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가족 덕에, 가족 탓에- 아기 대신 친족을!

조한 2021.05.30 09:55 조회수 : 439

 

가족 덕에, 가족 탓에

가족의 매력이 불러온 비극 <반사회적 가족>

제1364호
등록 : 2021-05-26 01:40 수정 : 2021-05-26 10:56
  • 페이스북
  • 트위터
  • 스크랩
  • 프린트

크게 작게

 
 
 

 

 

외부인을 배제한 작은 가족집단에 몰입하는 것은 그것이 잘 돌아가고 구성원 각자의 요구를 만족시켜줄 동안은 매혹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고 폐쇄적인 집단은 하나의 함정, 즉 가정의 사생활권과 자율성이라는 관념으로 만들어진 감옥일 수 있다.

 

 

-미셸 바렛·메리 맥킨토시 지음, <반사회적 가족>, 김혜경·배은경 옮김, 나름북스, 118쪽, 2019년

 

 

어릴 때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어른들의 놀림이 사실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텔레비전에서 본 하얀 앞치마를 두른 엄마, 통닭을 사 들고 퇴근하는 아빠, 친절한 언니 오빠들이 오순도순 사는 다정한 집을 꿈꿨다. 남들은 안 그런데 왜 우리 집만 추레하고 시끄러운지 속상하고 슬펐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다른 집도 별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 다들 비슷하다니 위로가 되면서도 씁쓸했다. ‘가족이란 게 다 그렇지’ 하고 즐거운 나의 집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그렇게 가족의 환상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족이 따스하고 편안한 안식처만은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해서 가족의 통념, 가족이란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막내-딸 역할에 넌더리를 냈으면서도 기꺼이 아내-며느리 되기를 택했고, 이상적인 가족은 없는 줄 알면서도 TV에 나오는 잉꼬부부, 스위트홈을 질투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착한 딸, 참한 아내-며느리가 되려 애썼고 그러지 못한 죄책감을 떨치지 못했다.

 

영국의 사회이론가 미셸 바렛과 메리 맥킨토시가 쓴 <반사회적 가족>을 만나지 않았다면 계속 자괴감에 시달리며 나와 가족을 원망했을 것이다. 1982년 처음 출간돼 여섯 차례나 재간행되며 가족 연구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 책에서 두 저자는 ‘가족은 근본적으로 반사회적 제도’라고 천명한다. 혹자는 가정폭력, 아동학대 같은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가족제도를 싸잡아 반사회적이라 할 수 있냐고 분개하리라. 가족을 부정해서 뭘 어쩌자는 거냐고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가족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의 매력에 주목한다. 이상적 가족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족에 기대는 나 같은 사람을 비웃는 대신, 그건 가족이 어디서도 얻기 힘든 “정서적·경험적 만족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사회가 가족에 부여하는 물질적·이데올로기적 특권을 고려하면 가족에 투자하는 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도 말한다.

 

그럼 무엇이 문제냐? 문제는 다른 투자처가 없다는 것이다. 주식은 수백 수천의 선택지가 있지만, 가족을 유일한 보호처로 삼는 이 사회의 선택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남(아버지-생계부양자)과 여(어머니-양육담당자)의 성별 분업과 혈연에 기초한 가족을 ‘자연적·평균적인 것’으로 절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이런 가족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달리 갈 데가 없다.

 

저자들에 따르면, 가족은 돌봄의 주된 행위자지만 가족이 돌봄을 독점하면서 다른 형태의 돌봄을 수행하기는 어려워졌고, 가족은 공유의 단위지만 그들만의 공유를 주장하면서 다른 관계는 돈만이 목적인 관계가 되었다. 또한 가족 간 친밀성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면서 바깥세상은 차가운 것, 친구와 이웃은 믿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외로움과 불안에 잠 못 들게 되었으니 이래도 가족이 반사회적 제도가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여기서 벗어날 길은 새로운 가족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미 애정·안정감·친밀성·양육·돌봄 등 가족만이 제공한다고 여겼던 역할과 감정을 다른 장소와 관계에서 얻고 있다. 이런 장소, 이런 관계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편안하고 사회는 더 안전할 것이다. 가족에 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그래, 5월 한 달만 하자.

 

 

김이경 작가
<한겨레21>과 함께
목록 제목 날짜
188 12/16 청년 모임 강의 file 2021.12.14
187 20211204 고정희 30주기 포럼 발제 발표 자료 file 2021.12.09
186 페미니스트 비평 -때론 시원하고 때론 불편한 2021.11.04
185 박노해 양들의 목자 2021.11.03
184 2021 <경기예술교육실천가포럼> 패널을 열며 2021.11.03
183 강릉 <2021 모두를 위한 기후정치> file 2021.11.03
182 또문 리부팅 2021.11.02
181 고나 그림 -캠브릿지 걷던 길 2021.11.02
180 박노해 괘종시계 2021.10.25
179 고정희 시선 초판본 (이은정 역음, 2012) 2021.10.19
178 저신뢰 사회 (이상원 기자, 이진우) 2021.10.19
177 지구 온도 1.5℃ 상승해도 되돌릴 기회 있다 (이오성) 2021.10.19
176 군대 휴가 나온 청년과 fiddler on the roof (볍씨 마을 일기 20210923) 2021.09.23
175 사티쉬 쿠마르- 세상은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 2021.09.15
174 Deserter Pursuit,‘D.P’ 네플릭스 드라마 -폭력 생존자의 세계 2021.09.15
173 요가 소년이 아침을 깨우다 2021.09.15
172 호혜의 감각을 키우지 못한 남자의 노년 2021.09.13
171 돌봄- 영 케어러 2021.09.13
170 오늘의 메모: 듣기를 명상처럼 -잘 듣기 2021.08.29
169 정체성의 정치에 대한 논의 2021.08.25
168 20대 남자와 여자의 거리 2021.08.12
167 한나 아렌트 정치와 법의 관계 2021.08.06
166 재신론 (리차드 카니) 이방인에 대한 환대와 적대 사이 2021.07.30
165 역시 해러웨이 2021.07.30
164 걸어가는 늑대 갤러리를 다녀오다 2021.07.30
163 영화가 던져주는 화두 -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2021.06.18
162 후광 학술상 기조 강연 발표 자료 file 2021.06.15
161 사랑한다면 이제 바꿔야 할 때다 피케티 2021.06.04
160 신인류 전이수 소년의 일기 2021.06.02
» 가족 덕에, 가족 탓에- 아기 대신 친족을! 2021.05.30
158 아파서 살았다 (오창희) 2021.05.16
157 스승의 날, 기쁨의 만남 2021.05.16
156 사람이 사람에게 무릎 꿇는 세상은 (고정희) 2021.05.12
155 마을 큐레이터 양성 사업 (성북구) file 2021.05.09
154 코로나 시대 여성으로 사는 법 (이원진-해러웨이) 2021.05.09
153 기본소득 컨퍼런스 발표 초록과 ppt file 2021.04.20
152 3차 경기도 기본소득 국제 컨퍼런스 발제문 2021.04.06
151 박노해 반가운 아침 편지 2021.04.06
150 어딘의 글방- 제목의 중요성 2021.02.16
149 자기를 지키는 길은 글쓰기 밖에는 없다 2021.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