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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영성에 대하여

조한 2021.01.01 14:03 조회수 : 512

청년 때부터 명상을 해온 정경일 선생에게 영성에 대해 배우고 있는 중이다.

 

『감정공부』에는 두 가지 특별한 면이 있다. 첫째는 심리학만이 아닌 유대교, 불교 등 종교의 샘에서 길어 낸 ‘영성’이고, 둘째는 개인의 치유를 세상의 치유와 연결하는 ‘사회성’이다. 유대 종교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은 그린스팬은 세계를 고치고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티쿤 올람(Tikkun Olam)’ 없는 개인 치유는 불완전하다고 믿는다. 『감정공부』를 개인 심리치료나 자기계발 이야기가 아닌 ‘사회적 영성’ 이야기로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둠 속의 세 친구”

 

정경일

 

            인생길 반 고비에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었네.

            _단테

 

마흔 무렵, 모든 것이 산산이 무너졌다. 은유가 아니라 시간과 장소와 증상이 있는 사건이었다. 수행에 열심일 때 찾아온 심신의 고통은 내가 ‘평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마비’였음을 깨우쳐주었다. 오랫동안 내가 부인하고 억눌러온 ‘그림자’가 자기 존재를 폭풍처럼 주장했다. 여러 날 동안 지속된 고통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으로 가능한 모든 도움을 구했다.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고정희) 은총처럼, 내게 다가와 손을 잡아준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충고나 조언 대신 내 이야기를 들어 주었고 내 곁을 지켜 주었다. 정혜신이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이라 이름붙인 그들의 ‘공감’ 덕분에 막혔던 숨길이 트였다. 그때 친구들 중에는 ‘책’도 있었다. 폭풍은 지나갔지만 공포는 남아있는 차갑고 어두운 숲 속에서 나는 고통과 치유의 지혜서들을 읽으며 아침을 기다렸다. 내 삶이 다시 어두운 숲이 될 때면 힘겨운 날 친구를 찾듯이 그때 그 책들을 다시 꺼내 읽는다.

 

파커 파머,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Let Your Life Speak

 

파머는 젊은 시절 인정받던 학자이며 활동가였다. 퀘이커 공동체에 참여한 후에는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의 길도 걷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사십 대에 심한 우울증이 두 차례 찾아왔다. 사회적, 영적으로 인정받고 존경받던 그였기에 수치심까지 더해져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괴로웠다. 다행히 파머 곁엔 친구들이 있었다. 더 이상 길이 열리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해하는 파머에게 공동체의 지혜로운 여성 루스가 말해준다. “나는 모태신앙인이라네. 그리고 육십 년이 넘게 살아왔지. 그러나 내 앞에서 길이 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네. 반면에 내 뒤에서는 수많은 길이 닫히고 있다네. 이 역시 삶이 나를 준비된 길로 이끌어 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겠지.” 우울증을 마치 “지옥 구덩이”로 내려가는 것처럼 생각하는 파머에게 그의 심리치료사가 말한다. “당신은 우울증을 당신을 망가뜨리려는 적의 손아귀로 보는 것 같군요. 그러지 말고 당신을 안전한 땅으로 내려서게 하려는 친구의 손길로 생각할 수 있겠어요?”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는 불안과 우울에 시달렸던 이의 상처투성이 ‘생존기(生存記)’가 아니라 어둠 속으로 용기 있게 내려가 삶이 해 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 자기 소명대로 살게 된 구도자의 ‘순례기(巡禮記)’다. “빛으로 가득한 성지에 이르기 전에 반드시 어둠의 여행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삶이 우리에게 해 주는 말이다.

 

미리암 그린스팬,『감정공부』 

 

페미니스트 심리학자 그린스팬은 “상처받은 치유자”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홀로코스트 생존자 캠프에서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물려받았다. 아들 애런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죽었고 딸 에스터는 복합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감정공부』는 그린스팬 자신의 실존적 고통과 수십 년 동안 가슴이 부서진 이들을 상담하고 치유한 직업적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그린스팬은 ‘감정 문맹’과 ‘감정 공포’에 빠진 현대인이 ‘부정적 감정’이라고 낙인찍는 ‘슬픔’, ‘두려움’, ‘절망’이 실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어두운 감정”이라고 한다. 어두운 감정을 부인하거나 억압하면 우울증, 불안, 중독, 편견, 분노, 폭력, 정신적 마비 등을 겪게 된다. 반면, 어두운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친해지고, 내맡기면 마치 납을 금으로 변화시키는 연금술처럼 슬픔을 감사로, 두려움을 기쁨으로, 절망을 믿음으로 변화시키는 “감정의 연금술”이 일어난다. 그린스팬이 아는 최고의 연금술사는 딸 에스터다. 열 한 번이나 뼈가 부러졌던 에스터는 슬픔과 감사를, 두려움과 기쁨을 동시에 느끼고 표현한다. 여름 캠프에 갔다가 다쳐서 휠체어를 타고 돌아온 에스터가 들뜬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한다. “최고로 멋진 캠프였어요! 다치기 전까지는요!” 『감정공부』에는 두 가지 특별한 면이 있다. 첫째는 심리학만이 아닌 유대교, 불교 등 종교의 샘에서 길어 낸 ‘영성’이고, 둘째는 개인의 치유를 세상의 치유와 연결하는 ‘사회성’이다. 유대 종교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은 그린스팬은 세계를 고치고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티쿤 올람(Tikkun Olam)’ 없는 개인 치유는 불완전하다고 믿는다. 『감정공부』를 개인 심리치료나 자기계발 이야기가 아닌 ‘사회적 영성’ 이야기로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셜 로젠버그,『비폭력대화』 

 

내적 고통이 격렬했던 어느 날 아침, 우연히 학교 복도에서 만난 친구는 한참을 선 채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어둠 속을 헤맬 때 길잡이가 되어준 책이라며 『비폭력 대화』를 소개했다. 대화법이나 소통법을 다루는 자기계발서에 식상했던 나는 그다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날 오후 지도교수 집에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문득, 화병 밑에 깔려 있는 『비폭력 대화』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선생님이 주신 책을 그날 밤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다가, 중간에 멈출 수 없었고, 결국 새벽녘에 마지막 장을 넘겼다. 로젠버그는 갈등 상황에 처할 때 타인과 자신을 비난하거나 평가하는 대신, 첫째, 있는 그대로 주의 깊게 “관찰(observation)”하고, 둘째, 관찰한 바에 대한 “느낌(feeling)”을 명확히 표현하고, 셋째, 그 느낌이 들게 하는 “욕구(need)”를 정확히 인식하고, 넷째, 구체적 행동을 “부탁(request)”하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 네 요소 모두를 공감과 자비의 마음으로 실천하라고 한다. 비폭력 ‘대화’가 중요한 것은 우리가 겪는 고통의 대부분이 관계 속에서 말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바른 말(正語)’이 고통으로부터 해방하는 불교 팔정도(八正道)의 하나이듯이 비폭력 대화도 고통을 치유하는 길의 하나다. 또한 비폭력 대화는 다른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느낌과 욕구도 인식하게 함으로써 타인과 자신을 함께 이해하게 해준다. 어둠 속에 있을 때 『비폭력 대화』가 내게 알려준 것은 내 고통의 원인이 내 내면의 느낌과 욕구에 대한 무지와 부인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내게 비폭력 대화는 단지 ‘바르게 듣고 말하는 법’이 아니라 ‘바르게 이해하고 살아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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