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새 기술과 의식이 만나는 비상의 시간

haejoang@gmail.com 2020.11.30 22:43 조회수 : 412

[조한혜정의 마을에서]새 기술과 의식이 만나는 비상의 시간을 찾아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요즘 암울한 생각을 하지 않는 훈련을 하고 있다. 강의 요청이 와도 잘 움직이지 않게 되는데 최근 광주의 한 교사 모임엔 갔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 황송할 지경이라며 그 현상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교사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우울해진 분위기를 바꿔보자고 매일 수업 전에 다 같이 부르기로 한 노래가 ‘걱정 말아요, 그대’였다며 교실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는 것을 걱정하는 선생님을 만난 것은 기쁨이었다.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다보니 교실 붕괴 후 바닥을 친 교실·학교가 팬데믹을 거치면서 새로운 의식이 움트는 시공간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둘러보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우리 동네 ‘소년 캠프’ 구성원인 유비는 최근 <동의보감>을 읽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중학생 수준의 독서를 하는 아이다. 그는 어릴 때 자주 아프고 약골이었는데 그 힘든 시간을 책과 친하게 지내며 버텨냈다고 한다. 2학년 들어 <삼국지>와 <나니아 연대기>를 읽고 요즘은 어른용 <동의보감>을 읽고 있다고 했다. 학교 친구가 한 명도 없을 것 같아 걱정했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프면 자기에게 와보라고 했더니 친구들이 많이 찾아온단다. 최근에는 약초 퀴즈를 내기 시작해서 더 인기가 높아졌다고 한다. 사실 유튜브에 들어가면 이런 ‘영재’들의 활약을 보게 된다. 이런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근대 교육이 바탕을 두고 있는 단계별 성장 같은 것은 과학이 아니라 교리였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근대 국가가 만들어낸 체제에 갇혀 우울해하기보다 우주로 통하는 기운을 느끼며 자신을 살리는 아이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아이들을 살려주는 학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다 내 눈길이 멈춘 곳은 대만 교육개혁의 장이다. 2017년 말 대만은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과정을 구축하면서 인공지능(AI) 시대를 살아갈 세대를 키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 움직임을 주도하는 인물은 시빅 해커의 이력을 가진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 그는 8세 때 소프트웨어 개발을 시작했고 중학교를 중퇴했다. 16세에 프로그래밍 스타트업을 창업했고 이후 애플 등 국내외 정보기술(IT) 기업 자문을 맡아 활약했다. 24세에 성전환해서 남녀의 세계 모두를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2016년 35세에 최연소 장관이 된 탕은 취임 후 사무실을 사회혁신 실험실로 꾸미고 삶의 현장 곳곳을 암행어사처럼 다니며 필요한 개혁을 이루어내는 동시에 정부 보고서 등을 공개하며 ‘열린 정부’ 운동을 시작했다. 탕 장관은 국가는 창의적 시민 없이는 새로운 정책을 세울 수 없는 체제임을 인식하자고 강조한다. 그래서 정부가 할 일은 국민의 집단지성이 세상을 바꾸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엄청난 성공사례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실시간 마스크 공급지도 앱과 마스크 예약제 도입도 탕 장관이 시민의 활동을 연결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아이들에게
팬데믹은 새 기회가 될 텐데…
어떤 방향으로 교실을 바꿀까
대만 ‘천재 장관’ 오드리 탕
그의 혁신성에 눈길이 멈춘다

IQ가 180인 탕 장관은 IQ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IQ라는 것이 패턴을 알아차리는 능력인데 그 일을 컴퓨터에 시키는 아이들은 이미 IQ 180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은 데이터를 직접 생산하고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정보 생산이라며 디지털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을 위한 교육의 판을 새로 짜는 대만의 아이들은 얼마나 행운인가? 물론 탕 장관이 이런 개혁을 해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부처에 관료적 규제에 구속되지 않는 예외적 권한을 주기로 한 차이잉원 정부가 있다. 그 정부는 모든 부처에 서른다섯 살 이하의 젊은 멘토를 두어야 한다는 제도를 시행하는 청년 참여 정부이기도 하다. 한편 대만에서 태어난 탕이 미국의 실리콘밸리로 사라져버리지 않고 국민을 위해 일하게 된 배경에는 대만 시민들이 벌여온 끈질긴 성소수자 운동이 있다. ‘펑 탕’에서 ‘오드리 탕’이 된 그는 남자와 여자, 동성애와 이성애, 장애와 비장애, 사람과 AI 간의 엄격한 이분법을 허물고 개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질서로 이동하는 시대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차별금지법은 지금 어디쯤에서 멈추어 있을까?

탕 장관의 혁신성은 국경을 넘어 쉽게 공유될 성격의 것이다. 그를 중심으로 교육개혁을 위한 아시아 교육혁신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안 될까? 선행학습 입시 연옥에서 벗어나 생기가 가득한 교실, 소년 유비가 교실의 명의가 되어 ‘21세기 동의보감’을 쓰는 날을 상상하며 오늘 하루 좋은 기운으로 보내보려 한다.

목록 제목 날짜
148 장선생을 보내며 2021.01.07
147 사회적 영성에 대하여 2021.01.01
146 제주 유네스크 잡지에 낸 글 2020.12.30
145 실기가 아니라 관점과 언어 2020.12.30
144 무엇이 우리를 살게 하는가 2020.12.29
143 시원 채록희의 영 어덜트 소설! 2020.12.27
142 글을 고치다가 골병 들겠다- 민들레 글 file 2020.12.20
141 시편 정경일 선생의 글 중 file 2020.12.09
140 영도 지역 문화 도시 지역문화 기록자 과정 file 2020.12.03
» 새 기술과 의식이 만나는 비상의 시간 2020.11.30
138 방과후 교사의 자리 2020.11.30
137 기후 변화 산호의 상태로 보는. 2020.11.30
136 초딩 소년들을 위한 영화 2020.11.30
135 오드리 탕 미래 교육 인터뷰 (여시재) 2020.11.18
134 기후 변화 학교 (표선) file 2020.11.16
133 찬미 받으소서 2020.10.13
132 Ready For More Sherlockian Adventures? 2020.10.03
131 광명 자치 대학 개강 특강 file 2020.09.28
130 추석 연후에 보려는 영화 2020.09.28
129 서울시 온종일 돌봄 실태분석과 정책방안 2020.09.26
128 대한민국 살기좋은 나라.... 2020.09.25
127 small schools big picture 2020.09.21
126 2020 하자 창의 서밋에 2020.09.08
125 홀가분의 편지- 사회적 영성에 대하여 2020.09.01
124 DDP 디자인 박물관 기념 강의 발표자료 file 2020.08.15
123 그들이 우리는 먹여 살리고 있다 (농촌 이주 노동자) 2020.08.10
122 <위기 시대, 사회적 돌봄과 공간 변화> (DDP 포럼) 2020.08.10
121 경향 컬럼 여가부 관련 2020.08.09
120 유발 하라리와 오드리 탕의 모험, 비상, 경계를 훌쩍 넘기 2020.07.28
119 confronting gender binary -젠더의 경계 넘기 2020.07.28
118 flashmob, 인간이 신이고자 했던 '근대'를 마무리 하는 몸짓 2020.07.22
117 책 읽어주는 여자 쨍쨍 2020.07.15
116 소년은 어떤 세상을 만나 어떤 어른이 되는가? 2020.07.14
115 미셸 오바마의 <Becoming> 2020.07.14
114 [경향의 눈]‘세대주’라는 낡은 기준 2020.06.04
113 이 시대 생기발랄한 이들 2020.06.02
112 원룸 이웃 - 새로운 공동체의 시작 2020.06.02
111 Bruno Latour도 의견: 생산자체를 전환 2020.05.31
110 정의연, 피해자와 지원자 사이의 갈등 (박노자) 2020.05.31
109 돌아온 피케티 "사회적 소유, 일시적 소유" 2020.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