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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일기

johancafe 2010.05.14 17:58 조회수 : 3745

10월 30일 일요일

8시에 내려가 보니 커피가 끓여져 있지 않다.
아침이 차려져 있지 않으니 썰렁하군.
브라이언에 늦잠을 자나…
보이지 않던 잡지꽂이가 거실에,
그리고 부엌에는 작은 액자가 걸려있다.
마치 기도문이나 들어있을 법한 액자에는 이런 글이 써져 있었다.

“Green Egg?
여기에 있는 삶은 계란은
우리 친구 엘리의 농장에서 온 것입니다.
그는 브락시포트 벽돌집에서
작은 양계장을 하고 있는데
그 집은 그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으로
1800년대의 험한 역사를 살아남은 유일한 건물입니다.
엘리는 칠레산 아라우카나 종류의 닭을 기르고 있습니다.
그 닭들은 여기에 있는
아름다운 녹색 올리브색, 그리고 아몬드색 알을 낳고 있지요.
흰, 그리고 갈색의 재래식 계란도
역시 엘리의 양계장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신의 숨결을 이렇게 구석구석 불어넣고 있다니!

9시에 내려가니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네바다 시에서 왔다는 50대 부부.
이 한가로운 부부들이 친절하게 말을 건다.
또 말을 할 것인가, 방으로 올라가서 마무리 작업을 할까…
고민 하는데 그냥 많은 이야기들이 나와 버렸다.
남자는 25년간 교사였는데 교사 월급으로는 살 수 없어서 작은 사업도 했다는 것,
사업이 잘 되어서 3년 전에 교사를 그만 두었다는 것,
고민이 많았지만 학교에 있으니 행정일 잡일이 너무 많고
학부모들은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하는 아이가 마치
대단한 법률가가 될 아이인 듯 착각하고 요구사항도 많고 말도 많다고 했다.
그만 둘 즈음에는
알코홀이나 약물 중독때 임신을 해서 낳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였는데
그 심각한 문제를 개인의 힘으로는 어떻게 풀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사실 학교 있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은퇴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의료 보험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여자는 치과 등등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치과의사들이 돈을 번다고 하지만 실은 돈버는 사람들은 보험회사일 뿐이라고 한다.
대부분 치과의사들은 8년이나 10년을 의사가 되기 위해 대학을 다니게 되는데
그러면 대개 10만불의 은행빚을 가지게 되고
그 빚을 다 갚으려면 50세 정도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험회사가 돈을 버는 것은 체제가 그렇게 되었다기 보다
사무 보는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서 결국 치과에서 돈을 찾지 않게 되는 식으로도
돈을 벌게 된다고 한다.
결국 미국, 또는 세상의 돈은 보험회사와 법률회사가 다 가진 것 아니냐고 한다.
주변에서 의사들 중에도 힘들어서 그냥 큰 병원에 가버리거나
소아과 의사들은 아이 감기 하나 가지고 24시간 전화를 거는 ‘미숙한 엄마’들 때문에
의사질 못해먹겠다고 그만 두기도 한다는 것이다.
친구 중에 대만 여행 중 아파서 병원치료를 받았는데
아주 훌륭한 치료를 받았고 요금 청구서가 나왔는데
미국의 1/10정도의 가격이라 잘못 온 것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세상이 이렇게 점점 나빠져서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쉰다.
그녀는 자기 조카가 국방부에서 군대에 민간인들 리크루트 하는 일을 했는데
‘거짓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너무 괴로워했었다는 말을 했다.
여기 대학 아이들이 데모하던 이야기를 그대로 조카의 경우를 들어 이야기 해준다.
군대 가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군대가면 어떤 경제적 이득이 있는지 리스트를 주고
그 조건으로 청년들을 데려오라고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명 당 리크루트 해야 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어서
조카는 아주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대학 다니면서 돈이 없어서 군대 가서 군대 일 하면서 계속 학교 다니려고 했는데
가보니 그것이 가능한 조건이 아니었다고도 한다.
군대를 없앨 수 없다면 제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직하게 돈을 지불하고 제대로 조직을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한다.

아이고, 이제 인터뷰를 더 이상 하지 않으려 하는데
왜 오늘도 내가 이런 분들을 만나게 되었을까?
마치 내가 그간 관심있는 것을 알아차리기나 한 것 같다.
마가렛 미드의 연구가 너무나 그의 의도와 비슷한 결과가 나와서
유도연구가 아니었나 의심을 받았었는데
이런 우연이 너무나 이어지니 나도 좀 이상한 생각이 든다.
미국에 사람들이 지금 다들 이렇게 산다는 뜻인지
이 집에 오는 사람들이 그런 것인지…

사실 현지 정보를 전달하기 보다
숨을 고르며 사는 것을 느끼는, 읽기에 즐거운 글을 쓰려고 했는데
계속 우울해지는 정보를 말하게 되네…
지겹다.

자건거를 시내를 한바퀴 돌았다.
시내라고 해야 이대 연대 앞 정도의 작은 시내인지라…

그리고 저녁에는 다니엘의 집에서 송별회겸 다니엘의 생일 파티를 했다.
역시 다니엘이 요리를 다 했다.
자기 생일인데도…
한시간 정도 맥주를 마시면서 해지는 구경을 하면서
바베큐 불을 피웠다.
내가 가져간 불고기와 닭 갈비에 맞추어서
다니엘이 준비한 식단은 도마도 구운 것,
오이 식초를 넣어서 약간 시게 양념한 것,
생 두부 썰은 것에 간장과 일본식 생선 간 것을 부은 접시,
흰 밥과 상추(시저 살라드)와 고추장
그리고 물김치가 준비되어 있었다.
고추장에 상추라니…
쌈장이 따로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게지..
그러나 모두들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
물론 열개의 작은 촛불과 큰 두개의 촛대에 켜진 불,
특별한 맥주와
메리가 만든 90 프로 초코렛과 10프로 밀가루가 들었다는 케익과
다니엘이 만들었다는 조금 짠 아이스크림이
후식으로 풍성하게 나왔었다.
다니엘의 친한 친구들, 대단히 바쁘고 대단히 유명한 사람들은
절친한 친척보다 더한 애정으로 고 3인 앤디가 갈 대학에 대해 논의를 하고
그가 쓴 에세이를 읽고 평을 해주곤 했다.
어머니가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는 이야기,
내가 쓰는 이곳 일기 이야기.
강의 계획서 만들 때 절대 자기가 읽지 않는 책을 사용하면 안 되는데
읽어야 할 책인 듯 해서 써두었다가 하루 전날 읽느라고 힘들어하고
그 책이 생각처럼 좋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을 거듭한다는 이야기.

오케스트라 연습을 가려는 앤디가 차로 데려다 주었으면 하는 눈치를 보이니까
다니엘이 “너 걸어가야 해”라고 말해놓고
금방 마음이 약해져서 데려다 주겠다고 하니까
모여 있던 친구들이 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모두 크게 웃는다.
아이와의 협상에서 “어디에 언제 선을 그을 것인가?”를 두고
어른들이 내내 고심하고 있는지를 아이들은 알까?
그가 대학수업에 음악 관련 글짓기 두 페이지 글을
메리가 허락 없이 읽게 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잠시 미묘한 불안감이 감돌았지만
앤디는 생각보다 그런 것에 과민한 청소년은 아니어서 쉽게 넘어간다.
그러나 다니엘이
“그 글은 내가 읽은 것 중에 유일하게 정말 잘 쓴 글이다”라는 말을 하니까
모두가 면박을 준다.

생일인데 그날 알려주었다고, 정말 몰상식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화를 내는 척 했고,
할로윈 데이가 내일인데, 그런 날 다음날에 나와야지
어째 그 전에 나왔냐고, 참 눈치 없는 아이였다고 놀리기도 한다.
화기 애애한 분위기를 계속 연출하는 것도 고도의 요령을 필요로 하는 것 아닌가?
유럽 영화에서만 보았던 그런 미묘한 감
그리고 강의 준비를 하러 가자고 일찍들 헤어졌다.
서로를 아끼고 돌보는 마음 씀씀이를 풍성하게 느끼게 하는 파티.
참 많은 감정 노동이 들어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집에 오니 대학에서 국방부 리크루트 데모때 만났던 빈센트의 전화가 왔다.
그때 찍은 사진이 준비되었으니 보겠냐고…
그는 지금 미국의 11개 대학에서 학생들이 텐트를 치고
하고 싶은 것을 배우는 운동(activism)을 하고 있다고 했다.
www.tentstate.com에 들어가서 그런 움직임에 대해 설명해준다.
이 학교는 원래 홈리스 등이 텐트를 캠퍼스에 많이 쳐서
엄한 규칙들이 있고 자기들이 텐트를 치는 것에 대해
대학에서 허가를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올 사월에 그래도 텐트를 쳤고 백여명이 잡혀 갔었고
경찰이 만지면 가장 아픈 포인트들을 눌러서 인간띠를 해체하고
잡아갔는데 그것을 다큐멘타리로 찍은 것dmf 보여주었다.
그 다큐멘터리로 텐트 대학이 미국내에서 더욱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지문을 찍혀서 이제 시스템에 자기 흔적이 있게 된 것은 불행이지만
자기들 운동(activism)으로는 경찰이 잡아가 주어서 아주 잘 된 일이라고 한다.

언어배우는 것을 좋아한다는 빈센트는 다음 학기 남미로 갈 것이고
그 다음 졸업을 하면 사진기사나 리포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한국을 한국 사람들은 뭐라고 부르느냐
북한 사람들도 그런 단어로 자기 나라를 부르느냐…
궁금해 하는 것이 많다..
자기가 찍은 사진을 시디로 구워서 준다.
착실한 친구들이 꽤 있군.
하자와 내 홈페이지, 그리고 빅 픽쳐 컴퍼니 소개를 하니까
신이나 하면서 열심히 적어간다.
언젠가 불쑥 한국에 왔다고 이메일을 보낼 것 같은 친구로구먼.

2005-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