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드로잉과 재난 유토피아
할망 미술관 전시는 끝나고 오늘은 적정 드로잉 관찰 보고서를 썼다.
조천읍 도서관, 조용하고 단아한 분위기에서 오랫만에 눈이 피로해질때까지 급하게 썼다.
걱정 드로잉 프로젝트 관찰 보고서
조한 혜정 (문화인류학자, 연세대 명예교수)
1. 들어가며- 재난/위험 사회의 프로젝트
걱정이 넘쳐난다. 가난하고 혼란스러웠던 시절의 것과는 결이 다른 염려와 불안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말이 실감이 나는 시대. 그렇게 원하던 혼자만의 방도 갖게 되었고 먹고살 만한 세상이 되었는데 왜 걱정이 쌓여만 갈까?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SNS에 접촉한 시간이 지면서 불안과 외로움과 걱정이 증폭되는 것은 아닌가? 가만히 보면 괜한 걱정이 아니다. 둘러보면 모두가 촌음을 아끼며 부지런히 뛰고 있는데 성과는 나지 않고 지치기만 한다. 그 무엇보다 부지런히 뛸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고 있어서 불안은 깊어진다.
가난에서 벗어나 모든 국민이 기회 균등한 교육을 받고 직장을 얻어 안정된 삶을 살게 되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빈부격차는 벌어지고 국내 정치는 불안하다. 금융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는 예측 불가능한데 세계 곳곳에서는 수시로 전쟁이 터지고 있다. 이미 핵폭탄이 만들어진 상황인데 말이다. 프란체스카 교황은 이런 상황을 두고 “우리는 지금 3차 대전을 겪고 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하여 기후 위기와 ‘코로나19’라는 전지구적 재난을 온몸으로 겪은 터이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표현대로 재난은 계속 일어날 것이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들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확률이 높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찍고 있는 나라다. 2023년 기록에 의하면 10만 명당 27.3명이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노년의 자살이 주를 이루지만 최근에는 청소년과 청년의 자살률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신경 정신과에 다니며 우울증 약을 먹는 것은 감기약을 먹는 것처럼 일상화되었다. 근대가 약속한 유토피아의 꿈이 깨지고 근대 문명이 몰락하는 ‘파상’의 시간 속에서 개개인은 심히 불안해하는 중이다. 유명연예인에게 열광하는 팬덤, 요가, 명상, 미술 치료, 음악 치료, 가족 세우기 워크숍 등 불안을 잠재우거나 극복하려는 활동들이 주요 산업이 되고 있다. 최소연 미술가가 진행한 <걱정 드로잉>도 이런 시대적 흐름에서 나온 치유적 활동 중 하나이다. 아주 중요한 시대적 프로젝트이자 실험적 프로젝트로 이 글에서는 이 프로젝트의 특성과 치유적 활동으로서의 의미를 몇 개의 개념으로 다루어보고자 한다.
2. 걱정 드로잉의 특성과 효과
걱정 드로잉 수업에 대한 소개는 수업 개요와 진행 계획서에 정리가 되어있으므로 여기서는 인류학적 참여관찰자의 시선에서 그간 수업에 참여하면서 관찰하고 분석한 것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첫 수업에 선흘 1리 주변에 사는 동네 사람들 열두 명이 체육관에 모였다. 체육관은 공간이 넓고 천정이 높아 그 자체로 새롭고 자유로운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참여자들은 나이도 다양하고 원주민, 이주민이 섞여 있고 성별도 여성들이 많지만, 남성들도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근처에 사는 직장인, 2023년 분교에서 본교로 승격한 동네 초등학교 학부모들, 동네에서 식당을 하거나 옷 가게를 하는 주인, 은퇴해서 조용한 삶을 살고 있는 주민 등이다. 첫날에는 참여자들이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그림 선생님의 수업 과정 소개와 함께 화구를 챙기는 법을 배운 뒤에 둥그렇게 둘러앉는 식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림 선생님은 이 수업은 각자의 걱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질 것이며 몇 단계로 진행된다고 소개한다.
단계 1: 해침을 염려하지 않는 무해의 시공간
첫 날 소개한 대로 다음 날부터 참가자들은 자신의 걱정을 잘 드러내는 물체를 가지고 온다. 특히 그날 말을 하고 싶은 참가자부터 그 물건을 가져온 이유와 걱정의 내용을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듣는 참가자들은 주인공이 가운데 놓아둔 물체를 가까이서, 멀리서 자세히 보면서 그린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면서 한 생각들을 그림 한 귀퉁이에 적어 넣는다. 위로의 말이 되기도 하고 걱정을 사라지게 하는 비법이 될 수도 있고 말 없음이 표시도 좋다. 신청자들은 수업을 통해 다른 참여자, 곧 이웃에 살지만 그간 잘 몰랐던 이웃들의 걱정을 알게 되고 위로의 말이나 걱정에서 벗어나는 비법을 선물하는 자리에 있게 되면서 좀 다른 사람들만이 아니라 좀 다른 자신도 만나게 된다. 그림을 그리면서 이웃과 안면을 트고 조용히 그림을 그리며 과하지 않게 그의 걱정을 덜어주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여기서는 “과하지 않게”가 중요하다. 어쭙잖게 설교하거라 만병통치약을 주려고 하거나 꼰대의 언어를 사용하면 피곤해진다. 다행스럽게도 이 수업에 참여한 분들은 모두가 적절한 거리를 둘 줄 아는 분들이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시공간은 어떤 면에서 ‘나의 편’도 ‘나의 적’도 아닌 제3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엘리베이터 타기가 무섭고 층간 소음으로 살인 사건까지 나는 세상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조용한 침묵이 흐르는 시간을 명상의 시간처럼 갖게 되면서 참가자들은 서로에게 해로운 사람이 아니라 무해한 사람으로 만난다. 때로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지만 그것을 미리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함께 한 자리에 모여 특정 시간을 같이 고요하게, 서로를 해치지 않고, 괴롭히지 않고 보내는 경험” 자체로 큰 선물을 받은 것이다. 그가 우리는 시장이 주도하는 사회에 살아가게 되면서 경쟁과 승자독식, 약육강식의 세계를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남을 밟고라도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혹여나 손해나 피해를 볼까 봐 늘 긴장하는 상태로 살아왔다. 가족과 절친한 ‘내 편’이 아니면 모두가 적이고 해칠 가능성이 있는 가해자들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살게 된 것이다. 친구를 사귀기 힘들어지고 핵가족만을 신뢰하거나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은 이런 시대 흐름에서 생겨난 것이다. 반려견이나 반려묘, 그리고 화초 키우기나 텃밭에 몰두하는 것도 사람과 관계 맺기가 힘들거나 불필요하다고 느끼게 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걱정 드로잉 수업은 바로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건다. 저녁을 하고 나와서 자기의 걱정을 부담스럽게 않게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 무해의 관계, 부담스럽지 않은 관계, 느슨한 관계를 경험하면서 조금은 안심이 되는 세상을 느끼게 되는 것, 이것은 그 자체로 치유 효과를 가지며 좀 다른 삶을 상상하고 만들어갈 작은 시공간을 마련한다. 이것이 걱정 드로잉이 주는 첫 번째 선물이다.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 수록작 「고백」에 보면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친구로 삼으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책에 대해 언급한 사회학자 김홍중 역시 서울 리뷰 오브 북스에 쓴 “무해의 시대”(2021)에서 지금 시대에 우리가 유의해야 하는 것은 적극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주지 않는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례를 친절로 착각하며 경계선을 침범하는 자들 눈빛과 태도로 사적 영역을 침범하는 가해를 논하면서 “피해에 대한 공감, 가해에 대한 분노, 무해에 대한 의지”가 청년세대의 시대적 사조가 되어가고 있다고 쓰고 있다. 개발독재 시대의 언어로는 문제를 풀기보다 악화시키기만 할 것이다. 탈근대적 언어를 익히기 위한 과정에 입문할 때가 되었다.
단계 2: 꼰대가 아닌 식으로 말 걸기, 덕담하기, 새 소통법 익히기
이웃의 걱정을 들으며 그림을 그린 후 참여자는 각자의 그림을 바닥에 깔면서 각자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를 이야기한다. 무해의 시공간 속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나 그의 한 작은 고민을 듣게 되고 마음을 내어주는 것, 부담을 주지 않는 덕담을 통해 가볍고 따뜻하게 잠시 만나는 시간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 청년은 자신이 월급을 꽤 받는 편인데도 돈이 전혀 모이지 않는 것이 걱정이라며 할머니가 설날에 세뱃돈을 넣어서 준 색동 주머니를 가지고 왔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한 중년의 이웃은 돈이 들어가기만 하고 못 나오는 주머니를 그린 후 앞으로는 돈이 새 나가지 않고 쌓일 것이라는 덕담을 한다. 각자 그림과 말로 표현한 재치 있는 위로의 말이나 덕담을 담은 그림을 그려내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가자들은 기뻐진다. 이야기의 다양함과 기발함과 덕성스러운 이야기 자체로 감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참여자는 그간 가까이 살고 있었지만 제대로 만나지 못했던 이웃을 만나게 되고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고민과 타인을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을 만나고 된다. 그리고 주변에 얼마나 다양한 생각을 하고 다양한 삶을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은지를 알게 된다. 앞으로 종종 만나 상호 도움을 주고받고 싶은 이도 이 과정에서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섣불리 지레짐작으로 타인을 규정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 보고, 또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의 다양한 고민을 알게 되고, 사람이라는 존재의 복잡미묘함도 보게 되면서 그 와중에 새로운 자아 발견도 하게 된다.
단계 3 : 힘을 빼고 자신과 만나기, 자아 성찰을 통한 탈바꿈
타인의 걱정을 들어주고 덕담을 하면서 참가자는 승자독식적 존재와는 좀 다른 존재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시점에 그림 선생님은 칼러/색을 통해 자신을 표현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타인과 만나고 조금은 열린 상태에서 자신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무수히 했던 방식의 말로서의 규정이 아니라 그림으로, 더 나아가 단순한 색으로 자신을 만나고 표현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그 색에 맞는 시적 문장을 책에서 찾아서 연결하는 작업을 한다. 여기서도 애써 무엇을 찾기보다 우연히 눈에 들어왔는데 마음에 드는 문장, 어떤 면에서 책이 나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책 읽기, 힘을 뺀 책과 만나기를 시도한다. 이는 강박적 자아에서 벗어나 좀은 너그러운 자신과 만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마지막에서 아주 큰 그림 판에 들어가 자신의 세계를 온몸으로 그려본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책의 표지색과 표지도 그려내게 된다.
단계 4: 타인과 편안해지기, 우정어린 존재가 되기
이 과정 내내 참여자들은 상대의 그림에 대해 지적질이 아닌 덕담 어린 말을 하게 된다. 잘 그리고 못 그린 그림이라는 것은 없다.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나타내며 정성을 다해 그 시간을 아름답게 보내면 된다. 타인의 작업에 대해 감동을 자아내는 점을 보고 감탄하는 말을 하게 되고, 또 듣고 되기에 참가자들은 그림 그리는 시간을 자리에 오면 마치 기도하는 자리에 온 것처럼, 교회나 절이나 명상센터에 온 것처럼 느끼게 된다. 일주일에 두세 시간 만나지만 서로의 존재를 예술적인 차원에서, 때로 영적인 차원에서 만나게 된다. 잠시나마 서로를 축복하는 존재로 만나게 되고 이를 통해 경쟁사회가 아닌 우정과 환대의 사회에 대한 감을 갖게 된다.
3, 걱정 드로잉 수업의 사회경제적 효과
이 수업이 사회변화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잠시 살펴보자. 탈근대/탈 인간중심주의적 전환이 급격하게 진행 중인 지금, 우리는 그간 형성된 경쟁적 적대적 몸과 마음을 연결과 우정의 몸으로 바꾸어내야 한다. 앞에서 나는 걱정 드로잉이 그런 전환을 만들어내는 탁월한 학습법이 될 가능성에 대해 정리를 했다. 아래에서는 이 미술 프로젝트가 실은 탈근대적 제주, 탈근대적 삶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상을 해본다. 근대가 국민국가 단위의 시대였다면 탈근대는 지역적 삶과 글로벌 삶이 큰 비중을 갖게 된다. 최근 팬데믹을 거치면서 사회문제를 풀기 위한 방법론 중에 크게 주목받은 것은 <15분 도시> 개념이다. 제주도에서도 오영훈 도지사가 <15분 도시>를 핵심 정책으로 내걸고 있다. 도심이 아닌 읍면동 지역에 이 개념을 적용하면 <15분 생활권>이 될 것이다.
위기가 일상화되고 점점 빈곤해지는 탈근대적 상황에서 사람들은 전보다 여행을 덜 하게 되고 지역적 삶을 안전하고 충실하게 살고 싶어지게 된다. 지금이야말로 이웃 간에 서로 인사를 하고 상호부조의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데 그간의 경험은 그것을 쉽게 할 수 있게 돕지 않는다. 제주의 경우는 원주민들은 선조 대부터 이어진 오래된 관계망에서 머물려는 경향이 있고 외지인에 대해 배타적이다. 배타적이기보다 서로를 제대로 이해할 기회나 이유를 알지 못하고 그간에 했던 나쁜 경험에 묶여 있는 편이다. 한편 이주민들은 탈근대적 삶을 지향하며 제주로 왔는데 급격하게 돈이 생기고 가정 경제가 나아지면서 오히려 가족끼리 똘똘 뭉쳐 성공하고 잘살아 보려는 원주민들을 만나게 되면서 당황하게 된다. 원주민과 이주민의 살아온 삶이나 사고방식이나 라이프 스타일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고 그 거리를 쉽게 메워질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주민과 이주민들은 최근에 일어난 기후위기나 팬데믹, 그리고 정치적 재난들을 같이 겪으면서 세상이 아주 크게 바뀌어야 하고 그를 위해 스스로도 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이주민과 원주민들의 만남이 어색하지만, 여기에서 시도한 ‘걱정 드로잉’과 같은 수업에서는 그 문제가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각자의 고민을 하나씩 드러내면서 걱정 드로잉을 통해 서로를 자연스럽게 알아가고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인근에 살고 있는지도 알게 되면서 개개인은 그 자체로 불안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된다. 같은 생각이나 고민을 하거나 또는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언젠가는 의기투합해서 좋은 동네를 만들어가는데 한몫을 하리라는 기대도 하게 된다. 이해관계 없이 선입견 없이, 있는 그 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걱정 드로잉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게 되면 앞으로 마을 일이나 상호 부조할 일이 생기는 장소에서도 만나게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우호적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돈으로 만나는 계약 관계, 위계 서열 관계, 해결사 관계, 가르치는 관계, 권력 관계를 넘어선 우정과 환대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이 시대가 해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우리는 지금 고도의 경쟁과 적대, 탈락과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세계정치나 국가 정치는 꽤 불안하고 폭력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15분 거리 안에 안전한 생활권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생활권이 ‘우정과 환대’의 마을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면 극심한 불안과 불확실성의 시대이지만 그런대로 서로에게 기대고 협력하며 살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정과 환대의 마을에서 상호부조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아래로부터의 변화’로 명실공히 시대적 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다. 이런 생각에 나는 제주도에서부터 15분 도시/생활권 정책을 보완하여 우정과 환대의 마을을 늘려가기를 제안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걱정 드로잉> 수업과 같아 원주민과 이주민이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만나 공감의 언어와 태도를 배우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걱정 드로잉이 만들어내는 작은 기적이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을 이번 수업을 통해 확인한 이야기는 언젠가 책으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