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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고치다가 골병 들겠다- 민들레 글
| 2020.12.20 |
359 |
[AI가 가져올 미래] 전길남인터뷰와 제페토 할아버지
| 2019.07.26 |
358 |
[경향의 눈]‘세대주’라는 낡은 기준
| 2020.06.04 |
357 |
중국의 AI 교육 광풍 소식
| 2019.08.04 |
356 |
오드리 탕 미래 교육 인터뷰 (여시재)
| 2020.11.18 |
355 |
유발 하라리 코로나 통찰
| 2020.04.30 |
354 |
책 읽어주는 여자 쨍쨍
| 2020.07.15 |
353 |
어린이날의 다짐
| 2019.05.05 |
352 |
<멸종 저항> 단어가 주는 힘
| 2019.05.18 |
351 |
confronting gender binary -젠더의 경계 넘기
| 2020.07.28 |
350 |
하와이 알로하
| 2020.02.05 |
349 |
재미난 제주, 파상의 시대의 실험
| 2019.07.04 |
348 |
라이프 3.0 인문학 사라봉의 실험
| 2019.06.05 |
347 |
페미니스트 비평 -때론 시원하고 때론 불편한
| 2021.11.04 |
346 |
실기가 아니라 관점과 언어
| 2020.12.30 |
345 |
기내 영화 다섯편
| 2019.08.18 |
344 |
원룸 이웃 - 새로운 공동체의 시작
| 2020.06.02 |
343 |
추석 연후에 보려는 영화
| 2020.09.28 |
342 |
좋은 직장은 공부하는 직원들이 많은 곳
| 2019.08.06 |
341 |
가족 덕에, 가족 탓에- 아기 대신 친족을!
| 2021.05.30 |
340 |
좋은 글 채효정 사회 대협약
| 2020.04.26 |
339 |
찬미 받으소서
| 2020.10.13 |
338 |
장자의 시
| 2019.05.27 |
337 |
사람이 사람에게 무릎 꿇는 세상은 (고정희)
| 2021.05.12 |
336 |
새 기술과 의식이 만나는 비상의 시간
| 2020.11.30 |
335 |
방과후 교사의 자리
| 2020.11.30 |
334 |
2019실패박람회 '지성인과의 대화-강연' 요청의 건
| 2019.07.24 |
333 |
남자도 대단히 달라지고 있다.
| 2019.08.18 |
332 |
나의 페미니즘, 창조적 공동체를 살다/살리
| 2023.05.24 |
331 |
동영상 몇개
| 2019.09.20 |
330 |
재신론 (리차드 카니) 이방인에 대한 환대와 적대 사이
| 2021.07.30 |
329 |
혼자보기 아까운 풍광 멤모스 레이크
| 2019.07.28 |
328 |
활, 탐구하는 사람
| 2019.08.18 |
327 |
<나의 해방일지> 수다 모임
| 2022.05.31 |
326 |
스승의 날, 기쁨의 만남
| 2021.05.16 |
325 |
박노해 반가운 아침 편지
| 2021.04.06 |
324 |
Bruno Latour도 의견: 생산자체를 전환
| 2020.05.31 |
323 |
아파서 살았다 (오창희)
| 2021.05.16 |
322 |
홀가분의 편지- 사회적 영성에 대하여
| 2020.09.01 |
321 |
요즘 활과 자주 만난다
| 2019.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