai sur l'exteriorité>과 1974년에 출간된 <존재의 타자인가 아니면 본질의 저편인가 Aurement que 'être ou au-delà de l'essence>는 ‘타자의 윤리학’이라고 일컬어지는 그의 사상이 가장 체계적으로 표현된 저작들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서구 철학의 전통적인 존재론이 서유럽의 문화나 문명의 위기와 전체주의의 근원이라고 지적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선언으로 대표되는, 인식 주체를 중심으로 하는 존재론은 ‘나’ 이외의 모든 ‘타자’를 ‘나’의 인식 안으로 끌어들이며 ‘타자의 타자성’을 무시하고 동일자의 영역으로 환원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인 체계 안에서 재정의한다. 이런 의미에서 존재론은 모든 것을 예외없이 전체 속에 체계화하는 전체성의 철학이다. 레비나스는 이러한 존재론적 철학을 ‘동일자의 철학’, ‘힘의 철학’, ‘자아론(Egology)’ 등으로 규정하며 비판한다. 이러한 철학이 전체성의 이름으로 개인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레비나스는 이러한 존재론에 대해 자신의 철학을 형이상학이라고 나타낸다. 그는 존재론적 욕구(besoin)와 형이상학적 욕망(desir)을 구분한다. 주체에서 비롯된 존재론적 욕구는 이기적인 존재 유지의 노력이지만, 형이상학적 욕망은 객체로부터 비롯되며 ‘나’에 의해 소유되고 향유될 수 없는 것을 향한 갈망이다. 그리고 존재론이 끊임없이 ‘나’의 세계로 귀환하는 사고(思考)라면, 형이상학은 ‘나’의 세계에서 떠나 ‘나’의 바깥 또는 ‘나’와 절대적으로 다른 자를 향한다. 이러한 구분에 기초해 레비나스는 존재론에 대한 형이상학의 우위를 말하며, 존재론의 전체성에 대립되는 형이상학의 무한성을 강조한다. 전체성은 인간이 유한한 자기 인식의 체계 안에 모든 것을 내재화하려는 욕구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타자는 내가 어떠한 수단으로도 지배할 수 없는 절대적 외재성을 지닌다. 때문에 타자가 누구든 관계 없이 그의 생명을 존중하고 윤리적 관계를 맺을 때 ‘나’의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다. 이처럼 레비나스에게 타자는 단지 공존해야 할 ‘다른 자아’가 아니라, 주체를 구성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무한자이다. 서구의 전통적인 존재론에서 타자는 사고의 대상으로 ‘나’에 의해 그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을 뿐이었지만, 레비나스에게 타자는 ‘나’에게 윤리적 책임을 갖도록 명령하고 호소하는 존재이다.
이처럼 레비나스는 서구의 철학적 전통에 대한 성찰을 통해 현대 문명의 전체주의적 속성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윤리학의 기초를 제시하려 했다. 이러한 레비나스의 사상적 지향은 “윤리학은 존재론에 앞선다(Ethics precedes ontology)”는 표현으로 가장 압축적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그는 ‘홀로코스트(Holocaust) 이후 세계의 도덕성을 끊임없이 탐색했던 철학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서구 철학의 전통에 대한 철저한 비판에 기초한 그의 사상은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를 포함해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주요 저작으로는 <후설 현상학의 직관 이론 La théorie de l'intuition dans la phénoménologie de Husserl> (1930), <존재에서 존재자로 De l'existence à l'existant> (1947), <후설과 하이데거에서의 존재의 발견 En découvrant l'existence avec Husserl et Heidegger> (1949), <전체성과 무한성 - 외재성에 관한 에세이 Totalité et infini : Essai sur l'exteriorité> (1961), <난감한 자유 Difficile liberte> (1963), <4개의 탈무드 강독 Quatre lectures talmudique> (1968), <타인의 인간주의 Humanisme de l'autre homme> (1972), <존재의 타자인가 아니면 본질의 저편인가 Aurement que 'être ou au-delà de l'essence> (1974), <시간과 타자 Le temps et l'autre> (1979), <윤리학과 무한 Ethique et infini> (1982), <민족의 시대에 A l'heure des nations> (1988), <타자에 대한 사유에 관한 에세이 Entre nous. Essais sur le penser-à-l'autre> (199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