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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의 상큼한 글 나눔

조한 2020.04.18 08:37 조회수 : 408

[일간 이슬아 / 이야기] 2020.04.17. 金 : 시간과 몸과 마음과 돈과 노래
새천년이 코앞에 다가온 1999년에 나는 저녁마다 방문을 잠그고 혼자 놀았다. 방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카세트 플레이어에 목소리를 녹음하는 시간이었다. 삼성전자에서 나온 개구리 얼굴 모양의 기계가 하나 있었다. 그곳에 빈 테이프를 삽입하고 빨간색 레코딩 버튼과 재생 버튼을 동시에 누른 뒤 노래를 불렀다. 
 
즐겨 부른 노래는 엄정화와 조성모의 히트곡들이다. 나는 조성모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남몰래 우는 유치원생이었는데 세기말의 우스꽝스러운 뮤직비디오들에 관해서는 할 말이 또 너무 많으니 다음에 더 자세히 다뤄보겠다. 아무튼 조성모 노래 중 천국으로 간 연인을 향한 발라드를 내 버전으로도 부르곤 했다. ‘괜찮은 거니 어떻게 지내는 거야 나 없다고 또 울고 그러진 않니-’ 그렇게 두 소절쯤 부르고 정지하고 되감기를 해 보면 개구리 카세트의 입 부분에서 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괜찮은 거니 어떻게 지내는 거야 나 없다고 또 울고 그러진 않니-’ 하지만 언제나 예상을 빗나가는 목소리였다. 나보다 더 어리고 찌질한 애가 부르는 노래 같았다. 내 귀에 들리는 내 음성과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내 음성 사이의 괴리. 그때부터 예감했다. 대개의 경우 나는 내 생각보다 별로라는 것. 
 
그 목소리가 어땠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느 봄에 혼자 길을 걷다가 초등학생들 한 무리가 목청껏 떠들며 내 곁을 스쳐 갔을 때 오래된 기억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옛날에 나도 저런 소리를 냈었던 것 같은데. 저렇게 얇고 어린데 힘찬 목소리. 웬만해선 쉬지 않았던 목소리. 남들 귀에 어떻게 들리는지 정확히 예상할 수 없는 시절의 목소리.  
 
시간이 흘러 2019년이 되었을 때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페이스북 메시지 하나 도착했다. 
 
그는 말소리를 탐구하고 치료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 소개만으로도 내 마음에 호기심이 퐁퐁 솟아났다. 편의상 그를 목 선생님이라고 호명하겠다. 목 선생님은 목소리와 발성에 관한 자신의 경험치를 바탕으로 내 목소리를 분석해 보았다고 말했다. 
 
“이슬아 작가님께서 문장을 소리 내어 읽고, 말하듯이 노래하시는 모습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영상을 통해 보았습니다. 저는 소리를 어떻게 운행하는지 이해 시켜 드리고, 어떤 안 좋은 습관이 있는지 짚은 뒤 확실한 개선 방향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자리에서 강연을 하실 것이고 더 큰 무대에서 노래하실 텐데요. 소리 운행에 대해 조금만 이해하셔도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이렇게 메시지 드립니다. 작가님을 애정하는 팬의 마음으로 한 달 동안 무료로 레슨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레슨비는 받지 않습니다.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메시지 아래에는 목 선생님이 간단히 정리해 놓은 내 목소리 분석표가 첨부되어 있었다. 그가 적길 이슬아 작가의 장점은 다음과 같았다. 1. 발음의 위치가 전체적으로 통일되어 있어 청중의 몰입이 가능함. 2. 목소리의 밸런스가 좋음 3. 말할 때 호흡의 지원이 좋음. 
 
이 장점을 토대로 레슨을 통해 어떻게 더 좋게 보완할 것인지도 적혀 있었다. 1. 발성 시 몸을 사용하는 느낌을 훈련하며 비브라토를 익힘. 2. 발음이 경구개를 때려 소리 내도록 하며 자음을 활성화 시기키. 3. 노래할 때 쓰는 밑심의 근육 기르기.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동시에 약간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약간 알 것 같다는 게 언제나 무언가를 시작하게 한다. 감을 잡을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나는 목 선생님께 답장을 했다. 
 
“목 선생님. 제 목소리를 정성스럽게 분석해 주시고 피드백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주말에 시간 어떠신가요. 일정을 맞춰 봅시다. 저는 몸을 써서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목 선생님을 만났다. 꼼꼼하고 부지런한 인상의 젊은이였다. 약속대로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4주간 무료로 레슨을 해 주었다. 그가 하라는 대로 말해 보고 노래해 보는 시간이었다. 그사이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는데 뭔가 사소하고 중요한 걸 터득한 느낌이었다. 동시에 아주 갈 길이 먼 듯한 느낌이기도 했다. 그의 지도를 따라 더 연습한다면 분명히 말소리도 노랫소리도 더 나아질 것 같았다. 
 
한 달 뒤부터 목 선생님께 정식으로 레슨비를 내고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스승은 이렇게, 페이스북 메신저 창처럼 예기치 못한 곳에서도 나타난다. 나는 배우고 싶은 걸 망설이지 않고 배우기 위해 평소에 돈을 열심히 벌었다. 잘하고 싶은 일에는 무릇 네 가지를 써야 한다. 
 
시간마음그리고 
 
지금껏 글쓰기에 그 네 가지를 써 왔는데 이제부터는 말과 노래에도 써 보고 싶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낭독하고 노래할 일이 갈수록 많아져서다. 적게는 삼십 명, 많게는 이백 명까지 다양한 무대와 다양한 청중들 앞에서 시간을 이끌고 진행하는 일이었다. 물론 이것도 코로나 이전의 얘기다. 모든 공연과 행사가 취소되기 전에 나는 한동안 밥 먹듯이 행사를 하며 지냈다. 
 
무대에 서서 뭔가를 잘한다는 건 내 몸 주변으로 아주 따뜻한 원을 크게 그려 나가는 일 같았다. 저 뒤에 앉은 사람에게까지 확실하게 닿는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는 것과도 비슷했다. 말과 노래의 부드러운 파장으로 행복한 막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말의 첫마디, 혹은 노래의 첫 소절에서 그 막이 잘 형성되기만 하면 실수할까 봐 두려운 마음도 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목 선생님을 만난 이후 나는 이전보다 더 커다랗고 따뜻한 기운의 원을 내 몸으로 뿜을 수 있게 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황홀한 순간은 아주 가끔씩만 찾아왔다. 내 몸이 내 마음같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처럼 내 몸을 움직이게 되려면 무수히 반복하고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뛰어난 스포츠 선수들의 경기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었다. 훈련이란 건 장르가 달라도 닮아있는 구석이 많다. 별수없이 꾸준히 계속할 수밖에 없고 정성 들여서 반복하는 것만이 왕도다. 특별한 재능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그것을 덤덤히 그리고 약간은 즐겁게 받아들이게 된다. 나는 매주 지하의 레슨실로 가서 목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소리 내는 연습을 했다.
 
목 선생님과의 레슨은 다시 하는 것의 연속이다. 내가 한 소절을 불러본다. 선생님이 이렇게 저렇게 다시 불러보라고 제안한다. 나는 그것과 비슷하게 해보려고 노력하며 다시 불러본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선생님은 새로운 방법들을 제안한다. 나는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불러보고 누워서 불러보고 스쿼트를 한 채로도 불러본다. 그러다가 아무렇게나도 불러보고 눈을 감고도 불러본다. 최대한 저항하면서도 불러보고 아주 미약하게도 불러본다. 어떤 날에는 잘하고 어떤 날에는 못한다. 
 
레슨을 받은 지 1년째인데 노래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종종 너무 많은 가르침을 머리로 기억하느라 몸이 경직되고 만다. 구강의 모양도 신경 쓰고 발성의 투명함도 신경 쓰고 발음이 튀지 않도록 신경 쓰고 소리를 온도감 있게 유지하도록 신경 쓰다가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 노래를 부른다. 
 
이때 목 선생님은 나에게 요청한다. 일곱 살의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라고. 누가 들을까 의식하지 말고 두려움 없이 오직 우주만을 생각하며 부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일곱 살 때부터 두려움을 가지고 노래를 불렀다. 나 자신이 듣기 때문이었다.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내 목소리를 스스로 얼마나 수없이 검열했던지. 나에게 노래는 이상하게 부를까 봐 두려운 어떤 것이었다. 
 
이런 나에게 목 선생님은 노래에 관한 수많은 규칙을 알려 준 뒤, 어느 순간엔 다 잊으라고 말한다. 알게 된 것들을 신경 쓰지 않는 훈련을 시킨다. 생각을 비우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 상태에서 작동되는 건 오직 몸에 새겨진 노래의 습관일 것이다. 목 선생님과 반복을 거듭하며 나는 ‘벽에 미친 할머니’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날부터 이 년간 이숙이 할머니는 온 집안 벽을 수리하고 다시 칠하는 일에 매달렸다. (…) 할머니는 자신의 벽이 진정한 벽, 위대하지도 하찮지도 않은 그저 벽이 되었으면 했다. 따라서 벽이 아닌 어떤 것도 허락할 수 없었던 이 년의 리모델링 공사 동안, 할머니는 벽에 나름의 단계들과 그에 상응하는 덕목이 있음을 배웠다. 가장 낮은 단계인 ‘특이한 벽’을 만드는 데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다음 단계인 ‘그럴듯한 벽’을 만드는 데는 어느 정도의 노련함이 필요하다. ‘뛰어난 벽’을 만드는 데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고, ‘완벽한 벽’을 만드는 데는 자신의 상상력과 노련함을 모두 버리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높은 단계인 ‘진정한 벽’을 만드는 데에는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된다.”
이휘웅 <Bastards> 30쪽
 
 
나는 진정한 벽이 뭔지 모르고 진정한 노래가 뭔지는 더더욱 모르지만,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이 자기가 배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아주 약간의 용기만 내는 순간을 봐왔다.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여 ‘슬픈 인연’을 부르는 강부자 씨의 모습이나, 노래 교실에서 홀로 우뚝 서서 시범을 보이는 나의 친할머니 정향자 씨의 모습에서 말이다. 그 모습에 '통달'이라는 말을 바쳐도 좋을 것 같다. 할머니들에게는 어떤 비결이 있는가. 세월이라는 비결 말고 또 어떤 비밀이 있는가. 어떤 노인들의 탁월한 노래는 왜 어떤 아이들의 탁월한 노래와도 닮아있는 것인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어떤 기분이냐는 질문에 프레디 머큐리는 대답했다
 
“관객들이 듣고 있고 모든 관심이 내게 쏠리면 틀리려고 해도 틀려지질 않아. 늘 내가 꿈꾸던 사람이 되어있거든. 아무것도 두려운 게 없어.”
 
그 대답은 나를 너무 놀라게 한다. 나의 경우 정확히 반대로 대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듣고 있고 모든 관심이 내게 쏠리면 안 틀리려고 해도 꼭 틀려버려. 나는 내가 꿈꾸던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돼. 그게 너무 두려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강부자와 정향자와 프레디 머큐리의 기분을 손톱만큼이라도 알고 싶다. 매주 한 번씩 슬렁슬렁 목 선생님을 만나러가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좋은 것들을 열심히 반복해서 몸으로 외운 뒤에 결국에는 다 잊어버리고 싶으니까. 생각하지 않고도 자동으로 좋은 게 흘러나올 때까지 말이다. 노래는 내게 한 네다섯 번째로 익숙한 도구다.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노래에 관해 쓰는 게 더 쉽다. 하지만 어디선가 취미를 적어야하는 순간이 온다면 망설이다가 그 칸에 노래를 적을 것만 같다. 이 취미 생활에서 나는 잘 알기 위한 노력과 잘 잊기 위한 노력을 동시에 하고 있다.
 
 
 
2020.04.17.
 
 
일간 이슬아
日刊 李瑟娥
 
 
 
 
주말엔 연재를 쉽니다. 월요일 밤에 새로운 글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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