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고정희 기일에 외경 읽기

조한 2022.05.29 16:38 조회수 : 424

묵상 모임에서 읽음

고정희 시 

 

1

외경읽기-

그대가 두 손으로 국수사발을 들어올릴 때

                             

하루 일 끝마치고

황혼 속에 마주앉은 일일노동자

그대 앞에 막 나온 국수 한 사발

그 김 모락모락 말아올릴 때

 

남도 해 지는 마을

저녁연기 하늘에 드높이 올리듯

두 손으로 국수사발 들어올릴 때

 

무량하여라

청빈한 밥그릇의 고요함이여

단순한 순명의 너그러움이여

탁배기 한잔에 어스럼이 살을 풀고

목메인 달빛이 문앞에 드넓다.

 

2

외경읽기-

어느날의 창세기

 

해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지 않는 것은

너그러움일 거야

강물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거스르지 않는 것은

너그러움일 거야

산들이 마을로 무너지지 않는 것은

너그러움일 거야

나무들이 뿌리를 창궁으로 치켜들지 않는 것은

너그러움일 거야

생명 있는 것들의 너그러움

부드러운 흙가슴의 너그러움

공기의 너그러움

천체 운행의 너그러움일 거야

별들이 저마다 주어진 길을 돌고

바람이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우듯

핏물이 밥사발에 범람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너그러움일 거야

세계인의 신음소리가 하늘을 덮지 않는 것은

일말의 너그러움일 거야

돌들이 일어나 소리치지 않는 것은

너그러움일 거야

어머니가 방생한 너그러움

임신한 여자가 담보 잡힌

너그러움일 거야

등뼈를 쓰다듬는 너그러움

살기를 풀어내는 너그러움

아아 우주의

너·그·러·움·일·거·야

 

3

겨울사랑

 

그 한번의 따뜻한 감촉

단 한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목록 제목 날짜
432 오지랍의 정치학 2024.11.16
431 강원네트워크 2024.11.08
430 새로운 학교, 교사들의 즐거운 시작 file 2024.11.08
429 새로운 학교 강원 네트워크 플레이리스트 2024.11.08
428 김진호 안병무 오클로스론의 현재성 2024.10.05
427 안병무론 현존 2024.10.05
426 선악의 기원 2024.09.13
425 정경일의 글을 읽다 요약해본 것 2024.09.11
424 세계 민주주의의 날 톡 콘서트 티저 그리고 발표ppt file 2024.09.11
423 세계 민주주의의 날 발표문 file 2024.09.11
422 할머니 교회 창립 95주년 기념하는 글 2024.09.11
421 9/2-9/9 바쁜 서울 일정 중 영화 2024.09.11
420 퍼펙트 데이즈와 빔 벤더스 2024.09.11
419 낸시 프레이저 좌파의 길 식인 자본주의 2024.08.11
418 르 귄 SF와 미래 (세상 끝에서 춤추다) 2024.07.25
417 세상의 끝에서 춤추다. (어슐러 르 귄) 2024.07.25
416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 조문명 해제 중 2024.07.18
415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 퍼거슨 2024.07.18
414 <인류학으로 보는 SF> 추천의 글 2024.07.12
413 인류세 관련 정리가 잘 된 글 2024.07.10
412 조한의 말 구체성 상황적 진리, 푹 쉬고 소동 2024.07.03
411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2024.07.03
410 정성숙 모내기 하는 날 창비 주간 논평에서 2024.07.03
409 여성학회 40주년 기념 축하 글 file 2024.06.10
408 소크라테스와 제자들, 예수, 그리고 축의 시대 2024.05.20
407 스승의 날, 훈훈한 하자 동네 이야기 2024.05.09
406 쓰지는 않고 읽기만 한다 2024.05.05
405 4월 말에 본 영화들 2024.04.29
404 손희정 <손상된 행성 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 2024.04.29
403 신윤경 컬럼 20231101 2024.04.25
402 신윤경 컬럼 한라일보 4/24 2024.04.25
401 추천의 글 <기후 돌봄> 석 줄 2024.04.20
400 조민아 바이러스와 한국교회 file 2024.04.18
399 기후 돌봄 Climate Care 2024.04.15
398 윤석남 86세, 여전히 씩씩한 화백 2024.04.15
397 지관서가 세번째 정희진 소개 2024.03.30
396 이번 주 상경해서 본 영화 - 근대, 영화 감독, 그리고 희생자들 2024.03.24
395 인권축제 축하글 2024.03.24
394 4회 인권 축제 축사를 쓰다 말았다. 2024.03.24
393 지관서가 김남규 님이 보낸 삽화 2024.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