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저활성 사회 (정근식) 다산포럼

조한 2020.04.07 09:21 조회수 : 182

저활성 사회가 남길 숙제들

글쓴이 정근식 / 등록일 2020-03-17 10:20:38 / 조회수 95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코로나 사태가 약간씩 진정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이나 이란, 미국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어서 걱정은 여전하다. 예방, 검사, 확진, 완치 또는 사망으로 이루어지는 감염병 관리 체계에서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독특한 패러다임을 구축했다. 예방수칙준수, 검사능력과 실적, 그리고 낮은 치명률 등에서 독보적인 지표를 나타내자 세계의 전문가들은 한국의 정보의 투명성과 관리의 효율성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역 봉쇄와 같은 강권적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 인권의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역시 공포와 혐오보다는 연대!

 

 

 

이번 코로나 사태는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인종주의적 혐오와 세계 시민적 연대의 길항을 잘 보여준다. 우리의 경우 초기 국면에서는 중국인들이 주로 혐오의 대상이 되었고, 이들의 입국금지를 일부 보수정치권에서 강하게 요구했지만, 우리 정부는 끝까지 중국인 입국 금지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두 번째 국면에서는 신천지교회의 무언가 숨기는 듯한 행태가 비난의 표적이 되면서 청도 대남병원 정신병동이나 몇몇 요양원들이 방역의 가장 취약한 장소라는 점이 드러났다. 그러나 대구와 경북의 확진자 수 급증으로 병상이 부족한 상황에서 광주가 내민 손길은 일종의 청량제였다. ‘달빛동맹이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진 병상 나눔 운동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고, 시진핑 주석도 감사의 표시를 전해왔다.

 

 

 

최근 구로 콜센터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이후 열악한 작업환경을 가진 노동현장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장소라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앞으로 수도권에서의 확산 여부가 코로나 사태의 운명을 결정할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아무리 급박한 위기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은폐보다는 투명한 공개가, 혐오보다는 연대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적 가치임에 틀림없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의 통찰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그는 일찍이 수용소와 같은 총체적 제도(total institution)와 집단적 오명에 대한 사회적 원리들을 탐구했고, 일상생활에서의 비대면 상황이나 사람들간의 물리적 거리가 갖는 사회적 의미의 중요성을 밝혔다. 물론 그가 감염병 때문에 마스크를 늘 착용해야 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일상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시대를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고활성 사회에서 저활성 사회로

 

 

 

이번 코로나 사태는 우리의 현대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지난 70년간 우리 사회를 움직여온 에피스테메(인식론적 틀)는 성장론적 발전사관이었다. 특히 박정희 정권에서 이것은 도전할 수 없는 규범이 되었다. 사회는 항상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으로 상정되었고, 국가가 규정하는 질서를 비판하거나 회의적 시선을 보내면, 그 사람은 따돌림당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공공의 적으로 간주되어 감방에 가기도 했다. 그러나 1998년 우리는 처음으로 IMF 사태에서 경제가 수축되거나 퇴보할 수도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국난 극복이라는 개념도 등장했지만, 특히 청년들은 국가가 부여하는 규범이 오류일 수도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부터는 민주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정치도 퇴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경제의 영역에서, 두번째는 정치의 영역에서 발전의 신화가 깨졌지만, 사회의 영역은 그나마 신화가 유지되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볼 때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빠르게 움직이며, 어슬렁거리거나 쉬는 것을 싫어하는 사회, 거기에 하나 더 보탠다면, 좁고 빽빽한 환경에서도 잘 견디는 사회였다. 오죽하면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처음 배우는 단어가 빨리빨리였을까.

 

 

 

나는 이런 특징을 가진 사회를 고활성 사회라고 부르고 싶은데, 이제 우리는 코로나 때문에 처음으로 그것과는 반대인 저활성 사회를 경험하고 있다. 생산과 교육의 공간들이 폐쇄되고 생활공간은 개별화되고 있다. 사회가 돌아가는 속도가 느려지고, 사람들간의 상호작용이 축소되는 초유의 경험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럴수록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서비스업 종사자들이나 자영업자들은 견딜 수 없게 된다. 세계적 공황까지는 아니더라고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치를 정부가 앞장서서 준비해야 한다. 전주시가 시행하기 시작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코로나 긴급재정지원'이 예사롭지 않다.

 

-글쓴이: 정 근 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목록 제목 날짜
240 마르켈 총리의 코로나 사태 관련 담화 2020.03.20
239 온라인 교육, 준비하지 않은 대학 2020.04.07
238 새해 맞이 영화 2019.12.29
237 청소년 기후 행동 2020.03.14
236 제주시 양성평등 주간 강연 자료 file 2019.07.07
235 고정희 시선 초판본 (이은정 역음, 2012) 2021.10.19
234 운전기사가 보여주는 글로벌 세대 차 file 2019.08.04
233 지관서가 1월 25일 1강 ppt file 2024.02.07
232 20211204 고정희 30주기 포럼 발제 발표 자료 file 2021.12.09
231 [슬로워크・빠띠] 원격근무가 처음이라면 2020.03.07
230 플렛폼 이코노미 -아마존의 몰락? 홍기빈 2020.01.20
229 군대 휴가 나온 청년과 fiddler on the roof (볍씨 마을 일기 20210923) 2021.09.23
228 Coronavirus Live Updates THE CORONAVIRUS CRISIS Pandemic Shutdown Is Speeding Up The Collapse Of Coal 2020.04.27
227 기후 변화, 논리적으로 말하기보다.... 역시 문체야 file 2022.05.29
226 걸어가는 늑대 갤러리를 다녀오다 2021.07.30
225 채사장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2017 2022.04.17
224 온라인 개학의 좋은 소식 2020.04.07
223 호혜의 감각을 키우지 못한 남자의 노년 2021.09.13
222 미래국가 전략 구성 포럼 file 2019.11.26
221 그들도 우리처럼, 우리도 그들처럼 file 2024.02.14
220 2021 <경기예술교육실천가포럼> 패널을 열며 2021.11.03
219 KBS 시사 기획창 질문지 2020.05.11
218 토마 피케티 : 21세기 자본, 그리고 사회주의 시급하다 2022.01.30
217 박노해 양들의 목자 2021.11.03
216 토마 피케티 글 아주 좋음 2020.05.28
215 달콤한 잠에 빠진 물개 file 2020.01.27
214 mammoth lakes 고도 적응후 첫 나들이 file 2019.07.26
213 <모녀의 세계>, 그리고 <폭군 아버지, 히스테리 엄마> 2022.03.05
212 아감벤의 글 글 file 2024.02.15
211 머물며 그리고 환대하라 file 2022.04.13
210 한 강의 글/시편 2024.02.15
209 지구 온도 1.5℃ 상승해도 되돌릴 기회 있다 (이오성) 2021.10.19
208 따뜻한 곳으로 가서 노시오 ! file 2020.01.16
207 9/18 아침 단상 <신들과 함께 AI와 함께 만물과 함께> 2022.09.18
206 저신뢰 사회 (이상원 기자, 이진우) 2021.10.19
205 슬기로운 좌파 생활 깔끔한 책소개 2022.02.10
204 아이를 돌보는 마을살이 file 2020.04.07
203 11/9 라이프 3.0 인문학 인트로 file 2019.11.26
202 우리 동네 어록 : 잡초는 없다 2022.04.18
201 영화 마션 2015년도 작품 2021.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