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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바이러스와 인간, 그리고 권력

조한 2020.04.07 09:07 조회수 : 52

 

 
제 1004 호
바이러스와 인간, 그리고 권력
박종권(호서대학교AI융합대학 교수)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를 제작할 때만 해도 감독은 ‘워쇼스키 형제’였다. 이후 ‘워쇼스키 남매’가 됐다가 지금은 ‘워쇼스키 자매’이다. 성적 정체성은 접어두고, ‘매트릭스’가 공상과학영화의 신기원을 이뤘다는데 이론이 없다. 장자의 호접몽을 연상케 하는 구성, 시온(Zion)과 네오(Neo)를 통해 구약과 신약 세상을 버무린 내용전개, 여기에 주인공 네오가 총알을 피하는 장면과 트리니티의 환상적인 공중 발차기. 영화는 프로그램화 된 컴퓨터 세상이라는 디스토피아에서 인간 구원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밀레니엄 버그를 우려하던 1999년의 시대적 상황과 맞아떨어지면서 제작비를 제하고도 4억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관객의 취향에 따라 기억하는 장면은 다르겠지만, 필자는 프로그램 요원 스미스가 인간 모피어스를 심문하는 장면이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있다.

  잠의 신, 혹은 꿈의 신이라는 뜻의 모피어스에게 스미스가 시온의 소재지를 묻는다. 여기서 시온은 고향에서 쫓겨난 유태인들이 바빌론 강가에 모여 눈물을 흘리며 기억하던 곳이자, 영화에서는 인간성의 본연쯤이다. 이를 지키려는 모피어스에게 스미스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인간의 속성과 바이러스의 닮은꼴

  “너희는 포유류가 아니야.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는 본능적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데, 인간은 아니야. 한 지역에서 번식하면서 모든 자원을 소모해버리지. 그러고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거야. 지구에 똑 같은 방식으로 번식하는 유기체가 하나 더 있어. 바로 바이러스야.”

  인간의 속성이 바이러스라는 거다. 그래서 인간 자체가 질병이며, 지구의 암적 존재라는 거다. 인간은 조화가 아니라 파괴를, 상생이 아니라 공멸을 향해 브레이크없이 달리는 속성이라는 거다. 듣기에 불편하지만, 한편으론 폐부를 찌르는 대사이다. 끊임없는 환경파괴, 지구온난화 우려에도 멈추지 않는 탄소배출을 보면 “인간이 바이러스”란 진단에 토를 달기 어렵다.

  지금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을 겪고 있다. 바이러스는 인간이 야생동물과 접촉하면서 번식과 진화의 기회를 맞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러스가 바이러스적인 인간을 숙주로 삼았다는 게 아이러니컬하다. 어쩌면 이 역시 이이제이(以夷制夷)로 자연계에 형평을 이루려는 조물주의 치밀한 설정이라고 이죽거리는 이들도 있을까.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통해서도 알려졌지만, 스페인의 코르테스가 멕시코의 아스텍 문명을 초토화시킨 건 총과 칼이 아니라 ‘천연두’ 바이러스 덕분이었다. 쿠바에서 천연두에 감염된 단 한 명의 노예가 1520년 멕시코에 상륙하면서 2000만명에 달했던 인구가 100년이 채 안 돼 1618년 160만명으로 급감한다. 피사로가 단 168명으로 잉카 제국을 정복하기 위해 1531년에 페루에 상륙했을 때도 그랬다. 이미 천연두가 스페인의 총과 칼에 앞서 잉카인을 몰살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한 이후 아메리카 인디언은 겨우 한두 세기 만에 95%가 멸절돼 사라졌다. 히스파니올라 섬의 인디언 인구는 1492년 약 800만명이었지만,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1535년에는 0명이 됐다. 역사와 문화의 변곡점은 바이러스가 만든 셈이다. 이런 바이러스도 진화한다. 다이아몬드의 말을 빌면, 매독이야말로 가장 잘 진화한 바이러스이다. 처음엔 성기만 아니라 머리에서 무릎까지 농양과 포진이 퍼졌고, 환자는 몇 달 내에 사망했다.

  그러나 숙주가 죽으면 기생 방식으로 살아가는 매독 바이러스 역시 증식할 수 없다. 그래서 성기가 허는 정도로만, 바이러스 입장에서 말하면 “탐욕을 줄이는 방식”으로 진화하면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타협할 줄 아는, 진화한 ‘이기적 유전자’인 셈이다.

권력은 정치 혐오 조장하며 편가르기로 기생

  하지만 ‘권력충’으로 불리는 인간 바이러스의 탐욕에는 제동장치가 없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 총선을 앞두고 마구 창궐한다. 봉사하는 서비스정신이 아니라 군림과 지배 유전자를 지닌 ‘권력충’이 최악과 차악 사이로 시민을 몰아넣는다. 민주주의 정치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비례 정당 변이종까지 가세한다.

  이 바이러스는 건강하지 않은 정치의식을 집중 공략한다. 지역감정에 손상된 면역체계, 빈부격차로 허약해진 체력, 색깔 편식이 초래한 영양결핍을 끈질기게 파고 든다. 정치 혐오를 조장하며 피아 편가르기로 기생한다.

  다행히 예방과 치료 백신이 있다. 예방은 코로나19와 마찬가지로 손 씻기와 거리두기이다. 부패한 손과 악수했던 손을 씻는 것이다. 사탕발림으로 포장한 부패와 적폐는 뒷맛이 매우 쓰다. 복통과 설사를 일으키기 십상이다. 따라서 그런 권력충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자신과 가족, 나아가 공동체를 지키는 길이다.

  치료 백신은 바로 제대로 된 투표이다. 똑똑한 한 표가 치료제이다. 그럼에도 권력충은 변이를 거듭하며 생존을 모색할 것이다. 주기적으로 4년마다 창궐할 것이다. 그래도 깨어있는 시민들이 합심해 손 씻기와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 투표 백신을 잘 투여하면 ‘권력충 청정지역’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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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 종 권
· 호서대학교 AI융합대학 교수
· 언론중재위원

· 저서
<청언백년>, 인문서원
<기자가 말하는 기자>, 부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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