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실기가 아니라 관점과 언어

haejoang@gmail.com 2020.12.30 05:04 조회수 : 361

 

엄기호 글
새롭게 부상하는 교육 -비대면 맞춤형, 실기와 창의, 그리고 언어. 
 
대학교육과 관련하여 올해 있었던 가장 의미심장한 사건은 서울웹툰아카데미가 설립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아카데미를 주도하고 있는 분이 만화평론가인 박인하 선생이다. 즉 이 아카데미는 '실기'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관점'과 '언어'도 같이 가르친다는 점에서 이전의 만화 아카데미들과는 결을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제도권 교육의 붕괴가 아래에서부터/옆에서부터 시작되는 서막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아카데미가 지향하는 방식은 '맞춤형' 교육이다. '멘토'를 두고 교육한다.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향 자체는 1대1의 맞춤형 교육을 지향한다. 이전에 신천지에 대해 분석하면서 기성교회가 신천지를 이길 수 없었던 이유이자 신천지에 청년들이 대거 모이는 이유를 '맞춤형'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신천지에 있다 나온 한 사람은 "기성교회에서는 목사를 만나 신앙상담을 하려면 몇달을 기다려 겨우 몇십분 볼까말까인데 신천지에서는 원하면 언제든 얼마든지 신앙상담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미 한국의 청년들은 학교 바깥에서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맞춤형' 교육에 익숙해져 있다. 물론 이 말 자체가 중산층 기준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 점에서 맞춤형 교육이 아닌 '양산형 교육'일 수밖에 없는 대학교육은 실기/실무/창작 중심의 분과에서부터 서서히 이론에 이르기까지 붕괴해갈 것이다. 물론 이론에서는 '학위'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분과학문들은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이지만 말이다. 단적으로 말해 지금 인문사회계열 박사학위에도 전문적으로 코치해주는 학원?이 생겨나고 있다. 그 영역에서도 맞춤형 교육이 제도 바깥에서부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대학은 온갖 규제를 받기 때문에 결코 대학 바깥의 아카데미와 비교하여 유연할 수 없다. 누차 강조하지만 리처드 세넷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 역량의 핵심은 '유연함'에 있다. 패턴을 파악하고 그 파악된 패턴을 능수능란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을 역량이라고 부른다. 요구가 바뀔 때마다 유연하게 대처해야하는데 그럴 역량이 대학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단적으로 말해 대학은 커리큘럼을 하나 바꾸는데도 아카데미처럼 절대 유연하지 못하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대학에서 올해에 가르친다면 이런 걸 가르치겠다. '문화창작자가 알아야할 사회적 흐름의 키워드 - 능력주의, 래디컬라이제이션 등등" 대학 커리큘럼에 이걸 들이미는 유일한 방법은 '인류학 특강', '사회학 특강' 등 특강류들이며 이건 주로 4학년때 개설된다. 아무리 간이 큰 나라고 하지만 인류학개론이나 이런 수업에서는 기본적으로 가르쳐야하는 것만 하더라도 많기 때문에 들이밀 수가 없다. 커리큘럼 한번 바꾸는데도 엄청나게 많은 공력이 들고 그거 바꾸고 나면 세상 이미 바뀐 상태인 경우가 허다하게 많다. 
 
게다가 대학은 '연구집단'을 표방하기 때문에 교수들이 가르치는 일에 전혀 익숙하지 않다. 기껏해야 도제식이기 때문에 자기가 하는 일에 연구원으로 함께 하며 가르치는게 다다. 이러려면 대학원 교육으로 가야하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학부는 버림받게 된다. 실제로 지금 많은 대학들은 고등학교보다 훨씬 더 못한 수준이다. 교육적 방법론의 측면에서 보자면 거의 방치하다시피한 상태다. (대학원이라도 다른 것도 없지만 말이다.)
 
대학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유능'한 사람들과 이 사람들을 이용할 줄 아는 자본이 결합한다면 그 파급력은 엄청나게 될 것이다. 쓸데없는/반드시 필요한 양쪽 모두에서 불필요한 규제와 번거로운 간섭과 절차를 다 생략하고 일대일로 맞춤형에, 실기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관점과 언어까지, 그리고 방법론까지 가르친다면 더 이상 학력/자격증 장사가 통하지 않는 영역에서부터 대학은 붕괴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전문'대학의 실기 영역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이 흐름은 인문사회과학과 이론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고 확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목록 제목 날짜
120 마을 체육관에서 벌어진 방학 주말 학교 file 2020.01.27
119 요가 소년이 아침을 깨우다 2021.09.15
118 포스트 코로나 교육 전환 - 원격수업운영 기준안을 보고 2020.03.28
117 Donald Trump, American Idiot 2020.04.27
116 DDP 디자인 박물관 기념 강의 발표자료 file 2020.08.15
115 video call fatigue- 실질적 논의들의 시작 2020.05.09
114 또 한번의 인터뷰 (청와대 사건) 2019.05.27
113 하자의 감수성으로 자본주의 살아가기 2019.08.01
112 마을 큐레이터 양성 사업 (성북구) file 2021.05.09
111 재미난 교실 발표 ppt file 2019.07.06
110 함께 한 대학 시절 이야기 2019.12.29
109 <위기 시대, 사회적 돌봄과 공간 변화> (DDP 포럼) 2020.08.10
108 새로운 것에 대한 피로감과 탁월한 것에 대한 재수없음 2019.08.01
107 12/16 청년 모임 강의 file 2021.12.14
106 책 추천사 -< 월경 : 경계를 넘어 새로운 지도를 그리다> 2020.05.09
105 슬기로운 미래 교육 시즌 1 발제문 2020.05.11
104 flashmob, 인간이 신이고자 했던 '근대'를 마무리 하는 몸짓 2020.07.22
103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2020 사계절 2022.04.17
102 2020 하자 창의 서밋에 2020.09.08
101 small schools big picture 2020.09.21
100 광명 자치 대학 개강 특강 file 2020.09.28
99 <돌봄 인문학 수업> 추천의 글 2019.08.05
98 라이프 3.0 인문학 전시 준비중 2019.06.05
97 사랑한다면 이제 바꿔야 할 때다 피케티 2021.06.04
96 AI 관련 책 추천 2020.02.21
95 Deserter Pursuit,‘D.P’ 네플릭스 드라마 -폭력 생존자의 세계 2021.09.15
94 이슬아 편지 - 도통한 그녀들 2020.04.10
93 촛불을 들지 못한 20대들 2019.10.07
92 Ready For More Sherlockian Adventures? 2020.10.03
91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 2020.01.28
90 미셸 오바마의 <Becoming> 2020.07.14
89 3/19 김홍중 세미나 - 에밀 뒤르껭과 가브리엘 타르드 2022.03.19
88 두려움의 문화야말로 지금 가장 거대한 바이러스 (반다나 시바) 2020.05.28
87 신인류 전이수 소년의 일기 2021.06.02
86 후광 학술상 기조 강연 발표 자료 file 2021.06.15
85 좋은 소식~ 기후 변화 정부 책임 세계 첫 판결 2020.02.21
84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좋은 기사 2020.02.22
83 민들레 123호 오월은 푸르구나 2019.06.18
82 아이들에 의한 아이들의 욕 연구소 2019.05.30
81 홀가분의 편지- 사회적 영성에 대하여 2020.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