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고정희 기일에 외경 읽기

조한 2022.05.29 16:38 조회수 : 180

묵상 모임에서 읽음

고정희 시 

 

1

외경읽기-

그대가 두 손으로 국수사발을 들어올릴 때

                             

하루 일 끝마치고

황혼 속에 마주앉은 일일노동자

그대 앞에 막 나온 국수 한 사발

그 김 모락모락 말아올릴 때

 

남도 해 지는 마을

저녁연기 하늘에 드높이 올리듯

두 손으로 국수사발 들어올릴 때

 

무량하여라

청빈한 밥그릇의 고요함이여

단순한 순명의 너그러움이여

탁배기 한잔에 어스럼이 살을 풀고

목메인 달빛이 문앞에 드넓다.

 

2

외경읽기-

어느날의 창세기

 

해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지 않는 것은

너그러움일 거야

강물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거스르지 않는 것은

너그러움일 거야

산들이 마을로 무너지지 않는 것은

너그러움일 거야

나무들이 뿌리를 창궁으로 치켜들지 않는 것은

너그러움일 거야

생명 있는 것들의 너그러움

부드러운 흙가슴의 너그러움

공기의 너그러움

천체 운행의 너그러움일 거야

별들이 저마다 주어진 길을 돌고

바람이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우듯

핏물이 밥사발에 범람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너그러움일 거야

세계인의 신음소리가 하늘을 덮지 않는 것은

일말의 너그러움일 거야

돌들이 일어나 소리치지 않는 것은

너그러움일 거야

어머니가 방생한 너그러움

임신한 여자가 담보 잡힌

너그러움일 거야

등뼈를 쓰다듬는 너그러움

살기를 풀어내는 너그러움

아아 우주의

너·그·러·움·일·거·야

 

3

겨울사랑

 

그 한번의 따뜻한 감촉

단 한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목록 제목 날짜
396 호모데우스 시대의 축복 2019.06.19
395 5/22 생애전환과 시대 전환 file 2019.11.26
394 fragility 연약함에 대해 file 2019.05.07
393 유발 하라리와 오드리 탕의 모험, 비상, 경계를 훌쩍 넘기 2020.07.28
392 < 활짝 웃어라!- 문화인류학자의 북한이야기> 추천사 2019.12.26
391 자기를 지키는 길은 글쓰기 밖에는 없다 2021.02.14
390 서울시 온종일 돌봄 실태분석과 정책방안 2020.09.26
389 정의연, 피해자와 지원자 사이의 갈등 (박노자) 2020.05.31
388 이코노미스트 기자의 인터뷰 (꼰대) file 2019.05.27
387 시원 채록희의 영 어덜트 소설! 2020.12.27
386 코로나 19 신인류 시대- 들을 만한 이야기들 2020.04.30
385 이바쇼 2019.10.07
384 이 시대 생기발랄한 이들 2020.06.02
383 어딘의 글방- 제목의 중요성 2021.02.16
382 봉감독, 열정어린 청년기를 보낸다는 것 2019.06.05
381 영도 지역 문화 도시 지역문화 기록자 과정 file 2020.12.03
380 심리학자 김경일 세대론 2020.04.30
379 사회적 영성에 대하여 2021.01.01
378 장선생을 보내며 2021.01.07
377 소년은 어떤 세상을 만나 어떤 어른이 되는가? 2020.07.14
376 아이들의 욕 2019.05.27
375 성평등 관련 인터뷰 (서울 신문) file 2019.08.04
374 영화가 던져주는 화두 -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2021.06.18
373 제주 유네스크 잡지에 낸 글 2020.12.30
372 3차 경기도 기본소득 국제 컨퍼런스 발제문 2021.04.06
371 하자야 고마워! 2019.05.07
370 A green reboot after the pandemic 2020.04.12
369 기후 변화 산호의 상태로 보는. 2020.11.30
368 [세상 읽기] 희망은 없다 / 신영전(한대 의대) 2020.02.06
367 코로나 시대 여성으로 사는 법 (이원진-해러웨이) 2021.05.09
366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2019.05.27
365 그들이 우리는 먹여 살리고 있다 (농촌 이주 노동자) 2020.08.10
364 초딩 소년들을 위한 영화 2020.11.30
363 돌아온 피케티 "사회적 소유, 일시적 소유" 2020.05.28
362 무엇이 우리를 살게 하는가 2020.12.29
361 유럽이 한국으로부터 배울 수 없는 것- 흥미로운 글 2020.04.12
360 the prize winner 총명한 여장부 엄마에 대한 영화 2019.07.04
359 이슬아의 상큼한 글 나눔 2020.04.18
358 일년전 사회학 대회 때 글을 다시 읽게 된다 file 2019.11.26
357 채혜원의 베를린 다이어리- 돌봄 간병 여성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멈춰 있을 것 2020.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