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다시 칼럼 쓰기로

조한 2020.01.20 11:58 조회수 : 237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숨어버리기에는 손주 세대를 볼 면목이 없고  

평생 한 일이 일상을 관찰하고 글을 쓰는 행위 였던지라........

나는 상식적이라고 하기에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다들 안 된다고 해도 "왜  안 되는가?" 를 물으며 주변을 둘러보고 상황을 관찰하면서

그 일을 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시작한다. 

지금과 같이 변화에 대해 너그럽지 못한 방향으로 갈 때 그런 일은 그리 즐겁지 않다.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도 하다.

가만히 숨어들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다른 이유로도 글쓰기는 점점 어렵다.   

젊을 때  나는 생각한 것을 바로 글로 옮겼던 것 같은데 (그 래서 한 두달 안에 초벌책 원고를 쓰기도 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글을 쓰고 너무나 많이 고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글을 그만 써야 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끼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185쪽)

"나는 쓰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생각한 것을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문장을 지어 나가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쓴다고 하는 작업을 통해서 사고를 형성해간다. 다시 고쳐 씀으로써 사색을 깊게 해나간다.  그러나 아무리 문장을 늘어놓아도 결론이 나오지 않고, 아무리 고쳐 써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럴 때에는 그저 가설을 몇 가지 제시할 수 밖에 없다.  혹은 의문 그 자체를 차례차례 부연해갈 수 밖에 없다. 혹은 그 의문이 지닌 구조를 뭔가 다른 것과 구조적으로 맞대어 비교 하든지."

문장을 지어 나가면서 현상을 파악하기. 현상이 너무 복잡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글을 다시 쓰기로 했다. 

단어를  줍는,  주변을 부지런히 관찰하고 질문하는  노동으로서의 글쓰기.

 

 

[조한혜정의 마을에서]어찌할까, 이 깊은 우울을!

다시 칼럼을 쓰기로 하면서 상큼한 글만 쓰자고 다짐했는데 쉽지 않다. 오늘도 우울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는다. 스마트폰을 켜지 말았어야 했는데…. 호주 산불은 여전히 번지고 있고 미국은 호르무즈 파병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쟁터에 가고 싶다는 청년의 댓글이 올라와 있다.

[조한혜정의 마을에서]어찌할까, 이 깊은 우울을!

모든 비극에 참여하려 했다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될 테니 한 가지에만 관여하라던 사사키 아타루의 조언을 떠올려보지만 무력감은 이미 내 몸에 들어와 버렸다. 세상은 너무 많이 변해 버렸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글처럼 “나는 그것을 물속에서 느끼고, 대지에서도 느낄 수 있고, 공기 속에서 냄새로 느낀다. 그 모든 것은 이제 사라졌다. 그 모든 걸 기억하는 사람도 사라졌다”.

2016년 말 광화문광장에서 콜드플레이의 노래 ‘Viva La Vida’가 울려 퍼질 때 잠시 희망을 걸어보기도 했다. 이제는 그때 신나게 불렀던 그 노래가 왕이 되고자 했던 우리 모두의 마지막을 노래한 것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제 난 홀로 잠을 자고 내가 한때 지배했던 거리를 배회하지. 난 알아차렸네. 나의 성은 소금 기둥, 그리고 모래 기둥 위에 서 있었다는 걸. 오 누가 왕이 되고 싶어 하겠나? 절대로 진실한 말 따위는 없다네.” 자신에게 닥친 비극적 사건을 두고 신에게 울부짖을 수 있었던 고대인들이 부럽다. 인간에 의해 자행된 “설명할 수 있는 비극”을 견뎌야 하는 현대인은 얼마나 우울한가?

나는 이런 시대에 우울하지 않은 사람은 위험한 존재라 생각한다. 크레이그 리슨 감독의 다큐 <플라스틱 바다>에 나오는 죽은 새의 위장에는 플라스틱과 비닐이 빼곡하게 들어가 있었다. 이런 불편한 장면을 줄기차게 보게 만드는 넷플릭스는 전 지구 시민을 위한 대학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 속편을 보면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이 의외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정상회의 직전에 일어난 파리 테러 사건 때문이었다고 한다. 잠시 세계 정치인들이 평상심을 잃고 죽음 앞에서 마음이 흔들렸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나는 끔찍한 뉴스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꼬박꼬박 챙겨 보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코에 낀 빨대로 괴로워하는 거북이 동영상을 보고 아이는 더 이상 빨대를 찾지 않는데 어른들은 무감각하다. 언젠가 친구에게 왜 이런 현실을 보면서 흥분하거나 우울해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자기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나서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이 바로 그 편협한 전문가주의를 벗어나야 할 때 아닌가? 그간의 전문성이 지금의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새로운 눈으로 현상을 보기 시작해야 하지 않는가?

현대 문명은 인간에게 신이 되라고 부추겼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했던 현대인, 엄격한 신과 고루한 가부장과 가난한 마을을 떠나 자수성가한 청년들은 이제 자기 확신에 가득 찬 노인이 되었다. 수시로 시시비비를 가리며 국가 권력의 분신인 듯, 영원불멸의 신인 듯 행동하는 그들·나·우리는 지금 강박증과 분열증을 앓고 있다. 치유가 가능할까? 추운 광화문광장에 시위하러 어김없이 나가는 부모와의 반목을 정치 이야기를 하면 벌금을 내는 것으로 해결했다며 자랑하는 후배가 있다. 가족은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서로 마주하기 때문에 ‘현생인류’가 탄생했는데 7만년이 지난 지금, 신이 된 호모데우스는 더 이상 서로를 마주하려 들지 않는다.

조건의 변화 없이 의식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지금은 현상을 바라보는 의식을 바꿀 때가 아닌가 싶다. 유일신의 이름 아래 구축된 근대를 해체하는 것. “타 종교에도 진리의 빛이 있다”며 종교 간 대화를 시작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런 면에서 탁월한 이 시대의 선각자이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 다양한 신과 정령 중 하나로 살아가는 세계를 상상해보자. 그 신들의 세계에서는 개와 고양이와 나무와 정령들도 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배안에 비닐과 플라스틱이 들어차 있는 새와 거북이와 고래도 아프다고 소리친다. 나는 ‘사회’를 살려내기 위해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말해왔지만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적 존재로서의 회복을 해내지 못하면 기본소득 제도도 효과를 내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신들과 인간, 다종 다기한 생명체와 인공지능의 존재가 어우러지는 새로운 지구의 시간이 열리고 있다.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신들과 아침마다 지구인에게 우울의 화살을 쏘아대는 정령들과도 친해져야 할 시간.

목록 제목 날짜
276 마을 체육관에서 벌어진 방학 주말 학교 file 2020.01.27
275 김영옥 흰머리 휘날리며 2022.03.05
274 플라톤 아카데미 발표 개요 1.1 2023.08.15
273 역시 해러웨이 2021.07.30
272 명필름의 <당신의 부탁> file 2019.07.05
271 공정한 입시가 아니라 교육을 바꾸어야 할 때 2019.10.03
270 기후 위기 비상행동 2019년 9월 21일 file 2019.09.22
269 8년이 지난 세월호 이야기 file 2022.11.18
268 경향 컬럼 여가부 관련 2020.08.09
267 모두가 신이 된 호모데우스의 시대 2019.08.01
266 다시 서울로 2019.08.18
265 장자의 마음 "나를 믿기로 했다." 빈둥빈둥 2022.02.17
264 기본소득 컨퍼런스 발표 초록과 ppt file 2021.04.20
263 20대 남자와 여자의 거리 2021.08.12
262 재난의 시대, 교육의 방향을 다시 묻다. 2022.03.19
261 개교하면 온라인 학습과 실공간 학습을 잘 엮어내야 2020.05.08
260 기본소득과 기초자산 (사회적 경제연구소) 2020.01.28
259 좋은 인터뷰 2020.05.20
258 장애가 장애가 아닌 삼달다방 file 2020.04.07
257 또문 리부팅 2021.11.02
256 시편 정경일 선생의 글 중 file 2020.12.09
255 대한민국 살기좋은 나라.... 2020.09.25
254 3월 20일 동인지 모임 : '모녀/모성' 또는 '나를 살게 하는 것' file 2022.03.21
253 11/21 서울 지식이음 포럼 축제 기조강연 file 2019.11.25
252 다섯편의 영화를 보고 LA에 왔다 2019.07.26
251 라이프 3.0 인문학 file 2019.11.26
250 artificial intelligence, ethics and society 20200208 2020.02.09
249 오름의 여왕 따라비에서 file 2019.07.07
» 다시 칼럼 쓰기로 2020.01.20
247 기후 변화 학교 (표선) file 2020.11.16
246 어떤 ‘코로나 서사’를 쓸 것인가 (황정아) 2020.03.07
245 아감벤 <내가 보고 듣고 깨달은 것> 중에서 2024.02.15
244 큰 위기, 작은 소동, 그리고 재난 학교 file 2020.02.28
243 강릉 <2021 모두를 위한 기후정치> file 2021.11.03
242 어린이 선흘 마을 예술 학교 4/17-5/3 월수금 2023.03.31
241 대면 수업 시작, 혼란은 불가피함 2020.05.12
240 THE GREAT HACK, 더 이상 공정한 선거는 없다 2019.07.27
239 왜 지금 마을과 작은 학교를 이야기하는가? (춘천 마을 이야기) 2022.05.16
238 10만년 전 사건, 공감능력의 출현과 협동 번식 (허디) 2022.01.05
237 마르켈 총리의 코로나 사태 관련 담화 2020.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