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잘 진화해갈까? 제주 출신 지식인의 글
막 근대의 세계로 진입한 제주는 이제 아주 많은 과제들을 안게 되었다.
가능성이 아주 않은 세계이지만 시대는 너무 복잡하고 암울하다.
결국 제주도민의 성숙한 담론의 장이 조만간 올 미래의 모습을 결정할터인데
그나마 제주토박이 고충석 기자/총장이 쓴 반가운 글을 만나 옮겨둔다.
http://naver.me/5bR6p2uw
오영훈 제주도정과 성산 제2공항 해법
출처 : 고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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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사는 지역의 최고 수장이다. 정치인 출신 지사는 정치영역에서 오래 있다 보면 행정의 속성을 우습게 보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도지사는 정치인으로서 숲을 보는 거시적 안목을 갖추고 숲을 구성하는 개별 나무의 특성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숲을 보는 능력은 정책적 선도력을 말하는 것이고, 나무의 속성을 읽는 기술은 공무원 조직을 통제하고 장악할 수 있는 역량을 말한다. 정책적인 선도력이나 공무원 조직을 장악하지 못하면 관료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고 관료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다가 임기 4년이 끝나버리고 만다. 빈 배로 왔다가 빈 배로 돌아가는 꼴이다.
오영훈 지사 앞에 가로 놓여 있는 난바다 같은 정책적 딜레마가 한둘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제2공항 문제다. 나는 제2공항 문제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생각도 없고 그럴 수 있는 전문성도 없다. 단지 이 땅에 사는 제주도민의 관점에서 상식적인 얘기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정책에서 상식은 하나 마나 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상식처럼 역사를 움직이는 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첫째,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로 제주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제주는 그동안 유네스코 3관왕이니 세계환경수도이니 하며 그쪽으로 개발의 방향을 추구해 왔다. 세계도 제주를 환경의 보물섬이라고 극찬해왔다. 제주의 자연은 그야말로 황금 덩어리다. 한라산과 오름, 바다가 어울려 펼쳐지는 교향곡이 제주다. 제주의 후대들은 이러한 제주의 자연이라는 원금을 잘 굴려서 그 이자로 살아가야 한다. 제주의 자연을 원천 삼아 경제적 소득을 창출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업에 있어 제1의 금과옥조는 원금을 까먹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제주의 자연 자원은 보존이든, 보전이든 잘 지키고 선용하는 지혜가 중요하다. 거기에 제주의 미래가 있다. 이른바 환경 이자론 이다. 나는 이를 자연 자본주의라고 명명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제주 자연의 본태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관련 산업을 일으키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제주의 입도객이 하루에 수천 명씩 밀려오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더욱이 코로나 이후 일과 휴식을 병행하는 워케이션 (workation)이 새로운 근무 형태로 자리 잡은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아 제주의 가치는 더욱 빛날 것이다. 따라서 제주의 자연환경 등에 엄청난 충격을 줄 제2공항 문제는 아무리 신중하게 고려하고 접근해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2공항은 총면적 545만㎡ 규모이고 주위에 들어서게 될 공항도시(air city)까지 고려하면 제2공항의 건설에 따른 제주의 자연과 문화 훼손 규모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둘째, 해군기지 추진 때로 돌아가 보자. 주민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의 문제도 난제였지만 이에 못지않게 장소를 어디로 할 것이냐도 중요한 문제였다. 화순항에는 이미 화력발전소가 들어서 있고 ‘군사작전 항’으로 지정된 바 있으며 또 ‘해양경찰 항’으로도 사용되고 있어 화순항을 선정했으면 강정보다는 훨씬 기지 추진이 수월했을 것이다. 화순항은 수심도 깊고 산방산으로 지형이 가려져 있어 자연적으로도 천연 요새화되어 있는 점이 군사 작전상으로 중요한 이점이다. 이러한 화순항을 제치고 1900여명이 사는 강정마을의 주민 87명만이 참석한 임시마을총회에서 만장일치 박수로 통과된 유치 결정을 근거로 강정항을 해군기지로 선정했다. 제주도민들이 ‘일(一 ) 강정’이라고 부르던 아름다운 강정천 유원지와 해군기지는 양립 불가능한 부조화다. 그럼에도 해군기지 추진은 국가안보라는 명분을 앞세워 강행돼 겉으로는 부조화가 수용된 것처럼 보이지만, 15년 넘게 지금도 마을 내부는 여전히 부조화와 갈등이 남아있다.
최근 제주 제2공항 문제도 이와 비슷한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제2공항을 추진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여러 차례 여론조사를 했다. 결과는 대체로 제2공항 반대 여론이 우세했다. 이제 더는 도민갈등을 일으키지 말고 방침을 선회해서 기존 제주공항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고 도민들의 중지를 모아야 한다. 아무리 국책과제라도 해당 주민들이 강하게 반대하면 그 사업을 추진하기가 어렵다. 그것이 지방자치 시대의 정신이다.
기존 공항 확장을 위한 다양한 방법론적인 어젠다를 발굴하여 일일이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과학적 분석 노력이 요구된다. 바다를 매립하는 방법, 일부는 바다를 매립해서 매립한 바다와 육지를 연결해서 부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전적으로 육지 땅을 수용해서 공항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대안이 있을 수 있다. 각 대안에 따른 공간적 구간도 설정해서 구간에 따른 비용 등을 시뮬레이션 해보면 적절한 대안이 도출될 것이다.
지금 거론되는 제2공항 부지건설에는 화폐적 비용보다 주민 간 갈등, 주민설득, 사업추진 기간, 자연 훼손 등의 비화폐적 비용이 엄청나게 소요될 것이다. 프랑스의 ‘파리공항관리공단 엔지니어링’(ADPi) 등 기존 공항 확장론자들의 논거도 모두 공개하고 검증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었다면 공항 확장 건설 문제쯤은 거뜬하게 해결했을 것이다. 한국공항공사나 한국 토목학회 등과도 잘 의논한다면 거기에 길이 있을 것이다. 정책당국자들은 선험적으로 현 공항 확장은 비용이 많이 들 것으로 예단할 그것이 아니라, 좀 더 고민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나 같은 문외한이 보기로는 기존 제주공항 확장 비용이 건설에 따른 정치적 비용, 환경훼손 등의 비물질적인 비용까지도 고려하면 제2공항 건립 비용보다 훨씬 적게 들 것으로 생각한다.
끝으로 제주도의 경우 공항 하나로 그 원칙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 제주도의 환경용량(carrying capacity)을 고려해보면 그렇다. 제주도의 여건상 수용 가능한 인구를 몇 명으로 할 것인가를 설정해야 한다. 이제 제주도는 조건 없는 물량적 성장보다 자연을 보전, 그 가치를 활용하면서 성장하는 자연 자본주의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할 할 때이다.
관광객이 밀려올 때마다 공항을 지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지금은 공급관리보다 수요관리를 더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유명한 관광지인 베네치아, 벤쿠버 등도 밀려오는 관광객을 적절히 조절하기 위한 수요관리 정책에 고심하고 있다. 제주의 경우도 입도세 형태의 세금을 무겁게 관광객들에게 부과하고 항공편을 대체할 수 있는 교통수단도 고민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하와이는 연간 입도객이 800만명 안팎에 불과한데 주민 1인당 지역 소득은 6만 불이 더 된다. 제주의 경우는 입도객이 연간 1500만명을 훨씬 상회하고 있지만 도민 소득으로 보면 전국에서 최하위권이다. 그간 관광객이 홍수처럼 몰려왔지만, 도민들은 수입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지역은 번영했지만, 도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정체 상태다. 제주도도 어쩌면 과잉 관광이 문제다. 이제 고민해야 한다. 양적 선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지역의 번영뿐만 아니고 주민의 번영도 같이 도모하는 쪽으로 제주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오영훈 도정은 앞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 거기에 도지사로의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도지사로서의 운명이기도 하고 제주의 운명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정진과 성취를 기대해본다.
고충석은?
現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제7대 제주대학교 총장, 제주국제대학교 초대 총장, 제주발전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원로학자로서 칼럼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조언을 격주로 싣는다.
출처 : 제주의소리(http://www.jejuso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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