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시편 정경일 선생의 글 중

haejoang@gmail.com 2020.12.09 21:06 조회수 : 242

겟세마니에 있으면서 내가 얻은 또 하나의 선물 중 하나는 시편의 재발견이다. 수도자들은 고대 유대인들이 시편을 노래로 불렀던 것처럼, 시편에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정과 선율을 붙여 노래한다. 그것을 Psalmody(시편찬송)라고 한다. 노래로 부르기 좋게 편집한 시편은 우리가 사용하는 시편과는 장과 절이 조금 다르다. 시편찬송을 들으면서 처음에는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었는데, 계속 반복해서 듣고 따라 부르면서 선율에 실린 내용에 더 집중하게 되니, 시편은 고통 받는 이들의 노래라는 것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밤기도 중에 시편찬송을 하다, 한 소절에서 가슴이 울컥 했다. “Give us joy to balance our affliction for the years when we knew misfortune(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 수만큼, 우리가 재난을 당한 햇수만큼,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십시오).” (시편 90:15) 여러 해 동안 불행만을 알아온, 불행만을 겪어온 사람이, 고통을 없애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고통에 균형을 이룰 수 있을 만큼의 기쁨을 달라고 하나님께 애절하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시편이 시편인 까닭은 고통을 가장 가까이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시와 노래이기 때문이다. 시편의 시인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악인을 저주하고 하느님께 항의하면서도, 끝내는 하느님을 신뢰하고 구원을 희망한다. 수도자들은 그런 시편을 매 기도 시간마다 서너 편 노래한다. 그렇게 매일 이삼십 편의 시편을 노래하면서 고통 받는 이들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시편은 수도원 안의 수도자들과 세상 속의 고통 받는 사람들을 연결해준다. 시편의 고통 받는 이들의 탄식과 탄원은 오늘 억울하게 고통 받는 이들을 알아차리게 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한다. 수도원은 세상의 고통에 무관심한 이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의 공동체다. 시편은 수도자들에게 세상의 고통 받는 이들을 한시도 잊지 않게 해주는 연대의 종소리다.

목록 제목 날짜
240 마르켈 총리의 코로나 사태 관련 담화 2020.03.20
239 온라인 교육, 준비하지 않은 대학 2020.04.07
238 새해 맞이 영화 2019.12.29
237 청소년 기후 행동 2020.03.14
236 제주시 양성평등 주간 강연 자료 file 2019.07.07
235 고정희 시선 초판본 (이은정 역음, 2012) 2021.10.19
234 운전기사가 보여주는 글로벌 세대 차 file 2019.08.04
233 지관서가 1월 25일 1강 ppt file 2024.02.07
232 20211204 고정희 30주기 포럼 발제 발표 자료 file 2021.12.09
231 [슬로워크・빠띠] 원격근무가 처음이라면 2020.03.07
230 플렛폼 이코노미 -아마존의 몰락? 홍기빈 2020.01.20
229 군대 휴가 나온 청년과 fiddler on the roof (볍씨 마을 일기 20210923) 2021.09.23
228 Coronavirus Live Updates THE CORONAVIRUS CRISIS Pandemic Shutdown Is Speeding Up The Collapse Of Coal 2020.04.27
227 기후 변화, 논리적으로 말하기보다.... 역시 문체야 file 2022.05.29
226 걸어가는 늑대 갤러리를 다녀오다 2021.07.30
225 채사장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2017 2022.04.17
224 온라인 개학의 좋은 소식 2020.04.07
223 호혜의 감각을 키우지 못한 남자의 노년 2021.09.13
222 미래국가 전략 구성 포럼 file 2019.11.26
221 그들도 우리처럼, 우리도 그들처럼 file 2024.02.14
220 2021 <경기예술교육실천가포럼> 패널을 열며 2021.11.03
219 KBS 시사 기획창 질문지 2020.05.11
218 토마 피케티 : 21세기 자본, 그리고 사회주의 시급하다 2022.01.30
217 박노해 양들의 목자 2021.11.03
216 토마 피케티 글 아주 좋음 2020.05.28
215 달콤한 잠에 빠진 물개 file 2020.01.27
214 mammoth lakes 고도 적응후 첫 나들이 file 2019.07.26
213 <모녀의 세계>, 그리고 <폭군 아버지, 히스테리 엄마> 2022.03.05
212 아감벤의 글 글 file 2024.02.15
211 머물며 그리고 환대하라 file 2022.04.13
210 한 강의 글/시편 2024.02.15
209 지구 온도 1.5℃ 상승해도 되돌릴 기회 있다 (이오성) 2021.10.19
208 따뜻한 곳으로 가서 노시오 ! file 2020.01.16
207 9/18 아침 단상 <신들과 함께 AI와 함께 만물과 함께> 2022.09.18
206 저신뢰 사회 (이상원 기자, 이진우) 2021.10.19
205 슬기로운 좌파 생활 깔끔한 책소개 2022.02.10
204 아이를 돌보는 마을살이 file 2020.04.07
203 11/9 라이프 3.0 인문학 인트로 file 2019.11.26
202 우리 동네 어록 : 잡초는 없다 2022.04.18
201 영화 마션 2015년도 작품 2021.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