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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개월의 미래, 카오스 코스모스 그리고 모계사회
| 2022.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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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아버지, 히스테리 엄마 책소개
| 2022.0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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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 번식과 모계사회
| 2022.01.01 |
197 |
3/28 아침 독서 한겨레 21 창간 28돌 기념 특별본
| 2022.0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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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지나가는 곳에서
| 2020.0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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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3년이 남긴 질문: 교육공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 원고)
| 2022.0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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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75,71세 노인들의 음악 세션
| 2019.07.28 |
193 |
AI 시대 문해력 ppt 수정
| 2022.1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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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is life-Israel Kamakawiwo'ole
| 2020.0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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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정치와 법의 관계
| 2021.08.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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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나 그림 -캠브릿지 걷던 길
| 2021.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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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 감독의 신작 <수라> 관객이 만드는 시사회
| 2023.04.22 |
188 |
우리 할머니는 예술가
| 2022.0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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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지지자들이 리버럴을 미워하는 이유
| 2020.0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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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연합회 길위의 인문학 마무리 특강
| 2022.12.01 |
185 |
해러웨이 관련 좋은 글
| 2022.0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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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 나는 30분- 장자의 줌 영어 공부
| 2022.0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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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의 기후 행동- 동네 공원에서 놀기
| 2022.0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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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모스 3일째 타운 트롤리 그리고 오래된 관계
| 2022.0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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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편
| 2022.0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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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나! ‘코로나19 바이러스’ / 김정헌
| 2020.0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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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바이러스와 인간, 그리고 권력
| 2020.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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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라는 사나운 팔자와의 동거
| 2022.12.04 |
177 |
돌봄- 영 케어러
| 2021.0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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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쉬 쿠마르- 세상은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
| 2021.09.15 |
175 |
댓글 지면, 어떤 순기능을 하는걸까
| 2022.0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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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작가의 노고
| 2022.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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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중·고교 ‘온라인 개학’ 지원 나선다
| 2020.04.07 |
172 |
우리 동네 중딩과 함께 놀고 배우고
| 2023.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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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자 소학
| 2022.0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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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에 관한 영화- 잘 죽는다는 것
| 2022.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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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의 정치에 대한 논의
| 2021.08.25 |
168 |
남성 중심 문명 그 이후 (슬기로운 좌파 생활 서평)
| 2022.02.01 |
167 |
3/28 추천글 쓰기의 기쁨
| 2022.0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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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 애도는 사회의 크기를 결정한다
| 2022.11.15 |
165 |
다 함께 폭력을 몰아내는 춤을
| 2020.01.25 |
164 |
박노해 괘종시계
| 2021.1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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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기일에 외경 읽기
| 2022.05.29 |
162 |
저활성 사회 (정근식) 다산포럼
| 2020.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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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일 LA 브렌트우드 집의 정원수와 풀들
| 2022.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