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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세대주’라는 낡은 기준

조한 2020.06.04 22:41 조회수 : 15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6040300145

 

지난달 시작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꼈다. 분명히 전 국민에게 주겠다고 했는데 세대주만 신청할 수 있다니, 대체 무슨 말인가? 정부는 1인 가구는 40만원, 2인 가구 60만원, 3인 가구 80만원, 4인 이상 가구 100만원으로, 전국 2171만가구의 세대주가 신청하고 받을 수 있도록 긴급재난지원금을 설계했다. 세대주 아닌 세대원들은 지원금을 구경조차 못했다.

송현숙 논설위원

송현숙 논설위원

세대주는 주거 및 생계를 같이하는 생활단위인 ‘세대’의 대표를 말한다. 1962년 주민등록법과 함께 등장한 세대주는 각종 신고의무 등 행정편의가 목적으로, 실생활에선 거의 유명무실한 존재다. 주민등록표상의 성인 세대원 중 아무나 될 수 있고, 기존 세대주의 동의를 거치면 언제든 세대주 변경이 가능하다. 평소엔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세대주가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의 주체가 되면서 관심의 대상이 됐다. 세대주를 둘러싼 구멍들도 드러났다. 이혼소송 중이거나 별거, 가정폭력 등으로 세대주와 불화가 심각한 세대원은 지원금을 받을 수 없었다. 가구 구성이 법적 가족관계와 다른 경우나 세대주가 행방불명 또는 연락두절인 경우도 있었다. 잇단 이의제기에 정부가 구제할 길을 열어놓았지만, 서류를 통해 가정불화 등을 명확하게 입증하지 못하면 지원받는 것이 어렵게 돼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현재 이런저런 이의신청이 26만건을 넘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우리처럼 현금지원을 한 나라 중 가구별로 지급한 곳은 없다. 미국은 납세자의 94%에 1인당 148만원씩, 일본은 모든 국민에게 1인당 114만원, 싱가포르는 소득별로 52만~104만원을 지급했다. 국내 지자체 중 상당수도 개인별로 지원금을 지급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의당, 가족구성권연구소 등은 ‘세대별 지원’ 기준을 낡은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말에 공감이 간다. 이 지사는 “개인별 지원이 편하고 빠른 데다 가부장적 개념인 세대주만 신청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헌법상 평등 원칙에 잘 맞지 않는다”고 했다.

세대주 논란은 사소한 듯 보이지만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냈다. 가족을 동원의 대상으로 간주해 사회보장의 우선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고, 필요할 때마다 손쉽게 세대(가구) 단위의 선별적 복지지원을 해오던 오랜 관행의 일면을 제대로 부각했다.

가족은 그 구성과 구성원들의 역할에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남성 1인에 의한 생계 부양자 모델’의 퇴조가 확연하다. 가구 구성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며, 어느 한 명이 절대적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 구성원들이 조금씩 나눠 생계에 기여하면서 서로 기대어 사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정부는 ‘4인 가족’을 기준으로 그 이상은 모두 100만원으로 ‘퉁치고’ 말았지만, 4인 가족은 이미 솔기가 뜯어진 낡은 옷이다. 2018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2050만가구 중 대세는 1인 가구(29.3%)와 2인 가구(27.3%)다. 4인 가구는 17%로, 2010년 2인 가구에 1위 자리를 내줬다. 그리고 지금도 감소 중이다. “재난지원금 몇 십만원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여길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주변엔 몇 만원이 절실한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긴급재난지원금은 부모를 모시거나 자녀가 많아 더 긴급한 지원이 필요해 보이는 대가족에 불리하다는 역차별 논란도 빚었다. 국제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 재난지원금 기준은 무슨 취지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정했는지 묻고 싶다.

재난지원금은 한 예일 뿐, 우리 사회에선 복지지원의 기본단위가 과도하게 세대 기준으로 쏠려 있다. 여성가족부가 세대주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56개 법령을 검토해 “주택, 조세지원, 복지급여 전달 등의 정책 지원이 세대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변화하는 가족 구성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보고서를 낸 것이 이미 4년 전이다. 세대주(head of household), ‘집안의 대장’이라니 2020년에 너무나 낡은 개념 아닌가. 서구 사회는 1960년대부터 변화하는 가족 구성에 맞춰 복지 이전 모델을 다듬어왔다.

‘세대별(가구별)’ 지원을 ‘개인별’로 바꾸는 것은 단어 하나를 고치는 게 아니다. 철학을 바꾸는 것이다. 가족 내 개인들이 모두 튼튼하게 설 수 있도록 구성원 각자를 중심에 두고 지원하는 것이 맞다. 재난지원금 신청(신용·체크카드)은 내일까지다. 2020년이 역사상 처음 ‘온 국민’이 재난지원금을 받은 해와 더불어, 우리사회 복지의 철학을 바꾼 논의가 시작된 해로도 기록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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