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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생을 보내며

조한 2021.01.07 17:20 조회수 : 633

장 경식 선생,

 

이렇게 호젓하게 마주하는 시간, 오랜만이네요.

눈길이 막혀서 출발하지 못하고 여기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분명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우리에게 그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있었던 어제의 폭동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관심이 필요한,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언제나 먼저 가 있던

그대를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 말하려는 것입니다.

 

기억력이 몹시 나쁜 사람이지만 우리가 만난 날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주 돌 문화 공원에서 열린 평화 축제 때였지요.

봄 신경정신과에 계신다고, 내 글을 종종 읽는다고,

제주에서 매월 열리는 시민 월례 모임에 와달라고 했었지요.

마침 제주에서 좀 지내볼까 생각하던 터였는데

장 선생을 보니까 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게 매우 가깝다는 것은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기도하는 것이지요.

함께 작당해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지요.

그렇게 가깝게 지낼 확실한 사람을 돌 문화 공원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가볍게 짐을 싸고 제주로 내려왔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선생의 환대로 엄청나게 많은 분이 모여 있는 장소를 들락거렸습니다.

동문 시장에서 이불 파는 할머니부터 고요함을 누구보다 알고 있는 사진 찍는 한의사.

듬직한 후원자 홍성직 원장과 노래하고 기도하는 성 요한 신부님,

그리고 사랑하는 아버지를 모시듯 함께 다니던 채현국 선생님을 위시해서

선생이 수시로 초대했던 사랑스러운 시민들을 가두 시위에서,

또는 병원 세미나실, 사사로운 미식가들의 자리, 다양한 기금 마련 행사장,

그리고 다양한 문화실험을 시도했던 소통 협력 공간에서 만났습니다.

 

예멘 난민 사태가 났을 때 혐오와 적대의 댓글들을 보며 어쩔 줄 몰라 연락을 하자

선생은 한순간에 모임을 만들고 임시 거처를 마련했죠.

도지사와 연결해서 근처 수영장 샤워실을 쓸 수 있게 하는 순발력을 정말 놀라웠습니다.

난민들도 자리를 잡아가고 그들에 관한 관심이 줄어들자

자원봉사자가 없다며 밤마다 가서 야근하는 나날도 있었습니다.

자기를 끌어들여다 놓고 나는 빠져버렸다고 투덜대는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그런 투정 부리는 관계가 우리가 서로를 보살피고 사랑하는 방식이었지요.

 

시대의 어른을 모시려는 당신의 고운 마음은 남달랐습니다.

나는 사랑을 많이 받은 막내다운 모습이라 말하곤 했는데

어쨌든 그 일을 당신은 소명처럼 간직하고 즐겁게 수행했습니다.

그 시대에 보기 드문 자유로운 영혼,

기업가이자 시민운동가인 팔순을 넘긴 채현국 선생님을 위시해서

청춘을 감옥에서 보내신 평화 운동가 서승 선생님 등

선생이 살뜰하게 돌보고자 한 어른의 리스트는 깁니다.

 

미국에서 봄가을 다니러 오면 꼬박꼬박 강의에 초대하고

미식가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게 살뜰하게 챙겼던 사람 중 하나인 내 친오빠는

금방 전화 통화 중에 오아시스가 사라졌다.”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사랑에 가득한 귀여운 막냇동생을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이런 다이나믹한 네트워커 시민 활동가를 언제나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습니다.

영화가 끝나면 주인공이 나와서 깜짝 인사를 하는 것이 순서일 텐데

선생은 나와서 인사하지 않을 모양입니다.

지금은 하늘에서 장난기 가득한 눈길로 보고 있을 것 같네요.

우리는 촌음 간에 다시 만날 거라고 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세상은 선생 없이 굴러가야 할 테고,

점점 엉망으로 굴러갈 것 같은 예감이지만

우정과 환대의 삶을 열과 성을 다해 살아낸 한 사람이 있어 우리는

서로 위로하고 부축하며 남은 시간을 견디며 살아갈 것입니다.

서로의 약함에 기대며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간 행운아 선생을 기리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우리와 늘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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