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목에 버려졌다는 탄생신화
https://m.youtube.com/watch?v= -23fDRlU2VU
<책읽어주는 남자>가 읽어주는
노희경 작가의 첫번째 에세이 집이다.
"삶은 고행"이라는 명제.
삶을 살아낼 근육은 오로지 어려움을 겪어내면서 키워진다는 것.
놀라운 것은 그가 여섯번째 아이로 태어나 아랫목에 버려졌었다는 것,
식구 먹는 것도 없는 데 한 목숨 더 보탤 수 없다고
할머니가 차가운 아랫목에 두라고 했다고 한다.
추운데 삼일을 두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머니의 사주를 받은 큰 언니가
할머니가 밭에 나갔을 때 쌀을 씹어 먹여서
열흘을 살아남아 결국 살아남게 되었다고 한다.
또, 그런데
나중에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큰 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실은 아랫목에 두라고 한 것은 할머니가 아니라 어머니였고
할머니가 쌀을 씹어 먹이라고 했다는 것.
어쨌든 놀라운 출생 신화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비슷한 탄생신화를 갖고 있는 1960년대 출생의 또 한 여성을 알고 있다.
노희경 못지 않게 삶의 본질에 가 닿는, 이판사판 정신을 가진 사람이다.
이미 있는 자식들 먹을 것도 없다며 아버지가 버리라고 했는데
어머니가 숨겨서 젖을 먹여 결국 살아남았다는 경우다.
그 이후 아버지가 미안해서 가장 이뻐하는 자식으로 자랐고
그는 남다른 담력과 용기와 지혜를 가진 어른으로 성장했다.
학생운동을 열렬히 했고 이 딸에 기대가 많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너 빨갱이지?"라고 물었다고 했다.
어쨌든 특별한 사랑을 받아서 그런지
담대한 이 여성은 세상을 구하는 일을 여전히 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생각이 많아진다.
1) 바리데기의 신화처럼 이들이 탁월한 일들 해냈고 스스로도 남다르다고 생각하게 된 공통의 경험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 사건 이후 주변사람들이 미안함을 갖게 되고
모두가 각별한 관심을 주는 존재로 성장 한 것,
출생 신화를 가진 자신이 남다르다고 느끼는 것 자체,
또는 주변 사람들이 미안해하는 그 감정 자체가
이들을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게 만든 요소로 작동하였던 걸까?
처녀가 잉태하여 낳았다는 예수님도 그런 성장 과정을 거친 것 아닐까?
2) 자손이 전부인 유교사회에서
어린 생명을 추운 아랫목에 두어서 죽이는 일이 가당한 일인가?
피임법이 없는 시대라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았겠지만
잘 사는 집 대문에 버렸으면 버렸지 아랫목에 버려두지는 않을 것 같은데....
6. 25를 겪고 가난과 혼란의 소용돌이에서 아노미 상태에서 생긴 일시적 현상이 아닐까?
살아서 뭐하나 배고프고 해방이 되었다면 또 전쟁이 터져 피난을 떠나고
살아봤자 별볼일 업는, 고생길인 세상에 살아서 뭐하냐....
이런 허무주의에서 일시적으로 그런 일이 생겨난 것 아닐까?
3) 내가 아주 예전에 본 인류학 교재에는
아기 어머니와 여려차례 성관계를 했고 친해서
그 여자의 아기를 돌볼 남자가 안 나타나면
태어난 아기를 버린다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인류학자는 주민들에게 한번의 성교로 임신이 된다는 과학적 사실을 말해서 아기를 살려야 하는지
그런 말을 해서 현지주민들의 믿음 체계와 사회체계를 흔들어도 되는지를 묻는,
인류학자가 취할 윤리적 태도에 대한 논의를 하는 부분에서 인용된 케이스였다.
(자료의 출처를 찾지 못해 아쉽다.)
스스로 태어나서 살아갈 수 없는 상태로 태어나는 인간이므로
제대로 살아갈 조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을 때
그런 면에서 살게 하는 조건을 만들든지
아니면 죽게 되버려두는 것이 현명한 일일 수 있겠다.
여기까지 인류학자의 잔머리 굴리기였다. ㅎ
아, 그런데 나는 왜 이런 생각을 계속 하나?
무엇에 보탬이 되나?
요즘은 인류학자 그만하고 스님 하고 싶다.
주변에 나를 그렇게 부르는 분도 계시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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