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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컬럼 여가부 관련

조한 2020.08.09 13:43 조회수 : 255

여성가족부, 그 곤란한 자리에 대하여

 

여성가족부가 또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한 것 같다. 지난 7월17일 대한민국 국회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 ‘여성가족부 폐지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다. 성평등 정책은 하지 않고 예산을 낭비하며 여성인권 보호조차도 최근 수준 이하의 대처능력을 보이니 폐지하라는 내용이었다. 나흘 만에 10만명의 동의를 얻은 이 사안은 국회에 전달되어 답을 기다리고 있다. 2001년 3월, 여성부가 출범했을 때를 기억하는 나로서는 20년의 시간을 새삼 돌이켜보게 된다. 코로나19에 대한 ‘K방역’을 극찬하듯이 20년 전 당시 세계 언론과 해외 페미니스트들은 경제 기적과 정치 민주화를 동시에 해낸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이 ‘성평등부’까지 설립한 것을 두고 극찬했다. 참고로 ‘여성부’의 영어 표기는 ‘성평등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이다.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여성부는 여성 시민권을 위한 국가의 의지를 상징하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부처로 출발했다. 부처 설립을 추진했던 여성들은 여성부의 기능이나 규모에 불만이 있었지만 시작에 의미를 두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여성부는 1980~1990년대에 일었던 가열찬 여성운동과 ‘선각한’ 국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는 구호를 실천한 젊은 부부, 오빠와 남동생을 학교에 보내려 공장을 다녔지만 자신의 딸들은 어떻게든 학교에 보낸 어머니,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며 맹렬하게 공부하고 직장에서 열과 성을 다한 여성들 덕분에 1970년대 중반에 결혼 퇴직 각서는 폐지되었고 1987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이 8차례 개정을 거쳐 2007년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로 개정되었다. 쌍둥이 남매의 성장을 통해 남녀차별 사회를 탁월하게 그려준 드라마 <아들과 딸>(1992)이 페미니즘에 불을 지폈고 <대장금>(2003)과 같은 불후의 페미니즘 드라마가 탄생했다. 대학가 최고 인기 강좌는 여성학 관련 과목이었고 남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민주적 데이트’를 고심했고 ‘파트너 결혼’을 실현하고자 했다. 군부 독재를 타도하느라 교조적이고 집단주의적으로 흘렀던 ‘운동권’ 문화도 여성주의운동의 영향을 받아 개인성과 다양성의 원리를 존중하는 문화로 변해갔다. 2005년 6월 노무현 대통령은 출산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TV에 나와서 “아이 낳으십시오, 제가 키워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여성부는 보육과 가족 업무를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아 여성가족부로 확대되었다. 대한민국이 성평등 사회를 향해 내디딘 첫 번째 발걸음이다.

2001년 시작 땐 ‘존재 자체’ 의미
성평등 사회로 가는 첫 발걸음
적은 예산으로 버거운 사회 변화
가부장·기득권 지키려는 남성과
탈노동·탈가족 속 ‘새 길’ 찾아야

성평등 드라마 2막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17대 이명박 당선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각계 민주 시민들의 반대로 없애지는 못했지만 당시 대통령 부인이 관심을 가진 ‘한식 세계화’ 사업을 벌이면서 여성 인권 보호와 청소년 보호, 한부모·다문화 가족 지원 등 가족 업무로 안착되었다. 여가부 예산은 전체 예산의 0.23%인 1조원 수준으로 변화를 이끌어갈 입지를 구축하기에는 턱없이 적은 예산이다. 강제적 셧다운 제도를 시행해 청(소)년들의 반발을 산다거나 여성 인권 관련 사안에 힘있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여가부의 낮은 위상과 적은 예산과 직결된다. 여가부가 적은 예산으로 힘들게 버티는 동안 세상은 그 부처에 또 다른 엄청난 과제들을 안겼다.

여성들의 사회·경제·심리적 독립은 남성들에게는 기득권과 가(부)장이 될 기회를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광포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이들의 불안을 증폭시켜 희생양을 찾아 헤매게 했다. 불안은 급기야 한국 사회를 적대와 혐오로 가득한 성폭력 지대로 만들어버렸다. 바로 여기가 성평등 드라마 세 번째 막이 열려야 하는 지점이다. 탈노동, 탈가족화가 진행되는 현 상황을 직시하면서 시대공부를 하고 더불어 살아갈 방안을 찾아내야 할 시간, “만물은 서로 적대한다”는 세계관을 “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세계관으로 바꾸어내야 할 시간, 더 이상 성폭력은 용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할 시간이 왔다. 최근 “이제는 ‘메갈’의 활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야만의 시대를 넘어서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는 여가부가 제대로 소임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 점검하고 ‘죽임의 생태계’를 ‘살림의 생태계’로 전환해내기 위한 특단의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2020년이 남성과 여성이 서로 돌보고 소통하는 새 막을 올린 해로 기억될 수 있기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81003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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