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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커뮤니티 재생을 위한 시론 (최종)

조한 2012.08.19 21:42 조회수 : 19459

 

Keynote Address: The 8th Pacific Rim Community Design Network Conference,

August 22-23, the KOEX, Seoul National University

<블록 어택(Block Attack)으로 파괴된 도시 커뮤니티 재생을 위한 시론>

조한 혜정 (Cho, Hae-joang)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1.   근대도시와 ‘도시적 마을(urban village)

도시의 역사는 근대의 역사 그 자체이다. 봉건영주와 수탈과 가부장의 통제에서 살아야 했던 중세 주민들은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며 주저 없이 고향을 떠났다. 도시로 이주한 청년들은 ‘자유로운 노동자(free laborer)’가 되어 마음에 드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핵가족을 이루어 살면서 개인주의 시대의 주역이 된다. 남편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동안 아내는 아이를 키우고 저축을 하고 집을 마련하는 살림꾼 주부로 변신한다. ‘시장’의 축복 속에 개인으로서의 자유를 만끽하는 근대 도시 핵가족의 등장이다.

중세적 도시가 대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사는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다면 근대 도시는 개인, 핵가족과 이웃이 중심이 된다. 이들이 한 곳에 오래 머물게 되면서 ‘이웃사촌’들과 새로운 ‘도시 마을(urban village)’을 형성하게 되고, 근대공업도시는 이런 ‘도시 마을’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쌓아간다.

이런 ‘도시 마을’을 중심으로 한 도시의 풍광은 ‘선진국’이 되면서 급속도로 변하게 된다.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공장들이 대거 인건비가 싼 나라로 빠져나가고 많은 도시 주민들이 실업자가 된다. 행정 수도이거나 특별히 서비스와 문화산업을 발달시키고 금융계의 중심이 되지 않는 한 도시가 살아남기 힘들어진다. 초대형 메트로폴리스들만 살아남는 시대가 온 것이다. 초대형 메트로폴리스에서 살아남은 이들도 별로 행복하지는 않다. 직장에서의 노동 강도는 점점 강해지고 월급이 올라도 소비할 것은 그 못지않게 많아지기 때문이다. 문득 시민들은 자신들에게 있는 자유는 물건을 고를 자유일 뿐이며 오로지 돈이 있을 때 누릴 수 있는 자유임을 깨닫게 된다. ‘시장’은 지구 곳곳을 자유롭게 이동하고 전세계를 누비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사실상 대도시에 사는 시민들의 삶은 점점 더 바빠지고 힘들어지고 있다. 마침내 “도시의 공기는 탁하고 답답하다”며 도시를 떠나는 행렬이 시작된다. 근대 도시는 쇠락하고 새로운 탈근대 도시의 시대가 시작되는가?

오늘 우리는 이런 전환기에 일고 있는 도시적 커뮤니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모였다. 우리는 지금 포스트 성장 시대, 포스트 개발 시대, 글로벌 경쟁 시대, 고용 없는 성장, 고실업 시대, 위험 사회(risk society) 등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탈근대적 위기 상황을 살아가고 있고, 따라서 더 이상 잘 하고 있는 모범 사례를 찾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 우리를 가장 난감하게 만들고 있는가? 그리고 이때의 우리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근대적 계몽주의 시대가 끝난 지금, 나 역시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을 갖고 있지는 않다.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 너무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쉽게 답을 찾으려는 것 자체가 문제적인 태도일 것이다. 성급하게 가기보다 함께 고민을 나누고 제대로된 질문을 찾아내는 과정을 제대로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우리가 가진 상황의 난감함을 제대로 공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례에서 배운다면 그것은 답이 있어서가 아니라 반면 거울의 사례로서일 것이다.

, 각자가 선 자리에서 자신의 문제를 풀어가는 고민을 이야기 하면서 우리의 문제를 풀어가보도록 하자. 서로 영감을 받아가는 것, 그리고 함께할 일이 있다면 네트워킹을 하는 정도가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서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나는 서울이라는 구체적 공간에서 60년을 살아온 한 시민으로서,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에 살고 싶은 인류학자이자 페미니스트로서, 또한 최근 서울시에서 시작한 마을 만들기 지원 사업을 돕는 공공적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의 입장에서 이제 이 주제에 대한 그간의 고민을 나누어보려 한다.

 

2.   블록 어택을 당한 서울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커뮤니티를 이야기 하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주제는 ‘블록 어택(block attack)’이라고 생각한다. 근대 도시의 진화는 서구와 아시아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의 고도화를 거치면서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데 차이가 있다면 비서구 사회의 경우, 서구라는 선진 모델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서구에 비해 매우 압축적인 속도의 변화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서론에서 도시로 몰려간 농촌 주민들이 도심 주변에 새로운 동네를 만들어내면서 근대 도시가 시작된다는 말을 했는데, 서울 역시 그런 과정을 거친다. 갑자기 들이닥친 수많은 이주민들로 서울에는 짧은 시일 안에 많은 집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새 택지가 조성되고 연립주택들이 들어서게 된다. 접근이 어려운 산중턱까지 집들이 들어서서 이른바 ‘달동네’를 이루었다. 이주민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창의적으로 자신들의 주거환경을 만들어갔다. 어릴 적 마을에서 성장해서 나름 ‘마을 살이’에 대한 감각이 있는 이들이 만들어낸 휴먼 스케일 도시적 마을(urban village)인 것이다. 빈 공간(space)에 들어선 비전형적 건축물들은 주민들의 지혜로운 ‘마을 살이’를 담아내는 장소(place)로 조화를 이루어갔다. 이들 ‘마을’은 주민들의 필요에 따라 융통성 있게 바뀌는 생활공간이자 안전성과 친밀성과 기억을 담아내는 장소로 진화하는 중이었다.

그런 도시가 최근 거대한 블록들에 의해 침입을 당했다. 동아시아 지역 조사를 통해 우리가 확인한 것은 주거공간이 주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모습, 즉 공간적 풍부함과 사회적 다양성 같은 것을 담아내지 못한 채 재산 증식의 수단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디자인그룹 MVRDV의 창업자이자 디렉터인 위니 마스(Winy Mass)가 한 말이다.[1] 아시아 대도시를 조사한 MVRDV팀은 이 도시들이 급속하게 ‘블록’들에 의해 잠식된 현실을 발견하고 이를 ‘블록 어택(block attack)'이라고 불렀다. 도시가 삽시간에 “대량생산된 주거 양식의 침략”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홍콩과 싱가포르, 그리고 서울은 이미 블록들이 도시적 마을을 거의 휩쓸어버린 상태이며, 베이징과 상하이는 블록들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는 상태로 규정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서울이 130만 아파트 단위를 기록하여 가장 강력한 블록 어택을 받은 도시라고 보고 있다.

온기가 살아 있던 ‘도시 마을(urban village)’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철근 콘크리트의 고층 주거 타워들에 의해 삽시간에 사라지고, 이 ‘마을’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공동체적 삶의 그릇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간의 근대화 과정에서 만들어졌던 휴먼 스케일의 골목, 밤늦게까지 열려 있던 동네 이발소와 식당, 헌책방과 만화가게, 그리고 재래시장이 있는 마을 중심부는 사라지고 대형 놀이공원과 백화점, 거대한 카트를 끌고 시장을 보는 대규모 슈퍼마켓과 마트가 들어섰다. 점점 더 바쁘고 불안해진 이웃들은 아파트 가격이 내려갈 만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단지의 출입을 강화하자는 등의 안건이 없는 한 서로 만나는 일이 없다. 거대 주거 단지를 지으면서 정부에서는 주민들을 위해 거대한 문화센터와 체육관을 짓지만 그곳은 시민들을 단순 소비자, 강사와 수강생으로 만들어낼 뿐이다. 블록 어택을 당한 주거단지는 친척도, 이웃도, 때론 가족도 없는 자기 ‘한 몸’ 관리하기 바쁜 ‘무연’의 개인들이 분주하게 살아가는 공간인 것이다. 이런 공간에서는 ‘사람 살이’의 핵심 원리인 다양성(diversity), 유연성(flexibility), 개성(individuality), 집단성(collectivity), 친밀성(intimacy)은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이미 이십여 년 된 아파트 동네에서는 도시적 마을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재개발의 소용돌이에 바람이 든 서울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마을 살이에 눈을 돌리기에는 너무 척박한 곳이다. 아파트 불패의 신화가 아직 꺼지지 않고 있으며 연일 텔레비전에서는 지금 아파트를 구입하는 기회를 놓치면 행복의 파랑새를 영영 날려버릴 것 같은 광고를 보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젖어 다수의 시민들은 ‘블록 어택’이 자신들의 삶의 질을 공격하는 적이라고 보지 않고 있다. 물론 이런 분위기를 만든 무대 뒤의 연출가들은 블록 건축을 통해 돈을 확실히 챙길 수 있는 토건업자와 대출 금융계와 정계를 포함한 결탁체이고, 이들은 회유와 설득과 법적 제재와 폭력 등 모든 수단방법을 사용하였다.[2] 어떤 면에서 뉴타운과 재개발 열풍은 정부와 시장과 시민들 모두가 공범이 되어 벌인 투기자본주의의 대표적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결국 재개발과 뉴타운 정책은 도시적 마을을 한 순간에 밀어 없앴을 뿐 아니라 충분한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추진했기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 아주 많은 폭력과 상처를 남겼다. 이 상처와 폭력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서울의 마을 만들기가 제대로 추진되기는 어렵다. 이 문제는 정치권과 깊이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풀기가 어렵겠지만 서울 살이가 마을 살기가 되기를 원한다면 현명하게 풀어야 할 가장 핵심적인 과제이다.

3 서울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도시 마을 만들기의 움직임들

현재 한국은 한국의 대중가수와 드라마가 전 세계 곳곳에서 사랑을 받는다며 한류 열풍에 열을 올리고,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5위를 기록했다는 자부심에 들떠있지만, 자랑스럽지 못한 기록이 그 못지 않게 많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최고의 노동 강도, 최고의 청년 자살률과 독거노인 비율을 기록하는 곳이기도 하다. 성공 모델보다 실은 반면 거울로 배울 점이 많은 사회일 것이다. 이런 심각한 공격을 당한 서울이지만 이곳에서 마을 만들기 움직임은 꾸준히 일어왔다. “위기가 기회”라고들 말하지 않는가? 이 차원에서 보면 서울은 ‘선진 도시’이다. 블록 어택을 심하게 당한 서울이 휴먼 스케일의 도심 마을적 삶을 회복해갈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한국만이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에 희망을 주는 사건일 것이다.

이 맥락에서 서울 곳곳에서 진행된 풀뿌리 주민들의 마을 만들기 사례들은 아주 소중한 자원들이다. 블록 어택을 당하지 않은 지역, 그리고 블록 어택에 동요하지 않은 시민들이 십여 년 전부터 자신들의 문제는 자신들이 풀겠다며 도시적 마을을 만들어가는 움직임을 시작했다. 그들은 주로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민주운동에 참여했던 경험을 가진 의식화된 시민들이다. 이들은 크게 두 영역에서 일을 벌였는데 하나는 지역사회에서 소외된 주민들과 함께 하는 복지적 활동이다. 그들은 공부방이라거나 소외된 청소년들과 함께 대안학습을 하면서 공동체를 만들어 살기도 하였다. 지역 안에서 평등을 이루고 싶어 한 자들이 돌봄의 공간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주민운동을 벌여간 것이다. 다른 그룹은 새로운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자신의 삶에서 운동을 시작한 경우이다. 이들은 주로 공동육아로부터 마을 만들기를 시작했다. 예를 들어 성미산 마을의 경우는 몇 명의 시민들이 융통성 있고 비정형적인 건축물들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골목이 살아 있는 작은 규모의 지역을 택해서 공동육아를 시작하면서 시작된 마을이다. 공동육아를 통해 형성된 느슨한 주민들의 모임은 생활협동조합 활동을 활성화 시켰고, 동네 산을 깎아서 수도배수지를 짓겠다는 구청의 계획에 함께 반대하면서 마을 일에 더욱 관심을 쏟게 되었다. 수시로 만나게 되면 서로의 욕구를 알게 된다. 자연스럽게 맞벌이 부부를 위한 반찬가게가 들어서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대안학교가 생겨나고, 아이들과 교사들이 운영하는 유기농 아이스크림 가게가 생겨났다. 자동차 수리 단골가게도 들어서고 수시로 다양한 마을 축제를 열게 되고, 이런 곳이 좋아 이사를 들어온 재능 있는 주민들은 리사이클 숍과 요가 겸 치유의 공간을 열기도 하였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대안 중고등학교가 정착되고 앞으로 마을의 대안 대학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들이 오가게 된다.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된 1980년대 민주화 세대에 의한 이런 움직임에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들이 합류했다. 고립된 핵가족적 단위의 삶이 얼마나 불안한 것인지를 간파한 어머니들이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고 혁신 학교운동에 참여하면서 마을 만들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일기 시작한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은 이런 마을 만들기에 또 다른 활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십여 년의 역사를 가진 마을에서는 점차 단골 경제의 영역이 만들어지고 있다. 외부 기획사에 의존하지 않는 다양한 마을 축제와 문화제와 대안 학습의 장은 자연스럽게 많은 일자리와 일거리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화석 연료가 바닥이 나고 있고 기후 변화로 인한 재앙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서, 또한 2011년 이웃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사고로 인한 핵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된 서울의 어머니들은 에너지와 먹을 거리 문제를 중심으로 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에너지 자립과 도시 농사에 대한 관심과 함께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어가려는 주민들이 생겨나면서 관민 협력 마을 공간 생태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여 한 뼘 공원, 동네 우물, 빗물 가든, 생태 놀이터와 공원, 마을 , 옥상과 벽 녹화사업 등이 그것이다. 동작구 성대골 마을에서는 어린이 도서관을 중심으로 성대골 절전소 워크숍을 진행하고 각 가정별로 사용 에너지를 상세하게 조사하고 줄이는 계획을 세우는 등 이른바 ‘ENERGY DOWN, ENERGY SHIFT’ 운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고 이런 운동은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점점 확산될 전망이다.[3]

도심 내 마을은 바로 이렇게 현재 삶에 불만을 느낀 몇 명의 주민들에 의해 생긴 모임이 자연스럽게 확장되면서 만들어진다. 이런 확장을 통해 시장적 생산성과 경쟁, 그리고 적대적 관계로 이루어지는 승자독식적 삶을 지양하고 아이를 키우고 식사를 하면서 상부상조하는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주민들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개성과 다양성, 협력을 담아낼 수 있는 휴먼 스케일의 주거 공간(마을)의 회복이자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결속력을 동시에 일궈내는 도시 재생 움직임이다. 이런 움직임은 아직 크리티칼 매스(critical mass)를 형성해서 주류사회를 변화시키기에는 상당히 허약(fragile)하다. 이들이 도시적 마을로 진화하기에는 여전히 공적 공간을 포함한 물적, 인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고, 내부적으로는 충분한 다양성과 융통성(diversity and flexibility)을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다수의 서울시민들은 여전히 이사를 자주 다니는 상황이다.[4] 대학생들에게 집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상당수가 서너 번 이사를 다녔다고 하고 그런 잦은 이사로 인해 기억에 남는, 정을 붙인 장소가 없다고 하였다. 마을이라거나 장소성(placeness)에 대한 감각을 키우기 힘든 조건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잦은 이동과 빈곤, 그리고 삶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청년들 사이에서 공동체 생활에 대한 희구가 강하게 생기고 있기도 하다. 서울에서 도시적 마을을 만들어내는데 보이지 않지만 핵심적 역할을 한 곳은 인문학 시대 공부를 하면서 도시적 느슨한 공동체를 꾸려낸 ‘연구 공간 수유+너머’일 것이다. 최근에 공동 주거와 공동 생활을 실험해온 용산 해방촌의 ‘빈집’과 ‘빈가게’도 주목할 장소인데 이 둘 모두 20~30대 청년들이 주축이다.

마을에서 아이들을 함께 키우려는 부모들과 마을에서 공부하고 의미 있는 일거리들을 만들어서 불안하지 않는 삶을 살아보려는 청년들, 그 전부터 자기가 사는 곳을 사랑하고 가꾸는 주민들이 힘을 합친다면, 그리고 관이 이런 움직임을 돕는다면 큰 변화를 기대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연대 사무처장 김은희씨는 2012 46일 서울시 의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서울시 마을 공동체 방향 모색을 위한 간담회에서 그간의 마을 만들기운동의 성격을 보면 주민주도/행정주도/시민단체주도로 나눌 수 있는데 그간 우리가 여기서 이상적으로 여기는 주민 주도적 자생적 마을 만들기는 주로 정주성이 강한 저층주거지에서 이루어져 왔고, 그런 자생적 마을들이 재개발, 재건축으로 급격히 사라지고 있음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970년대 서울시 전체 주택의 88.4%였던 단독주택은 2005 19.8%로 급감했으며 현재 서울시에 남은 저층 주거지들도 대부분이 재개발, 재건축 구역으로 지정된 상태에서 마을 만들기가 제대로 진행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재개발 재건축 사업이 상당히 폭력적인 대자본, 주민들을 현혹시키는 정비업체, 부동산을 통한 경제적 이익에 눈이 먼 주민 등이 함께 결탁한 결과이며, 그 무엇보다 주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커뮤니티를 외면하고 끊임없이 높이를 완화하면서 고층아파트 중심의 물리적 계획에만 치중한 행정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은희씨는 서울에서 일고 있는 마을 만들기 운동이 그간 자본과 행정에 의해 도시 마을 공동체가 와해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채 진행된다면 그것은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사실상 현재의 금융 자본주의적 위험사회에서, 그리고 바우만(Bauman)유동적 근대 liquid modenity라고 규정한 신자본주의 사회에서 일고 있는 새로운 사회운동은 착한 소시민들에 의한 운동은 아닐 것이다. 소수를 처벌해서 죽게 하고 나머지는 살게 하던 (Make die, Let live)  중세와 근대 초기와는 달리  소수를 살게 하고 나머지를 죽게 내버려두는(Make Live, Let Die) 신자유주의 시대 시민 운동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문법을 가진 시대를 만들어내야 나 개인과 나의 동네, 나의 국가, 그리고 인류가 살아갈 수 있다는 자각을 한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함께 시대공부를 하면서 만들어낼 운동일 것이다. 그것은 소멸해가는 사회 the social를 회복해내는 운동이며 환경운동, 특히 세대간 자원의 불공평한 분배의 문제를 다룰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성의 회복 운동은 에너지 자립과 식량 자립의 의미와 사회경제로의 전환에 대한 비전을 가진 운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소비에트가 망하면서 석유 부족으로 인한 극도의 결핍상황을 커뮤니티의 힘으로 극복한 쿠바의 사례[5] 피크 오일과 갖가지 재난에 대비해서 마을을 전격적으로 전환시키는 운동을 세계적으로 벌이고 있는 영국의 Totnes Transition Town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시대에 필요한 마을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6]

나는 이 운동이 쉽게 핵심 시민 대중 critical mass 을 모아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가공할 삶의 속도와 그에 따른 피로함이라는 변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최근 저서 [피로사회](2012)에서 구성원들을 극단적 피로와 탈진 상태로 몰아넣는 성과주의 사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20세기가 ‘결핍의 시대’이자 ‘규율 사회’였다면 21세기는 ‘과잉의 시대’이자 ‘성과 사회’라고 규정한다. 이런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성과를 추구하는 주체가 되어 ‘속전속결’, ‘선진첨단’을 외치며 온 힘을 다해 달린다. 그러나 이 체제는 ‘성능 없는 성과 사회(productivity society without potentiality/ competence)’이며 인간을 관리하는 기계처럼 만들어가는 사회이다. 이 성과 주체들은 일단 멈추면 모든 것이 끝장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달리고 있어서 다른 일에 눈 돌릴 겨를이 없다. 그냥 혼자서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과속으로 달리는 체제에서 끊임없이 달리고 있는 중이다. 소통 부재의 사회, 무연 사회에서 섬처럼 각자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낸시 폴브레의 주장대로 현재 자본주의 사회는 단순히 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슴’의 영역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7] 현재 성과사회의 위기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가슴의 영역이 소멸되고 있다는 데 있다. 그 소멸의 조짐은 그간 자원봉사를 하거나 사회적 돌봄의 역할을 해오던 주부들이 사라지고 있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골목 어귀에서 수다를 떨고 옆집 손주를 돌봐주기도 하던 50줄이 된 어머니들이 그간 마을의 주인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이제 ‘자아실현’을 위해 취미 교실에 다니거나 자녀 취업을 위한 알바를 뛰거나 불안한 노후를 대비해서 각종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어린아이를 가진 엄마들도 골목에서 사라졌다. 그간 엄마들이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기도 하고 공부방을 열기도 했지만 이제 각자 자기 집에서 혼자 아기를 보거나 나라에서 만든 보육원에 맡긴다. 그간 부지런히 아이를 키운 엄마들에게 이제 마을의 공동 육아방을 해보라고 말하면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육아와 관련된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아이를 빨리 보육시설이나 학교나 학원에 맡겨 ‘경력단절’ 기간을 줄이고 싶은 생각만 간절하다고 한다. 저출산 문제를 시장을 위한 노동력 문제와 직결시키는 도구적인 사고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가슴’의 영역은 급격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블록 어택을 당한 토건 국가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블록 어택에 대한 반격은 마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작지만 마을을 만들려는 풀뿌리 주민들의 움직임이 소중한 것이다. 도시 마을 살이의  형체를 갖추어가고 있는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면서 시장적 생산성과 경쟁, 그리고 적대적 관계로 이루어지는 승자독식적 삶이 아닌 삶이 가능한 곳, 함께 아이를 키우고 밥을 나누고 상부상조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동네로 상상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곳 저곳에서 이웃들과 자신이 직면한 일상의 문제를 풀어가는 ‘자조’모임이 생겨나고 이런 모임들이 자연스럽게 ‘공조’활동으로 확장되면서 새로운 ‘공공’을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를 ‘자조(自助, self help) 공조(共助, group help) 공조(公助, public help)’라는 말로 표현하면서 이런 움직임이 바로 후기근대에 태풍을 일으킬 작은 거대한 나비의 팔락임이라고 강조하곤 한다.

 

4. 마치며: 사회적 돌봄 영역의 회복과 마을 디자이너들의 네트워크

다시 마을의 시대가 오고 있다. 그간 물리적 도시가 도시인의 삶을 조성했다면, 지금은 도시인의 삶이 도시를 변화시킬 때이다. 페미니스트 낸시 프레이저(1997:62)는 커뮤니티가 살아 있는 삶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돈 버는 것과 보살피는 것, 지역 운동과 정치 참여, 그 외 다양한 시민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상호 시너지를 내는 통합된 사회를 상상해보라. 재미있게 놀 시간도 있다고 상정해보자. 그런 미래는 금방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탈 산업사회로 이동하는 시대에 그 비전을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시 민주적 세상을 꿈꾸기는 힘들 것이다.

마을 만들기는 우리가 그간 해온 사업과는 내용과 방식 면에서 급진적으로 다른 성격의 일이다. 그것은 그간 극히 개인적인 영역의 것이라 생각해온 돌봄을 사회화하는 일이다. 그것은 한 아이를 돌보는 것에서 시작하는 아주 섬세한 작업이다. 성장주의 시대에 우리가 해온 것이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하고 전쟁을 하듯, 사냥을 하듯, 전략적 작전을 짜서 계획대로 진행하는 일이었다면 이제 우리는 그간의 상처를 치유하고 세밀하게 우리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미처 키워내지 못한 돌봄의 능력을 회복해가야 하는 것이다. 거대해지려는 욕망에 사로잡혀있거나 가시적 성과에 연연하는 지도자들이 있다면 그들로 하여금 자기 성찰을 하게하는 것이 바로 마을 만들기일 것이다. 작은 것의 소중함, 생명을 키우는 돌봄의 경험과 감각 없이 진행되는 성급한 마을사업은 사기극이 될 수밖에 없다.

마을 만들기는 ‘도구적 합리성’이 아니라 ‘소통 합리성’을 통해 만들어지는, “아래로부터의 공동체적 삶의 디자인(design for community living)”이므로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사람,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철학을 내면화 한 사람, 지속성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주도해야 할 프로젝트이다. 마을을 만드는 일은 토건사업처럼 매뉴얼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모여 시행착오를 하는 과정 자체가 마을 만들기이다. 마을은 도구적 공동체가 아니라 소통과 돌봄의 공동체이므로 만일 국민의 세금으로 이 일을 해내겠다면 그간의 성과주의체제와는 확연하게 다른 원리의 행정지원제도가 나와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성공사례’에 지원이 가는 것이 아니라 시행착오 과정의 질을 보고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마을 관련 일에 연루된 이들은 그간의 성과주의와 결과주의에 길들여진 몸부터 바꾸어내야 하는 것이다. 마을 만들기가 단순히 공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바꾸는 작업이고 인생을 바꾸는 개벽적 과정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면에서 혼자 일을 기획하고 도모하는 사람은 위험하다. 작은 것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 모여서 토론하는 것의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 자신이 부족한 점을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 메울 줄 모르는 사람은 피해야 할 요주의 인물이다. 주민들이 모여 지혜를 짜내면 산적해있는 문제들을 풀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가진 사람들이 마을 일꾼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간 마을 디자인을 해온 이 자리에 계신 분들에게 묻고 싶다. 함께 둘러 앉아 회의하는 자리에서 희열을 느껴 봤는지를 말이다.

이런 차원에서 나는 ‘마을 디자인’ 또는 ‘마을 디자이너’라는 개념이 불편하다. ‘top down’의 뉘앙스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누가 무엇을 누구를 위해 디자인한다는 말인가? 마을 만들기는 ‘자공공’의 원리를 실현하려는 주민들 모두가 디자이너가 되는 공동의 프로젝트이다. 여기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일꾼들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코디네이터(coordinator),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애니메이터(animator)’그리고 네트워커 (networker)의 역할을 하는 이들일 것이다. 나는 후기 근대에는 청년들이 이 역할을 맡아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리라 믿고 있다. 이미 문화적 감수성과 시대에 대한 통찰력을 키운 많은 청년들이 마을의 일꾼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예술적이며 문화적 감각이 풍부한 디자이너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가진 디자인 감각은 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빛난다. 그래서 이들은 누구에게서나 어디에서나 배울 줄 안다. 이들은 획일적인 것을 참지 못한다. 다양성의 원리를 존중하고 그 다양성이 바로 마을의 지속가능한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바탕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치와 자활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렇게 살고 싶은 주민들을 찾아내고 초대하는 사람, 충분히 기다릴 줄 아는 사람, 땅 밑의 씨앗을 볼 줄 아는 투시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사람들이 모이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을의 원탁회의를 통해 작은 기적들이 일어나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마을 디자이너들이 네트워킹을 시작할 때 큰 기적들이 일어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탁월한 마을 일꾼들의 네트워킹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고 이 자리가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침 서울시가 마을 만들기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관민 협동을 통한 기적을 이루어 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만일 훌륭한 마을 일꾼들과 ‘연애’를 시작하는 공무원들이 많아진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 이제 서울 시민들에게 기대를 걸어보자. 블록 어택을 당한 서울에 봄이 오기를, 그래서 아시아에 부는 블록 어택의 광기를 마을의 힘으로 잠재울 수 있기를 함께 기원하자.  (2012/08/19)



[3] 성대골 마을에는 어린이 도서관을 만든 이후 마을 절전소와 카페, 목공소 등을 중심으로 주민활동이 이어지고 인근에 초등학교를 만들 계획도 세우고 있다. http://cafe.daum.net/dongjakkidlibrary, http://womencoop.tistory.com/249

[5] 오일 위기를 20년전에 겪은 쿠바가 어떻게 자전거, 새로운 운송, 도시 농업, 식량 혁명 등을 통해 식량과 에너지 자립을 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로 “The Power of community How Cuba Survived Peak Oil (2006)”가 있다.http://www.powerofcommunity.org/cm/index.php

[6] 2006년에 일기 시작한 토트니스 트렌지션 운동은 이제 글로벌 차원의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트렌시션 타운 홈페이지는 http://www.transitiontowntotnes.org, 일본이2011년 츠나미 이후 일으키고 있는 트렌지션 타운 운동은 홈페이지http://ourworld.unu.edu/en/rebuilding-after-the-tsunami-eco-or-transition-towns,  최근 일본에서 일고 있는 아시아  transition town 운동에 대해서도 영문 사이트 http://transition-japan.wikispaces.com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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