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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지시문 시간의 춤

johancafe 2010.11.04 13:54 조회수 : 3757

과제: 3) 시간의 춤을 보고- 초딩 13학년 모범답안, 정답과 참답

마크로 역사 (반성, the NY Times 1910 8 22일 기사)를 보는 경우.

<역사 앞에서 개인은 얼마나 작은가>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 멕시코로 떠났던 사람들. 그 속에는 남편으로 부터 도망치기 위해 상자에 숨어야만 했던 여인도 있었고, 갓난아이를 짊어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알았을까? 자신들이 새로운 역사의 흐름에 휘말리고 있었다는 것을. 타인에 의해서든 스스로에 의해서든 어떻게 보면 결정론적으로 그들을 자연스럽게 배에 올라탔다. 선택 아닌 선택을 받은 것일까.

결국 그들이 종착하 곳은 원래 목적지인 멕시코도 아닌 쿠바. 제물포항에서 배를 타고 멕시코로 떠났고 다시 쿠바로 향한 사람들. 애니깽 농장에서의 고된 노동으로 변질된 삶. 그리고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그들의 조국이 있다. 생각해보면 선택이란 참 공평하다가도 공평하지 않은 것 같다. 처음엔 쉬웠지만 다시 그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 어느 것 보다 어렵다.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는 예상 밖이다. 하지만 예상 밖에 결과는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생각치 못한 결과가를 맞이 했기 때문에 새롭게 시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쿠바에 뿌리를 내렸다.

해변에서 춤을 추는 여인. 넘실대는 파도와 노을 아래에서 바람과 함께 춤을 추는 여인. 그 여인을 크바 태생이기 때문에 쿠바인이라고 혹은 한국계이기 때문에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여인은 시간과 바람의 흐름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누구도 쉽사리 이해할 수 없고 받아 들일 수 없는 역사를 몸소 표현하는 것이다. 춤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은 역사가 만들어 낸 새로운 사람들이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우리는 역사의 사람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같은 역사를 관통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단지 서로 다른 길을 왔을 분이다. 이제 와서 그들을 이해한다거나 하는 것은 어쩌면 오만한 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의 삶을? 단지 우리는 그들과 같이 조우하면서 공존하는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같은 역사 속에서 다른 길을 걸어간 사람들로서.(이두형)

<소속감, 그리고 사랑 -다르고 같음 안의 이야기.>
-다름의 이야기. 그리고 소속감 '코레아노' 영화 <시간의 춤>안의 사람들은 그렇게 불러주길 원했다. 중국인을 일컫는 '치노'라 부르면 코레아노라 정정한다고 말했다. 이점에서 뭔가 번뜩했다. 그건 '코리아'라 불리는 이 땅에 사는 나, 그리고 내 주위의 같은 나이대나 어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코리안 이기보다 그것을 벗어난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있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 정작 이 땅의 사람들이 아닌, 먼 타향의, 그것도 이 땅에 살아본적도 없는 이민 2세와 3세들이 한국인으로 불리길 원하는 것일까? 그 질문에 최근에 만난 현대 유목민 같은 지인이 외국으로 여행간 사람들의 예를들며 '소속감 때문일 꺼예요.' 라고 말했다. 소속감... 그것이 주는 편안함 때문일까. 확실히 어디에 속한다는 것은 편리하다. 실제로 도움이 안된다해도, 속했다는 그 자체로 불안이 좀 가신다. 아마도 다른 외모로 쿠바에서 소외받았고 그에 따라 불안을 감싸안아줄 줄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코레아노 라는 실체없는 한 글자를 놓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랑, 같음의 이야기 한 혁명가의 편지. 그리고 사랑의 이야기. 그의 편지는 가슴을 울리는 사랑의 감정을 전해주었다. 그 떨림 안에서 생각했다. '사랑은 어느 땅, 어느 누구의 것이라도 가슴 떨리는 일인건 같구나' 그 땅이여서, 그가 혁명가여서, 일부만 한국인의 피가 흘러서 조금은 다른 형태를 보이는 것 같지만, 결국 그 열정적임과 절실한 사랑의 마음은 같았다. 그래서일까, 가장 마음을 파고들고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이야기 였다. 그렇게 영화는 다름에서 시작해서 같음으로 끝나는 여정으로 보였다. (홍효석)




-마이크로 역사 (감동)를 보는 이.

<나는 지금 ‘나의 시간’에 살고 있을까?>

사실 나는 정말 쿠바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쿠바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과 그 나라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야구 결승전에서 만났다는 것. 그것이 내가 쿠바에 대해 기억하는 전부였다. 그래서 영화의 내레이션이 “당신은 이미 쿠바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면서 나열했던 것 중에 내가 알아들은 것이라곤 야구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나는 쿠바에 대해서 무지했다. 사실 쿠바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내가 단어로 자주 접하는 몇 개의 나라들 이외에는 거의 다른 나라에 대해서 무지하다. 무지할 뿐만 아니라 알려고 노력해본적도 없는데, 그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시공간이 나와는 전혀 무관한 것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 나와 ‘무관’하다는 것으로 금을 그어버리면 내가 그것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정당해지곤 한다. 무지를 정당화 하는 무관심이라고 하면 적당할 것 같은데, 알 ‘필요’ 없는 것을 왜 꼭 알아야 하냐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와 관련이 있는 것들만 신경 쓰기에도 버거운 상황에서 나와 무관한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치 혹은 낭비 같아서이다. 그렇게 나와의 관련성을 생각하며 외부로부터 오는 많은 것들을 차단하며 살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나서 ‘과연 내가 차단한 것이 무엇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한민족인 사람들이 쿠바라는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땅에서 고생했었는데, 몇 세대가 지난 지금은 그래도 화가, 발레리나 등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정도의 객관적인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은 그 곳에서 자신만의 생활양식을 가지고 ‘자신의 시간에 살고’ 있는데 난 지금 나의 시간에 살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사는 이 시간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쓰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년까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거쳐 가는, 거의 성인식과 동등한 위치에 놓여있는 ‘입시’를 위해 보낸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남들이 하는 대로 학원도 다니고 인강도 듣고, 독서실과 학교 자습실을 전전하면서 나의 10대를 보냈다. 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 입시 공부 이외의 것들을 차단해버렸다. 연예인들 이야기도, 요즘 나온 영화의 이야기도, 올림픽도, 촛불도 다 나와는 ‘무관’한 것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신경이 쓰여 공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기 때문이다. 입시라는 제도의 승자가 되기 위해 정작 나와 관련된 문제들, 내가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내가 모른 체 해버린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런 19년이 후회스러워서 올해는 ‘의미 있게’ 살아봐야겠다면서 이것저것 벌려놓은 활동들이 의무감으로 남아 나를 압박하는 지금, 나는 내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벌려놓은 활동들의 스케쥴을 과제와 함께 소화해내느라 허덕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은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이라고 말하는 호르헤 씨처럼 나도 내 시간을 살며 그 시간들을 행복하다고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의 시간도 죽지 않는다.”는 내레이션은 의무감으로 남아버린 내 시간들 때문에 우울해하고 있었던 나에게 “너와 무관하다며 차단했던 것들, 그것들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너의 시간이 죽어 버린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제 나는 살고 싶다. 내 시간을 살아내고 싶다. 춤(Dance)이 생명의 욕구라면, 지금 내 몸은 움직이기 시작할 때인 것이다. (선지수)

<열정적으로 춤추는 그들이 부럽다>

처음 영화가 시작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쿠바로 건너간 한인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네껜을 재배하는 아저씨를 보며 힘들게 사는구나 싶었고, 기타치며 노래하는 아저씨가 부인을 4명이나 두었다는 사실에 진실한 사랑을 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가 계속되면서 차츰 생각이 바뀌었다. 그들은 더 이상 연민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부딪치며 살아가는 멋진 사람들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이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부인이 많든 적든, 한 사람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얇은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깊은 감정을 가지고 소중히 대해줬다. 헤르니모 임이 작고한 후 3년간 어떤 기쁨도 느끼지 못한 채 그를 그리워하는 여인의 모습을 보자 나도 가슴이 아팠고 눈물을 흘렸다. 시를 쓰고, 편지를 쓰고, 그것들을 소중히 간직하며 추억하고. 한마디로 그들은 낭만적이었다. 어쩌면 한국에서 한국인 애인을 만나 대접받으며 살고 있는 우리보다도 더 애틋했다.

요즘 열심히 보고 있는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동주선생이 구미호에게 말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당신이 이렇게 죽는 것을 상대방은 모르고 잊어버릴 텐데 억울하지 않느냐고. 인간 남자와의 한 때의 사랑은 환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미호는 그렇지 않다고, 이렇게 사랑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그런 미호가 부러웠다. 내가 이 정도 사랑을 줄 테니 너도 그 만큼의 사랑을 달라는 만큼 이기적인 것은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서로에게 채무를 진 것도 아닌데 받은 만큼 돌려달라는 말이 우습게 들린다. 우린 이렇게 물물교환 하듯 사랑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만큼 문자 받았으니 나도 답장해야지 혹은 상대방이 전화 안 하니까 나도 안 할래,라는 식으로 말이다. 연인에게서 온 소중한 첫편지를 평생 간직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부끄러웠다.

그만큼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고 살아가는 그들이 빛나 보인다. 더 이상 그들을 1905년 제물포에서 떠난 한인의 후손이라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은 과거를 잊지 않지만 현재를 열정적으로 즐기며 사는 쿠바인이다. 그들의 시간은 멈춰있지 않는다. 쿠바인이 춤을 즐기듯이 현재의 시간의 흐름에 맞춰 춤추듯 살고 있다. 역사가 그들 안에 숨 쉬며 같이 산다. 그래, 시간이 죽지 않는 삶은 멋진 것이다.(권지영)

<인생은 Bm7 코드>

"그러니까 인생은 bm7코드이다. 이것은 어느 재즈뮤지션이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뱉은 말이다. 나는 이것을 최근까지도 제대로 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정말이지 인생은 bm7 코드이다. 이 코드의 특징은 코드안에 장조적인 화음구성과 단조적인 화음구성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는 데 있다. 영화 속에서 사람과 사람, 풍경과 풍경, 시간과 세대를 관통하며 실질적으로 서사를 풀어나가는 것은, 사실은 인물들의 독백이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쿠바의 음악이다. 슬픈듯 아련하면서도, 또 금새 흥겨움에 들썩 거리게 되는 쿠바의 음악. 쿠바의 음악은 정확하게 이러한 맥락과 맞닿아 있다.

목적 지향적인 삶. 구체적인 삶의 목적, 그리고 오직 예측 가능한 미래. 사람들이 현재를 저당잡혀 예측가능한 미래를 사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이곳에는 현재는 없고, 오로지 미래만 존재한다. '나'의 존재도 그리고 '당신'의 존재도, 현재를 통해 정체화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나, 혹은 너의, 더 정확히 말하면, 공무원, 회계사, 대기업 사원으로 정체화되는 것이다. 목적이 모든 것을 대체해버리고 황폐해진 이곳에서 그렇기 때문에 쿠바에서의 현재를 살고 있는 그들이 더욱 더 빛이 나는 것이다.

이것을 한국 이민자들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영화를 지극히 편협하게 이해한 것이다. 그것은 오직 부분적으로만 긍정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이 영화는 순간과 순간에 반응하며 현재와 과거 그리고 동시에 미래와 조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누구와 어떻게 사랑을 나누었는지,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 고민들, 껴안고 있는 외로움들이 쿠바에서 한인들로서의 삶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다. 이 영화는 뜨거워진 태양, 대지를 식히는 바람, 해변의 모래알들에 관한 영화다. 길 가에 낡은 차의 움직임, 머리를 흩날리는 바람, 올리브나무 곁의 백장미, 이 모든 것이 시간이고, 인생이고, 삶이라는 것이 정말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쿠바에서 만난 그들은 그렇게 살고 있다. 쿠바가 사라트르가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평하던 체 게바라의 혁명의 고향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제 우리도 조용한 혁명을 시작할 때이다. 온전한 나의 욕망을 가지는 것으로부터 이 모든 것은 시작될 것이다. 자, 이제 다 함께 시간의 춤을 추자. (이미리)

조철영 10/09/26 12:39
인생은 bm7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너무나 와닿았어요. bm7이후의 코드진행으로 장조와 단조의 맥락이 결정되잖아요. 참 다행입니다. 아직 장조가 될 가능성이 있네요. 잘 봤습니당~
양주연 10/09/26 16:31
현재를 저당잡혀 예측가능한 미래를 산다는 말이 정말 지금을 딱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아요. 현재를 저당잡히지 말아요 너도 나도..
선지수 10/09/26 17:48
'온전한 나의 욕망을 가지는 것으로부터 이 모든 것은 시작될 것이다.' 이 문장 정말 좋네요. 진짜 뭘 하고 싶은지 몰라서 의욕이 샘솟지 않아 슬퍼하는 순간이 많았는데..
한주연 10/09/26 19:29
너무 공감가는 글이네요. 이 영화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거, 쿠바 음악이라고, 저도 느꼈어요. 여전히 마음에 가장 선명히 남아있는 영화에 대한 이미지는 그 선율들이네요.

 

 

2010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