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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호

johancafe 2010.05.13 17:06 조회수 : 3119

2007년 1월 17일 조한의 거실 회의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이런 책을 읽을까?
이 질문은 책의 기본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문제.
누가 읽을지 생각하지 않고 책을 쓰는 것만큼
무모한 일이 없을 정도로 느껴지는 '도서 시장'의 황폐화.
아무리 쉽고 재미난 인문학 서적이라도 1쇄를 다 팔기가 힘들단다.
탈식민주의와 혼종성, inbetweeness 등의 주제들을
쉬운 여행기로 써서 미디어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베스트 셀러로 등극했던 서경식의 책들도
처음엔 날개 돋힌 듯 팔리다가 300-400부에서 판매가 멈추었단다.
즉, 인문학의 대중서들도 500부를 팔기에는 버거운 시점.

물론 책을 많이 파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단 100부가 팔려도 누가 읽고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의 문제.
10년전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국어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읽은
글읽기와 삶읽기 1권이 생각났다.
나보다 나이도 한 참 많은, 나름 '치열'했던 시대의 선배들이 고스란히 있는 책.
피상적이고 괴리된 글읽기가 아니라
삶과 글을 밀착 시켜 지식을 생산해야 하고 이해해야한다는 그 메세지만으로도,
제 아무리 그 어렵다는 푸코가 고딩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더라 할지라도
인문사회과학을 꿈꾸는 나에게 충분히 '교과서'가 되어주었다.
사실 학부 때만 하더라도 매해 겨울 방학에는 그 책을 다시 한번 읽었었다.
이렇듯, 많이 팔리는 것보다도 누가 읽고 누구와 소통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책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본격적 작업에 들어가기 전 꼭 점검해봐야할 문제.

알고 있듯 지시문 수업은 2006년 교양 과목 파일럿 강좌였다.
교양 과목들의 수준을 향상시키고 더 낳은 인재 양성?? 하기 위해서라는 목표를
갖고 있었지만, 점차 '학습'에 대한 열의가 사라지고
'생존'을 위한 기술만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점점 대학을 차지하면서
알게모르게 목도되는 '강의실 붕괴'라는 시점에서 나름대로 야심차고 소박하게
진행했던 프로젝트였다.

가을 학기가 시작하기 전 파일럿 강좌들의 성과가 어떠했는지
각 강사들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워크샵이 있었다.
책임자였던 박순영 선생님이 가장 액티브했던 수업의 조교로서
한 학기동안 느껴왔던 '요즘 학생들'에 대한 느낌들을 좀 말해보라고 하여
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막 박사를 받고 온 선생님들이 그간 자신들의 수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교양 수업 하기가 점차 버거워지면서 수업에서 '이벤트'를 강조할 수밖에 없어서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벤트식 수업을 하였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꽤 많이 오고 갔었다.
그나마 이벤트라도 하면 학생들의 '참여'는 높아지기 때문에
강사로서는 다소 안도가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충 공통적으로 회의를 갖고 있는 부분들은
'아이들이 너무 똑똑하면서 너무 멍청해졌다'라는 아이러니컬한 답변들.
글을 써오라고 하면 참 잘들 써오는데
내용이 참 이상한 경우도 많고, 글을 쓰는 스타일도 한결 같다...
혹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보이는 리액션들을 도저히 이해 못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예전과 대조적으로 (일류) 대학생들이 자신을 '지식인'으로 포지셔닝하는 걸 거부하는 상황.

세대는 늘 바뀌고 그간의 차이들과 간극은 벌어지기 마련이지만,
한동안 학교를 떠나고 박사에 몰두 했던 사람들에게는
'요즘 아이들'이란 대략 난감의 시츄에이션 그 자체였다.

비싼 밥 얻어 먹고 몇 가지 정보 아닌 정보를 준 것은...
대략 두 가지.
논술 세대와 미니 홈피의 시대라는 화두였다.
이전 세대들이 친구들끼리 비밀 편지를 쓰는 것만으로 학창 시절의 글쓰기를
마친 것에 비하면 요즘 적어도 '연대'에 들어올 수 있는 상위권 학생들은
적어도 수능이 끝나면 무조건 논술에 올인해야하는 상태가 왔다.
엄청난 기획을 하는 '매니저 엄마'를 둔 경우에는 초등학생 때부터 논술을
시작했으니 글을 쓰는 것에서 능수능란해진 것은 사실이고
교수가 원하는 답변과 듣고 싶은 답변은 모조리 '전형적'으로
술술 써내려갈 정도로 훈련이 되었다.
특히나 한국식 '토론'방식에는 더더욱이 익숙해져있다.
한국식 토론 방식의 대표적인 현장으로 나는 종종
전교조 교사들의 시사 사건에 맞춘 토론을 이야기 하는데
특정한 주제에 모두 답을 갖고 그걸 발언하면 정답인 토론.
판을 벌린 사람들이 먹기 좋게 포장해주는 것을 잘 하면 되는 토론이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는 분위기.
예를 들어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어떤 전교조 교사가 수행평가로
FTA와 관련해서 토론을 시키니 거의 대부분의 학생이
'반대'에 입장을 정했다고 한다.
(교생 실습 나갔을 때 이런 광경들을 참으로 많이 보았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은 너무나도 똑똑해졌다.
적어도 교수와의 관점과 입장 차이로 쌈박질하는 일은 더이상 벌어나지 않고
글도 깔끔하니 잘들 써낸다.
2000년 막 대학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수업에서 종종 많은 싸움이 있었다.
물론 포스트 운동권 세대이긴 하지만 자기 입장을 대단히 거칠게 드러내는
사람들이 그나마 있었던 시점이었기도 하다.
지금은 은퇴한 송복 선생님, 그리고 유석춘 선생님의 수업에는
한달에 한 번 꼴로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었다.
조한 수업에서도 어떤 학생들은 부루주아식 문화 수업이라고 폄훼하기도 했고
운동권이 절대 들어서는 안될 수업으로 몰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2005년즘부터는 수세에 몰린 운동권(?), 체질이 바뀐 운동권들이
점차 숨통을 트기 위해 조한의 수업에 조금씩 찾아오기 시작한 것 같다.
어제 밤에 보니 다들 학교에서 한 자리씩(?)하는 친구들이라서 속으로는 깜짝 놀랐다.
아... 참 많이 바뀌긴 했구나.
여튼 처세에 능한 대학생, 언어를 만들기 부담스러워 하는 대학생,
글읽기와 글쓰기가 너무 쉽고 깔끔하게 되어버린 대학생들이 점차 캠퍼스를 차지하게 된다.
B 학점을 A학점으로 올리기 위해 엄마아빠까지 오셔서 교수실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광경도 연출되는 그런 최첨단 취업 준비생의 시대이다.

두번째로 미니홈피의 시대.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정말로 능하긴 하지만
그 드러냄이 사실은 자폐적인 경우가 많다.
앞사람이 무슨말을 하든 개의치 않고 셀카로 셔터를 눌러대는 그 모습
약간 눈을 부라리고 뜨고 입술도 살짝 옆으로 벌리면서
피부의 잡티가 없는 그런 사진만을 미니홈피에 올리고
그게 자신이라고 믿는 그런 상황.
하지만 무엇보다도 신경쓰이는 것은 방문자수와 조회수 그리고 댓글이다.
와이섹을 놀고 여러분들 이런저런 이야기도 토론도 해보아요 라고 했더니
아무도 오지 않고 글도 안쓰더라며 어떻게 아이들이 이럴 수 있냐고 하소연 하는 강사에게
예전에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이, 내가 쓴 글의 무식함이 탄로나는 것이 수치스러워서
글을 쓰는 게 어려웠다면
요즘에는 내가 쓴 글이 조회수가 낫도 댓글도 없고 심지어는 그런 주제에
재미도 없으면, 자기가 살아온 삶의 궤적까지 후회가 막급해지면서
내가 왜 살고 있는가하는 존재론적 회의까지 들게 되는 상황이라고 얘기했었다.
'악플보다 무서운 무플'이라는 말이 널리 퍼지고
자신의 글의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계속 클릭해보고,
또한 자신의 글이 너무 조회수가 높거나 논쟁거리가 되면
그게 두려워서 삭제도 서슴지 않는 그런 시점이기에
사이버를 단순히 보조 장치로 생각하기 보다는
그 또한 변화된 대학의 체질을 읽고 다시 판을 기획해야하는 공간으로 변했다는 말,

어쨌든 이 두가지를 중심으로 언급했더니
그곳에 있던 강사들이 이런 저런 자신 수업의 경험담을 이야기 해준다.
특히 '와이섹'은 학생이나 강사들에게 적지않은 심적 부담.
(조한은 와이섹이 탄생하기 전부터 사이버 수업을 진행한 사람으로 유명했고,
와이섹이 만들어진 다음부터는 전무후무한 학생들의 와이섹 참여율을 보여줌으로써
와이섹 업계에선 나름 '스타'이다 ㅎㅎ)

어쨌든 이런 맥락에서 독자층을 좀더 구체적으로 볼 때 교양 과목이나
인문사회과학 수업을 진행함에 있어 어려움
-즉 학생들의 변화에 당황해 하거나, 좀더 창의적인 수업 진행 방식을 하고 싶으나
계속 해왔던 것은 지식 전달밖에 할 수 없었던-
을 겪고 있는, 글읽기와 삶읽기를 읽은 시대의 대학생들이
박사를 막 받고 나서 강의실에 돌아와서 당황해하고 있는 시점에서
시대를 이해하고 세대를 이해하며 강의실을 기획할 수 있는
'교과서'를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교수가 할 수 있는 대학에서의 최고의 일은
근대에는 '예측을 할 수 있고 선두적인 지식을 잘 전달'해 주는 것이었다면
후기근대에는 '기본적인 소통 조차 힘들어지고 곳곳의 삶의 공동체들과 준거집단이
급속히 파괴되는 과정 속에서 젊은 대학 시절에 함께 성장을 지켜봐주고
다른 길을 가도 서로 신뢰하고 말걸기를 할 수 있는 동료'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
그리고 그 사례로 우리 수업이 어떠한 방식으로
자기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언어를 생산하고
일시적으로 어떠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는지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이 할 일이 아닐까 싶었다.

2000년 대학에 첫 발을 들여 놓고 들은 첫 수업은 조한의 이 수업이었다.
2000년에는 학부제보다 더 심한 '광역화'를 연대가 처음으로 시도했고
온갖 새로운 교양 과목들을 만들고 학교에서는 나름 새로운 시도를 했었다.
강사들에게 대부분 맡겼던 교양과 1학년 수업에
노련한 교수들은 전면배치(?) 했었는데
첫번째로 열린, 그 수업이 바로 이 지구촌 시대의 문화인류학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 나는 인도에 관심이 있고 10명의 친구들이 함께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백양로에서 온갖 축제를 벌여보는 기획을 했었는데
모두는 아니지만 절반 이상의 친구들은 각기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아직도 모여서 서로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재미나게 사는 친구들로 남아 있다.

7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도 그런 친구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
그것이 취업 준비 공장이 되어가고 있는 대학에서 숨통을 틀 수 있는 공간으로
점차 확고히 자리 잡혀 가는 것을 보면서,
곳곳에 그 숨통의 씨앗을 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작업이 될 것 같다.

최근 나는 주로 '코메디'였는데
(내 친구들은 이제 코메디가 아니면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세상에 피곤해졌다)
어제 오랜만에 만나는 진지함의 눈빛에 적잖이 감동을 받았다.
무언가 정말로 신나는 일이 벌어지는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긴 글을 쓰는 건 또 얼마만인가! 나중에 너무 오바했다는 느낌에 분명 후회할 것 같지만 ㅎㅎㅎ)

2007-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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