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
댓글 지면, 어떤 순기능을 하는걸까
| 2022.02.10 |
197 |
할머니들의 기후 행동- 동네 공원에서 놀기
| 2022.02.10 |
196 |
남성 중심 문명 그 이후 (슬기로운 좌파 생활 서평)
| 2022.02.01 |
195 |
토마 피케티 : 21세기 자본, 그리고 사회주의 시급하다
| 2022.01.30 |
194 |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대한 하비의 마음
| 2022.01.30 |
193 |
사피엔스 번식의 에이스 카드는 외할머니
| 2022.01.30 |
192 |
10만년 전 사건, 공감능력의 출현과 협동 번식 (허디)
| 2022.01.05 |
191 |
협동 번식과 모계사회
| 2022.01.01 |
190 |
십개월의 미래, 카오스 코스모스 그리고 모계사회
| 2022.01.01 |
189 |
영화 마션 2015년도 작품
| 2021.12.26 |
188 |
12/16 청년 모임 강의
| 2021.12.14 |
187 |
20211204 고정희 30주기 포럼 발제 발표 자료
| 2021.12.09 |
186 |
페미니스트 비평 -때론 시원하고 때론 불편한
| 2021.11.04 |
185 |
박노해 양들의 목자
| 2021.11.03 |
184 |
2021 <경기예술교육실천가포럼> 패널을 열며
| 2021.11.03 |
183 |
강릉 <2021 모두를 위한 기후정치>
| 2021.11.03 |
182 |
또문 리부팅
| 2021.11.02 |
181 |
고나 그림 -캠브릿지 걷던 길
| 2021.11.02 |
180 |
박노해 괘종시계
| 2021.10.25 |
179 |
고정희 시선 초판본 (이은정 역음, 2012)
| 2021.10.19 |
178 |
저신뢰 사회 (이상원 기자, 이진우)
| 2021.10.19 |
177 |
지구 온도 1.5℃ 상승해도 되돌릴 기회 있다 (이오성)
| 2021.10.19 |
176 |
군대 휴가 나온 청년과 fiddler on the roof (볍씨 마을 일기 20210923)
| 2021.09.23 |
175 |
사티쉬 쿠마르- 세상은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
| 2021.09.15 |
174 |
Deserter Pursuit,‘D.P’ 네플릭스 드라마 -폭력 생존자의 세계
| 2021.09.15 |
173 |
요가 소년이 아침을 깨우다
| 2021.09.15 |
172 |
호혜의 감각을 키우지 못한 남자의 노년
| 2021.09.13 |
171 |
돌봄- 영 케어러
| 2021.09.13 |
170 |
오늘의 메모: 듣기를 명상처럼 -잘 듣기
| 2021.08.29 |
169 |
정체성의 정치에 대한 논의
| 2021.08.25 |
168 |
20대 남자와 여자의 거리
| 2021.08.12 |
167 |
한나 아렌트 정치와 법의 관계
| 2021.08.06 |
166 |
재신론 (리차드 카니) 이방인에 대한 환대와 적대 사이
| 2021.07.30 |
» |
역시 해러웨이
| 2021.07.30 |
164 |
걸어가는 늑대 갤러리를 다녀오다
| 2021.07.30 |
163 |
영화가 던져주는 화두 -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 2021.06.18 |
162 |
후광 학술상 기조 강연 발표 자료
| 2021.06.15 |
161 |
사랑한다면 이제 바꿔야 할 때다 피케티
| 2021.06.04 |
160 |
신인류 전이수 소년의 일기
| 2021.06.02 |
159 |
가족 덕에, 가족 탓에- 아기 대신 친족을!
| 2021.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