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박노해 괘종시계

조한 2021.10.25 08:34 조회수 : 182

괘종시계

 

 

 박노해

 

 

 

 안데스 고원의 원주민 부족은

 여명이 밝아오면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동쪽을 향해 절을 하며 기도를 한다 

 

 

 파차마마여, 오늘도 태양을 보내주소서

 

 너무 오래 구름이 끼고

 알파까가 병들고 감자 흉작이 드는 것도

 신에게 바치는 효성이 모자란 탓이라고

 그리하여 날마다 태양이 뜨는 것은

 신의 은총이고 삶의 기적이라고 감사하면서

 해가 뜨면 햇살 같은 얼굴로 서로를 포옹하며

 하루를 기쁨으로 시작해왔다

    

 어느 날 스페인 선교사가 들어와

 그것은 무지몽매한 미신이라고

 태양은 아침마다 떠오르게 돼 있다고

 자 여기, 괘종시계가 울릴 때 일어나면

 날마다 태양을 볼 수 있다고 가르쳤다 

 

 과연 괘종시계는 훌륭하게 태양을 떠오르게 했고

 새벽에 동쪽을 향해 기도드리는 행렬도 사라져 갔다 

 

 이제 아침이 오고 태양이 떠올라도

 아무도 햇살 같은 얼굴이 아니었다

 무감하고 피로한 노동의 시작만이

 하루하루 주어질 뿐이었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감자를 한 줄이라도 더 심고

 알파까 한 마리라도 더 늘리는 데 매달릴 뿐이었다 

 

 날마다 태양을 보내주시는 파차마마의 은총과

 삶의 기적에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자

 사람들 가슴 속에 태양이 떠오르지 않게 되고

 아침마다 환희에 빛나던 주변의 세계와

 우애의 마음들이 마술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다

 

 정확하게 울리는 괘종시계와 함께

 

 

 -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괘종시계’,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수록 詩

 

 

 

목록 제목 날짜
203 십개월의 미래, 카오스 코스모스 그리고 모계사회 2022.01.01
202 해러웨이 관련 좋은 글 2022.07.13
201 폭군 아버지, 히스테리 엄마 책소개 2022.03.05
200 3/28 아침 독서 한겨레 21 창간 28돌 기념 특별본 2022.03.28
199 협동 번식과 모계사회 2022.01.01
198 고래가 지나가는 곳에서 file 2020.01.27
197 AI 시대 문해력 ppt 수정 file 2022.10.04
196 팬데믹 3년이 남긴 질문: 교육공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 원고) file 2022.05.16
195 고나 그림 -캠브릿지 걷던 길 2021.11.02
194 80,75,71세 노인들의 음악 세션 file 2019.07.28
193 황윤 감독의 신작 <수라> 관객이 만드는 시사회 2023.04.22
192 In this life-Israel Kamakawiwo'ole 2020.02.05
191 한나 아렌트 정치와 법의 관계 2021.08.06
190 우리 할머니는 예술가 2022.04.17
189 트럼프지지자들이 리버럴을 미워하는 이유 2020.02.18
188 영화 세편 2022.06.11
187 도서관 연합회 길위의 인문학 마무리 특강 file 2022.12.01
186 할머니들의 기후 행동- 동네 공원에서 놀기 2022.02.10
185 기운 나는 30분- 장자의 줌 영어 공부 2022.03.28
184 맘모스 3일째 타운 트롤리 그리고 오래된 관계 file 2022.07.19
183 돌봄- 영 케어러 2021.09.13
182 [왜냐면] 나! ‘코로나19 바이러스’ / 김정헌 2020.03.17
181 좋은 글-"바이러스와 인간, 그리고 권력 2020.04.07
180 문학이라는 사나운 팔자와의 동거 2022.12.04
179 사티쉬 쿠마르- 세상은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 2021.09.15
178 우리 동네 중딩과 함께 놀고 배우고 2023.04.22
177 드라마 작가의 노고 2022.05.30
176 댓글 지면, 어떤 순기능을 하는걸까 2022.02.10
175 오늘의 사자 소학 2022.02.28
174 KAIST, 중·고교 ‘온라인 개학’ 지원 나선다 2020.04.07
173 정체성의 정치에 대한 논의 2021.08.25
172 존엄사에 관한 영화- 잘 죽는다는 것 2022.12.01
171 엄기호 애도는 사회의 크기를 결정한다 2022.11.15
170 남성 중심 문명 그 이후 (슬기로운 좌파 생활 서평) 2022.02.01
169 3/28 추천글 쓰기의 기쁨 2022.03.28
168 다 함께 폭력을 몰아내는 춤을 2020.01.25
167 8월 3일 LA 브렌트우드 집의 정원수와 풀들 file 2022.08.05
» 박노해 괘종시계 2021.10.25
165 고정희 기일에 외경 읽기 2022.05.29
164 9월 17일 순자 삼춘 한글 공부 file 2022.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