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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숙 모내기 하는 날 창비 주간 논평에서

조한 2024.07.03 09:12 조회수 : 0

모내기하는 날

정성숙

새벽 4시에 눈을 뜨자마자 전날 밤에 돌려놓았던 세탁기에서 작업복을 꺼내 빨랫줄에 넌다. 작업복을 다 널고 나미(12살, 진돗개)와 돌쇠(6살, 나미 아들)에게로 다가가면 며칠 만에 본 것처럼 꼬리가 떨어질까 무섭게 흔들며 달려든다. 유선염과 심장사상충 치료약을 우유에 타서 주니 찹찹! 우유 먹는 소리가 활기차다.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고양이 사료도 덜어주고 안으로 들어와 핸드폰 넣을 벨트지갑을 허리에 차면서 시계를 보니 4시 30분이다. 남편을 깨운다.

 

한동안 콧바람 쐐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개들 얼굴이라도 한번 만져주고 집을 나서려는데 철없는 돌쇠는 삑삑이 인형을 찾느라 깜깜한 상태에서 두리번거린다. 내가 대문을 나가기 전에 인형을 물고 와서 내 앞에 떨어뜨리며 던져달라고 하고 싶은지 이게 어디 있지? 어디 있지? 하며 허둥지둥 찾는, 무턱대고 해맑은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트럭의 라이트를 켜고 달려서 밭에 도착하니 4시 50분. 모를 키우고 있는 비닐하우스의 스프링클러를 돌려놓고 창고로 온다. 일곱명의 일꾼이 마실 얼음물과 음료를, 이앙기에 들러붙어 있어야 할 일꾼들 몫과 모판을 실어 나르는 일꾼들 몫 그리고 새참과 점심에 마실 분량을 세개의 아이스박스에 나눠서 담는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모판에 스프링클러를 돌린 지 30분이 지났다. 다른 쪽 하우스에 있는 모판에 스프링클러를 돌리려고 다시 비닐하우스 앞으로 내려오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인력을 조달해주는 사장이다. 일꾼 다섯명을 예약했는데 한명이 몸살로 못 온단다. 아이고~ 내 몸뚱이가 오늘은 죽어나겠구나 싶다. 두명은 모를 실어 나르고 네명은 이앙기와 더불어 모내기하고 나는 논 귀퉁이마다 뭉쳐 있는 보릿대 찌꺼기를 건져내면서 물꼬 관리를 할 계획으로 일꾼 숫자를 맞춰놨는데 한명이 빠진 구멍은 내 몸뚱이로 메울 수밖에.

 

비닐하우스 두동의 모판에 30분씩 관수를 마치고 모판을 실을 트럭을 비닐하우스 입구로 이동하고 있는데 남편이 일꾼 네명을 차에 싣고 왔을 때는 6시 10분. 만능 일꾼인 모따(인도네시아 출신)가 일하러 나타나면 벌써 든든하다. 지게차 운전이며 모든 농기계를 다룰 줄 알고 일머리가 밝고 능숙하다. 나머지 세명의 일꾼은 가디(인도네시아), 와우드(인도네시아), 펑(베트남)이다. 일꾼이 일제히 달려들어 모판 220개를 15분 만에 실었다. 남편은 세명의 일꾼과 먼저 논으로 출발하고 나는 와우드와 트럭을 타고 논으로 간다. 논에 도착하자 6시 40분.

 

남편은 전날 논에 갖다놓은 이앙기에 앉아 대기하고 모따는 비료를 지게차로 들어 이앙기 옆으로 가져와서 비료 네포대를 이앙기 측조 통에 담는다. 내가 트럭을 이앙기 앞에 갖다 대자 일꾼들이 모를 이앙기에 옮겨 싣는다. 남편은 이앙기를 운전하고 모따와 가디까지 같이 타고 이앙기 뒤편의 모가 제대로 심어지는지 비료는 제대로 나오는지 살피면서 모를 심어간다. 펑은 빈 모판을 열개씩 끈으로 묶어서 정리하는데 감탄이 나올 정도로 꼼꼼하다.

 

나와 와우드는 트럭을 이동하면서 모판을 내린다. 와우드는 운전을 못하니 내가 5미터마다 트럭에 올랐다 내리기를 반복한다. 모판을 다 내려놓고 다시 실으러 비닐하우스가 있는 밭으로 트럭을 몰고 달린다. 모판을 싣는 데 25분, 왕복 30분. 내리는 데 30분을 계산하며 물은 운전하면서 마신다. 모판을 싣고 논에 거의 다 왔을 때 먼발치에서 식당의 소형차가 달려오고 있다. 김밥을 사러 갈 짬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 전날 예약해놓은 새참이다. 트럭을 몰고 논에 도착해서 모를 심어놓은 면적을 보니, 미리 점검을 마친 이앙기에 문제가 생기지 않아 오후 6시 30분 전에 네 단지 논의 모를 심을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논 귀퉁이마다 건져내야 할 보릿대 찌꺼기를 오늘은 어쩔 수 없다. 전날 건져냈는데 물을 빼고 낸 다음에 또 가라앉는 찌꺼기가 예상보다 많이 몰려 있다. 모를 심고 물을 넣으면 찌꺼기들이 떠올라 어린모를 덮어 누를 테지만 손이 모자라니 나중에 처리할 수밖에.

 

새참으로 갈비탕을 먹으면서 “펑, 최고!” 하며 내가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빈 모판을 단단하게 묶어놓은 펑을 칭찬하자 펑이 씨익 웃는다. 밥 먹는 자리에서 한국어는 공용어가 된다. 펑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체구까지 왜소해서 먼저 한국에 온 인도네시아 사람들 틈에서 가끔 무시당하는 것 같아 펑을 추켜세워줄 기회를 찾고 있었다.

 

이앙기가 한 단지 논을 다 심어갈 즈음에 모판 내리는 것을 중단하고 물 빼느라고 내려놨던 물꼬를 올려서 물 넣을 준비를 해놓는다. 남편이 한 단지 논의 모내기를 마치고 옆 논으로 이앙기를 몰고 가면 나는 펌프를 가동해서 모내기를 마친 논 입구의 물꼬를 열어 물을 넣기 시작한다. 내가 논두렁을 걷는 동안에 내려놓은 모는 계속 줄어들기 때문에 서둘러 모를 실어 와야 한다. 다시 비닐하우스에 와서 모판을 싣는데 땀이 계속 눈으로 흘러들어가서 거추장스럽다. 젖은 장갑을 낀 손등으로 쓱 닦았더니 흙까지 들어가서 결국 장갑을 벗고 화장지로 대충 닦아낸다.

 

모판을 실어 나르며 모내기 마친 논은 물꼬를 열었다가 물이 적당하다 싶으면 물꼬를 닫고 다음 논의 물꼬를 연다. 오후 4시에는 다음 날 모내기할 네 단지 논들의 물꼬를 내려 물을 빼려고 논두렁을 걷는데 무릎이 뻣뻣하게 굳고 시큰시큰 아프다. 400미터 논둑을 절뚝거리며 걷는데 4킬로미터로 느껴진다. 무릎 관절 소염진통제를 점심때라도 먹었어야 했는데 깜빡 잊었다. 빨리 움직여서 다음 날 심을 모를 한번 더 갖다놔야 하는데 다리는 맥없이 굼뜨고 땀은 바쁘게 겉옷까지 적신다.

 

오후 6시 30분, 남편은 일꾼들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퇴근해서 야구 중계를 시청하면서 밥 차려주기를 기다린다. 나는 펌프를 끄고 물 넣은 논들의 물꼬에서 물이 새는 곳은 없는지 논두렁을 돌면서 확인하고 아이스박스 세개를 챙겨서 창고가 있는 밭으로 간다. 펄이 묻은 아이스박스들을 씻어서 엎어놓고 다음 날 오후 새참으로 먹을 빵과 저녁 반찬용으로 두부를 사서 집으로 다시 출근한다. 오후 8시 20분이다.

 

정성숙 / 소설가

2024.7.2. ⓒ창비주간논평

커버이미지: 당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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