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시편 정경일 선생의 글 중

haejoang@gmail.com 2020.12.09 21:06 조회수 : 243

겟세마니에 있으면서 내가 얻은 또 하나의 선물 중 하나는 시편의 재발견이다. 수도자들은 고대 유대인들이 시편을 노래로 불렀던 것처럼, 시편에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정과 선율을 붙여 노래한다. 그것을 Psalmody(시편찬송)라고 한다. 노래로 부르기 좋게 편집한 시편은 우리가 사용하는 시편과는 장과 절이 조금 다르다. 시편찬송을 들으면서 처음에는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었는데, 계속 반복해서 듣고 따라 부르면서 선율에 실린 내용에 더 집중하게 되니, 시편은 고통 받는 이들의 노래라는 것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밤기도 중에 시편찬송을 하다, 한 소절에서 가슴이 울컥 했다. “Give us joy to balance our affliction for the years when we knew misfortune(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 수만큼, 우리가 재난을 당한 햇수만큼,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십시오).” (시편 90:15) 여러 해 동안 불행만을 알아온, 불행만을 겪어온 사람이, 고통을 없애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고통에 균형을 이룰 수 있을 만큼의 기쁨을 달라고 하나님께 애절하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시편이 시편인 까닭은 고통을 가장 가까이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시와 노래이기 때문이다. 시편의 시인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악인을 저주하고 하느님께 항의하면서도, 끝내는 하느님을 신뢰하고 구원을 희망한다. 수도자들은 그런 시편을 매 기도 시간마다 서너 편 노래한다. 그렇게 매일 이삼십 편의 시편을 노래하면서 고통 받는 이들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시편은 수도원 안의 수도자들과 세상 속의 고통 받는 사람들을 연결해준다. 시편의 고통 받는 이들의 탄식과 탄원은 오늘 억울하게 고통 받는 이들을 알아차리게 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한다. 수도원은 세상의 고통에 무관심한 이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의 공동체다. 시편은 수도자들에게 세상의 고통 받는 이들을 한시도 잊지 않게 해주는 연대의 종소리다.

목록 제목 날짜
403 호모데우스 시대의 축복 2019.06.19
402 5/22 생애전환과 시대 전환 file 2019.11.26
401 fragility 연약함에 대해 file 2019.05.07
400 유발 하라리와 오드리 탕의 모험, 비상, 경계를 훌쩍 넘기 2020.07.28
399 < 활짝 웃어라!- 문화인류학자의 북한이야기> 추천사 2019.12.26
398 자기를 지키는 길은 글쓰기 밖에는 없다 2021.02.14
397 서울시 온종일 돌봄 실태분석과 정책방안 2020.09.26
396 정의연, 피해자와 지원자 사이의 갈등 (박노자) 2020.05.31
395 이코노미스트 기자의 인터뷰 (꼰대) file 2019.05.27
394 코로나 19 신인류 시대- 들을 만한 이야기들 2020.04.30
393 시원 채록희의 영 어덜트 소설! 2020.12.27
392 이바쇼 2019.10.07
391 이 시대 생기발랄한 이들 2020.06.02
390 어딘의 글방- 제목의 중요성 2021.02.16
389 봉감독, 열정어린 청년기를 보낸다는 것 2019.06.05
388 영도 지역 문화 도시 지역문화 기록자 과정 file 2020.12.03
387 심리학자 김경일 세대론 2020.04.30
386 사회적 영성에 대하여 2021.01.01
385 장선생을 보내며 2021.01.07
384 소년은 어떤 세상을 만나 어떤 어른이 되는가? 2020.07.14
383 아이들의 욕 2019.05.27
382 성평등 관련 인터뷰 (서울 신문) file 2019.08.04
381 영화가 던져주는 화두 -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2021.06.18
380 제주 유네스크 잡지에 낸 글 2020.12.30
379 하자야 고마워! 2019.05.07
378 3차 경기도 기본소득 국제 컨퍼런스 발제문 2021.04.06
377 A green reboot after the pandemic 2020.04.12
376 기후 변화 산호의 상태로 보는. 2020.11.30
375 코로나 시대 여성으로 사는 법 (이원진-해러웨이) 2021.05.09
374 [세상 읽기] 희망은 없다 / 신영전(한대 의대) 2020.02.06
373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2019.05.27
372 그들이 우리는 먹여 살리고 있다 (농촌 이주 노동자) 2020.08.10
371 돌아온 피케티 "사회적 소유, 일시적 소유" 2020.05.28
370 초딩 소년들을 위한 영화 2020.11.30
369 무엇이 우리를 살게 하는가 2020.12.29
368 유럽이 한국으로부터 배울 수 없는 것- 흥미로운 글 2020.04.12
367 the prize winner 총명한 여장부 엄마에 대한 영화 2019.07.04
366 이슬아의 상큼한 글 나눔 2020.04.18
365 일년전 사회학 대회 때 글을 다시 읽게 된다 file 2019.11.26
364 채혜원의 베를린 다이어리- 돌봄 간병 여성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멈춰 있을 것 2020.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