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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 문명 그 이후 (슬기로운 좌파 생활 서평)

조한 2022.02.01 13:32 조회수 : 139

영원 불멸의 꿈 꾸는 영웅서사 그 이후를 살다/쓰다

슬기로운 좌파 생활 서평

 

두 소년의 양육자이자 마흔두 번째 책을 펴낸 명랑경제학자 우석훈에게

 

<88만 원 세대>를 읽던 해를 떠올려 봅니다. 2008년 월가 파동 바로 직전이었군요. 이어서 출간된 한국 경제 대안 시리즈 4부작. <직선의 대한민국>, <촌놈들이 제국주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을 읽으면서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 책들은 정말이지, 탁월한 에쓰노그래피 (문화기술지)입니다! 그 책들을 읽으면서 이 사람은 눈썰미가 대단한 천재구나,” “좋은 경제학자란 훈련 받지 않아도 인류학자가 되는구나!” “우 박사가 미국에서 유학했다면 이런 작품들을 써낼 수 있었을까?” 등등의 생각을 했었습니다. 유럽에서 유학한 우석훈과 같은 청년 학자들이 조만간 미국 편향의 식민지적 한국 사회과학계를 바꾸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나는 바로 우 박사를 <문화 이론><대중문화 연구> 수업에 초대했고 그때 영감을 받은 학생들은 지금 사회 곳곳에서 좌파 생활을 즐겁게, 또는 고달프게 하고 있을 겁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장혜영 국회의원도 그때 인연을 맺은 경우이지요. “이 책은 미래 좌파의 새로운 스타일로 비분강개 대신 명랑함과 상냥함을 제안하는 그가 응달에서 자생하는 한 줌의 젊은 좌파들에게 보내는 조심스러운 자기소개와 연대의 편지다.”는 소개글이 우 박사와 이 세대를 다시 연결하는 계기가 되면 합니다.

 

이 책에서 우 박사는 파시스트적 남자 청년들과 기존 정치권의 야합이 초래할 어두운 미래를 걱정합니다. ‘남성 쇼비니스트들의 여성에 대한 적대감을 이용하는 극우 정권과 그들과 맞짱 뜨느라 결국 비슷한 행보를 하는 진보 정권에서 기대할 것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유럽에서는 이주민들에게 향하는 적대와 혐오가 한국에서는 또래 여성들에게 향하게 된 특유의 현상을 분석해줍니다. 온통 돈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세상에서 성장하는 소년들이 게임과 유튜브에 재미를 붙이다가 특목고에 가는지 못 가는지가 판가름 나는 중학교 2학년 정도가 되면 여혐사이트를 드나드는 여혐 극우가 되어 있을 거라는 분석은 탁월합니다. 남자가 되는 길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온라인에 몰려다니는 패거리 남자 선배들을 곁눈질하다가 닮아가는 소년들을 누가 나무랄 수 있을까요? 강정 바다를 지키려는 활동의 장에서 만난 예술가를 베를린에서 또 만났었는데 그녀는 함께 온 중학교 2학년 아들이 엄마는 페미냐라며 말끝마다 공격한다며 곤혹스러워하고 있었어요. 여혐 마초의 언어를 먼저 익혀버린 아들과의 불화가 잘 풀렸기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우리는 이 소년들과 친구가 될 괜찮은 남자들을 찾고 연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십여 년 전에 같이 공부했던 대학생들을 떠올려봅시다. 개인성과 다양성을 말하던 ‘X세대/신세대에 속하는 그들은 이대남과는 상당히 다른 생각과 경험치를 갖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그때 같이 놀았던 청년이 놀러 왔길래 원고를 보여주었더랬어요. 단숨에 읽고는 보수 꼴통과 자기 세대는 상극이지만 586 세대도 자기 세대를 피곤해한다고 했습니다. 개성을 강조하는 서태지 세대를 윗세대는 거북해한다는 것이지요. 반면 신자유주의적 단련을 통해 월급 올려줄 테니 열심히 하라고 약속을 하면 그렇게 하는 2030 세대와 기성세대는 거래가 가능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좌파의 설자리는 점점 좁아질 것 같습니다.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피케티는 사회적 소유와 일시적 소유 개념을 부각합니다. 세상에 온전히 개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부는 없다는 것, 재화의 축적은 언제나 사회적 과정의 결실이며 사회제도와 사회적 분업, 그리고 인류가 긴 시간을 통해 쌓아온 지혜에 의존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사적 소유에 바탕을 준 경제학의 판을 뒤집고 있는 것이지요. 청년기본자산제를 제기하며 부의 대물림을 사회화하여 부의 선순환을 이루어내자는 피케티의 제안이 흙수저 금수저 논의가 이미 일었던 이 땅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활동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에게 좌파는 만물은 서로 돕는다라는 명제를 실천하는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수업에서 가르친 것도 그 명제를 실천하는 것이었고요. 그런데 우리가 해내야 하는 전환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전쟁과 착취를 기반으로 진보한그간의 남성 중심적 역사는 실은 문명화가 아니라 폭력적 야만의 역사였지요. 영원불멸을 꿈꾸는 영웅주의적 남성 서사와 유일신관이 담고 있는 폭력의 세계관을 넘어서야 합니다. 수녀 출신 역사학자인 케런 암스트롱은 인류사에서 위대한 사상과 종교들이 출현한 시기를 축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BC 9세기에서 BC 2세기에 터져 나온 통찰력에 빛나는 사상들은 실은 지극히 비참한 시대 상황이 만든 것이었지요. 타인의 고통과 인간의 비참을 함께 나누는 공감과 자비의 정신을 강조한 대 종교는 삶을 지탱하기 힘든 비참한 상황에서 출현한 사상이었다는 것이지요. 그 종교가 지탱해온 3천 년 끝무리에 인류는 또한번 지극한 비참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직화한 자본과 국가 폭력이 지배하는 문명을 넘어 상호 부조하는 살림의 역사로 들어가는 길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우 박사가 초대하고자하는 좌파 생활자들이 살림의 시대를 열어가는 페미니스트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창의적 활동이 가능하고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우정의 세계를 함께 만들어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비장함과 엄숙주의로 놀이의 정신을 억압하며 패거리를 만들어 힘겨루기에 급급한 시대를 거부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명랑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슬기로운 좌파 생활 2>를 기대하겠습니다. 조만간 소년들과 작당의 시간을 가지도록 해요. 나날의 기쁨의 실천 속에 건강하시고  좌파생활의 달인 이반 일리치의 말로 편지글 마무리 합니다.

 

 

우정이란 자유의 공기를 함께 마시는 것무엇이 우정을 질식 시키는 지를 알 수 있지만 무엇이 우정의 정기를 길러내는 지는 알 수 없다우정의 정기는 뜻밖에 생기는 것이지만 오래 지속되고 그 정기는 기적을 낳는다우정의 정기는 지키려고 애쓰는 순간 질식하기 시작했다가 이용하려고 작정하는 순간 타락하게 된다.”

 

202221일 제주에서 조한 (문화인류학자. ‘망가진 행성에서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길을 찾고 있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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