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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일의 글을 읽다 요약해본 것

조한 2024.09.11 22:51 조회수 : 0

고통 속에 있는 자들의 저항과 영성

- 정경일 선생님의 글 줄여본 것 (4.16 생명 안전 공원 예배팀)

 

산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런데 비슷한 고통이어도 어떤 이에게는 그 고통이 자신을 가두는 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타자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이 된다. 어떤 이는 비관하며 자신과 신을 저주하지만, 어떤 이는 고통 속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한다. 어떤 이는 고통에 압도당해 무너지지만 어떤 이는 상처 입은 치유자’(헨리 나우웬)‘가 되어 고통받는 이를 돌본다.

 

재난은 우리를 파괴하지만, 우리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충격과 공포 속에 빠져버리기도 하지만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직관적으로 알아차리며 떠오르기도 한다. 참사가 일어나면 많은 시민들은 동료 시민을 구조하고 집을 잃은 사람에게 자기 집을 개방하며 환대했다. 리베카 솔닛은 재난 피해자들과 이웃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돌봄의 세상을 재난 유토피아라고 불렀다. 솔닛은 재난이 인간의 이타심을 발동시키고 재난 피해자들이 서로를 환대하며 돌보는 가운데 큰 기쁨을 느낀다는 것을 발견했다. 재난 속에서 혼자 살려는 자는 죽고 함께 살려는 자는 산다.

 

세월호 사태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겪으며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무엇으로 살아낼 수 있었을까? 바울은 기쁨베풂을 이야기한다. “큰 환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쁨이 넘치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겪은 환난의 시련이 무엇이었는지 그들이 누린 기쁨이 어떤 것이었는지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말로도 표현 못 할 고통과 시련을 겪어온 세월호 유가족의 삶을 바울의 텍스트는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은 단 한 순간도 행복할 수 없었지만 슬픔에만 갇혀 지낸 것은 아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열과 절규와 분노의 암흑 속에서도 섬광처럼 날아온 기쁨의 순간들이 없지 않았다. 그것은 고통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이들을 만날 때였다. 고통을 괴로움으로 만드는 것은 외로움이다. 고통 속에 있더라도 외롭지 않으면, 고통을 함께 나누려고 곁은 지키는 이들이 있으면 고통은 견딜 수 있다.

 

히브리서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11:1) 라는 구절이 있다. 영성은 희망하는 것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믿게 하는 힘이며 보이지 않는 세계와 미래가 이미 지금 여기에 실재함을 감지하게 한다.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 말씀은 유효하다. 솔닛은 그를 이렇게 설명한다. 희망은 다 잘될 거야라는 최면술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이 (언제 어떻게 누구와 무엇에 영향을 미칠지는 미리 알 수 없다 해도) 중요하다라는 믿음이라고 한다. “희망은 복잡성과 불확실성 가운데서도 구체적 가능성을 볼 수 있게 하며 우리에게 행동하라고 권유하거나 요청하는 전망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계속 패배하면서도 나아갈 수 있는 것은 패배가 벽이 아니라 문이라 믿기 때문이다.

 

우리사이에는 은밀한 약속이 있다. 역사의 시간은 불가역적으로 흐르는 크로노스가 아니라 가역적으로 흐르는 카이로스이며 카이로스의 강물에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만난다는 약속이다. 이 메시아적 시간에서 과거 사람들은 오늘의 우리를 구원하고 오늘의 우리는 과거의 그들과 만난다. 세월호 참사 초기 박성호의 누나 박보나 씨는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떠난 불쌍한 아이들이 아니라 세상을 바꾼 아이들로 기억되길 바라며운동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은밀한 약속의 시간을 보았을 것이다. 빈번히 패배해도 기쁨이 있는 현존의 시간을. 그리고 그 시간이 대립과 적대의 세계를 녹여버린다는 사실을!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고 신의 특별한 자녀도 아니다. 유한하고 취약한 존재로서 현존하는 방법을 알아차렸기에 지구상에서 생존 가능한 하나의 생명일 뿐이다. 그간에는 교회가, 절이, 성당과 모스크 사원이 현존, 함께 다 같이 그곳에 있다는 것의 기적을 알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 웅장한 건물과 제도에 들어가지 않아도, 애니미즘과 토테미즘의 정령을 통해, 또는 신을 믿지 않더라도 고통이 벽이 아니라 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려 가고 있다. 인류사에 성현들이 대거 출현한 축의 시대에 이어 두 번째 축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201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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