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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johancafe 2010.05.13 17:20 조회수 : 3134

작업 중- 부록으로?

신자유주의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읽기 1: 바로 여기 교실에서


책 머리에
감사의 글

여는 글
탈식민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문화의 시대’에서 ‘노동의 시대’로.
강의실 붕괴: ‘인문학의 죽음’을 이야기 하는 시대의 대학
책의 짜임새와 만드는 과정

1. 탈식민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문화의 시대’에서 ‘노동의 시대’로.

최근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들이 오가고 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시절을 두고 보수진영에서 나오는 표현인데, 시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어서 흥미롭다. 사실상 1980년대 대학 중심으로 일었던 치열한 반군부 독재 타도 운동의 결과, 문민 정부가 들어섰고, 1990년대는 아주 문화적, 제도적 개혁이 시도된 시대였다. 개혁이 지나치다 못해 ‘개혁 피로증’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최근에는 “바꾸어봤자 별 수 없더라”는 식으로 각자 자기 몫챙기기에 바쁜 시대로 접어드는 듯 하다. 조선왕조가 ‘왕권’과 ‘신권’이 번갈아 정권을 잡으며 장기지속해온 왕조라고 하는데, 현대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간 개혁적 마인드를 가진 정치적 관료가 힘을 가졌었다면, 지금은 체제 유지적인 관료제 자체가 힘을 가지려 한다고 한다. 고도 경쟁사회로 진행하면서 점점 더 남을 챙길 여유가 없어지고 있는데, 관료체제가 장기적 전망 없이 굴러간다면 세상살이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은 최근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의 특수한 상황만은 아니다. 속도의 차이가 조금 날 뿐, 지구상의 온 나라들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가운데 몸살을 앓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란 사전적으로 말하면 “ ” 시대를 말한다. 그것은 글로벌 자본의 주도하는 방향으로 지구촌 주민 모두의 삶이 급격히 조정되면서 모두가 당혹스러워하게 되고, 모두의 삶이 아주 팍팍해지는 시대를 말한다. 그것은 “다수의 사람들이 거대한 기계의 한 부속으로 살게 되거나 그 기계의 일부가 되지 못할 때는 가차없이 폐기처분 되는 시대‘이다. 아니, 엄밀하게는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소모품’이 되거나 ‘체제바깥’ 사람이 되어버리는 시대이다. ‘의식 있는 정치지도자’들도 쉽게 어찌하기 힘들 정도로 자본의 자체 동력이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결단을 내리기에 상황은 너무 복잡하고, 그 와중에 잘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아주 쉽게 결단을 내리면서 대통령과 수상들이 ‘등극’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도 이런 시대를 절묘하게 보여주면서 시대의 성찰을 촉구한다. 인문사회과학 강의실에서만 심오한 시대성찰의 메시지가 주어지는 것이 더 이상 아닌 것이다. 엄밀하게 보면 이 시대의 ‘지식인들’은 영화 감독과 연예인들이다. 찰리 차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근대의 고전이라면 이제 후기 근대의 고전들이 영화를 통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금 시대를 심층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그 영화들은 작은 지역이 무대이지만, 실은 전 세계가 공동운명체로 엮어 있거나 작은 지역의 문제가 다른 지역의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마틴 스콜시지의 [로드 오브 더 워](2005?)에서 무기상인 주인공 (니콜라스 세이지 분)은 “세상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지.”라고 말하면서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양식있는 정치가도 지식인도 아닌 돈을 버는 사람들임을 강조한다. (규호 최근에 본 영화 추가)
‘지구 온난화’가 가져올 전지구적 재앙을 그린 전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알 고어 출연의 [불편한 진실](2006?)의 감독, 지구 온난화와 대기 오염 문제를 풀 수 있는 전기자동차 개발 프로젝트의 좌절의 과정을 GM 자동차 회사의 배후 이야기로 담아낸 [누가 전기차를 죽였는가? who killed the electric car?](2005?)의 크리스 페인 Chris Paine 감독도 이 시대를 어떤 책보다 잘 그려내고 있는 지식인일 것이다.

시대적 지식인인 마가렛 에트우드 원작의 [핸드 메이즈 이야기]는 환경오염으로 더 이상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이 늘어난 암울한 사회를 그린 작품인데 스필버그 감독(확인)이 대중적 영화로 만들어냈다. 캘리포니아에 군부 쿠데타로 만들어진 그 사회는 엄격한 신분제를 바탕으로한 고도관리 사회인데, 우리에게는 더 이상 그런 모습이 공상소설속의 세상은 아니다. 앤드류 니콜 감독은 거대한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소수 정예 만능인간이 주도하는 사회를 그려내주었다. 극소수 ‘선민’과 다수의 ‘평민’에 의해 유지되는 20대 80, 또는 2: 98의 양극화 시대를 그려낸 [가타카](1997)가 그것이다. 마약을 제배하는 사람과 약물 중독자들을 검거하는 집단이 실은 한 통속임을 드러내는 A Scanner Darkly (Keanu Reeves를 포함한 배우들이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것으로 유명해진 영화다)도 최근에 나온 암울한 시대상을 천재적으로 그려낸 .... 감독의 작품이다. 헐리우드의 명 배우와 감독들은 ‘시대의 지식인’이 되려고 앞 다투어 대작의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 ‘지식인 감독’들은 실은 세계 각 국에서 몰려든 인재들이다.

‘위험사회’를 드러내면서, 개개인의 성찰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직접 담아내는 ‘지식인’ 감독들의 이름도 열거해보자. 하루 아침에 어처구니 일을 당한 중상층 백인 주인공이 멕시칸 하녀의 도움을 받으며 기운을 차리고, 서로를 돌보는 관계와 상생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그런 주제이다. [크레쉬](2004)를 만든 폴 해기스 감독, 브레드 피트가 전화를 받으며 우는 장면이 인상적인 [바벨]의 골잘레스 이나리투 감독 (2007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종말적 시대를 매춘부와 떠내기의 감수성으로 그려낸 [라스 베가스를 떠나며]의 감독, 모성을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피폐함 속에서도 이어지는 측은지심을 그린 [중앙역](1998)의 브라질 월터 셀러스 감독, 꿈을 이루려 최선을 다하다 죽는 삶을 아름답게 그린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의 클린드 이스트우드 감독, 어처구니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이들이 모여사는 마을의 딜렘마를 그린 [빌리지](2004)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서로를 돌보는 작은 마을 이면의 엄청난 이기심과 폭력의 구조를 그린 [도그 빌](2003)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 등을 나는 이 시대의 지식인이라 생각한다. 경기도 화성의 살인 사건을 그려낸 [살인의 추억]이나 2006년 초에 대박을 터트린 [괴물]을 만들어낸 봉준호감독이 어쩌면 이제 세계적인 지식인 반열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예상치 않은 재앙이 수시로 일어나는 시대에 ‘유연하기에’ 살아남은 ‘보통사람의 카리스마’를 그린 [위대한 레보스키](1998)와 [파고](1997)의 조엘 코헨 감독 , [지구를 지켜라// 보충] 의 감독 역시 시대의 지식인들이다.

일본에서 나온 동성애자 아버지의 양노원을 찾아가서 화해하는 [매종 드 히미꼬](2005)의 이누도 잇신 감독이나, 핏줄이 섞이지 않은 이들과 가족을 이루어사는 [가족의 탄생](2006)을 만들어낸 김태용 감독, 경계에 선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해 좀 다른 감수성을 가지길 촉구하는 [천하장사 마돈나](2006)의 이해영, 이해준 감독도 대단한 지식인들이다.

대신 서점가를 가보면 장사꾼들이 가득하다. 베스트 셀러 코너를 채우고 있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노하우를 적은 ‘자기 계발서’와 성공서적 코너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책 카버에 “90%가 하류로 전락한다.” “ ”등의 제목이 붙은 ‘협박성 서적’ (이름이 따로 있던 것 같은데)들이 쌓여 있다. 서동진은 이런 신자유주의 시장이 사람들의 불안을 이용해 만든 거대한 시장과 자기 계발서에 대해... (보충)


이제 대학생들은 나라는 위해 목숨을 걸 일도 없고, 영화를 통해 시대를 배운다. 이제 그들이 건져야 할 것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전 지구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 한몸 챙기기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들은 글읽기를 통해 삶읽기를 하지 않고 ‘포털사이트 읽기’를 통해 시대를 읽고, 코미디 프로 ‘우찾사’를 보면서 시대를 만든다. 매우 암울한 시대이지만 이들은 그렇게 암울해하지 않은 채 지낼 방도를 알고 있기도 하다. 인터넷 세상을 뒤지면서 바쁘게 사는 것, 인터넷 게임에 몰두하는 것, 끼리끼리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시시덕거리는 것’ 등이다.

며칠 상간에 나온 신문기사 제목들을 살펴보자. “청춘들 취업난 그늘...직업 걱정 4년새 4배” “20대 대졸 실업 작년 27% 급증...‘괜찮은 일자리’ 부족탓” “이별 도우미...키스 대행,...알바를 보면 세상사 한눈에” “2006년 아르바이트의 현주소” “‘이태백’ (이십대 태반이 백수)으로도 모자라 ‘이구백’ (이십대 90%가 백수)” “‘흔들리는 직장’에서 얄팍한 월급으로 버티면서도 문화생활을 포기하지 않는 한국판 ‘1000유로 (약 121만원) 세대’의 등장.” 등의 기사 제목만 보아도 청년실업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 알 수 있다.

청년 실업이 주는 암울함은 한국사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일본도 중국도 비상이라는 보도가 속출하고 있다. “중국, 올 대졸자 415만명...60% 백수. 중국도 청년실업 대란” “베이징대, 칭화대 나와도 ‘바늘 구멍’ 경쟁”, “차라리 결혼으로 우회,여자는 곡선 취업” “일, 깊어가는 양극화...도쿄대생도 ‘막막’” “니트나 프리터가 될 지도 모르겠다”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29-39세 ‘프리타족’ 공무원 특채한다.”는 일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리고 가장 잘 나간다는 고소득층의 삶에 이들이 그렇게 선호할 수 있는 삶이 아니다.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잘나가는 사람들의 불쌍한 인생‘은 삶의 생기를 앗아가는 고도 경쟁 자본주의 시대의 대학생들은 여러모로 힘들다. 여학생들은 2006년 겨울에 상영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면서 극도의 소비사회와 살아남기 위한 화려한 패션계의 무대뒤를 보면서 씁쓸해하였다. 같은 시점에 나온 [미녀는 괴로워]나 [올드 미스 다이어리] 역시 외모를 가꾸고 브랜드 옷을 사입어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의 씁쓸함을 그린 영화들이다.

부모 세대가 ‘신분 상승’을 꾀한 세대라면, 지금 대학생들은 그 신분을 유지하기는 커녕 ‘생존’자체를 유지할 수 있을 지 몰라 불안을 감추지 못한다. 1990년대 초반에 대학생들이 [회사가면 죽는다][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라는 책들을 읽었지만, 이제 대학생들은 “회사만 가면” 소원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제멋대로’ 할 생각이 없다. 후다까미 노우끼의 [일하지 않는 사람들,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읽으면서 어떻게 만년 백수, 니트 족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를 궁리한다. 그러나 이미 많은 청년들은 백수이고 인터넷 게임 중독으로 그나마 하루 하루를 ‘즐겁게’ 살고 있다.

그마나 ‘잘 나가는’ 편의 대학생들은 영어 배우랴 학점 관리하랴, 빠뜻한 스케줄 관리만이 아니라 ‘표정 관리’와 ‘감정 관리’까지 하면서 조심스럽게 살아가야 한다. 그 중에서도 시간을 쪼개서 처세술을 가르치는 서적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스무살도 채 안 된 나이에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이 체제 밖으로 밀려나 버릴 수 있다는 점을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발전’과 ‘진보’와는 거리가 먼 이들에게 ‘지도자’라거나 ‘지식인’이라는 단어는 당연 생소하고 어색할 수밖에 없는 단어이다. “행복은 돈의 액수, 그리고 돈의 액수는 성적순”인 시대,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시대에,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고, 온 가족과 친지들의 축복속에 결혼을 하고, 두 명의 아이를 낳아 “까만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사는 것이 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일찌감히 인정해야 하는 이들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 카드 빚에 쪼들리는 가난한 청년세대를 그린 한국영화 [마이제너레이션]과 백수가 조폭을 우연히 물리치게 되는 [라이터를 켜라], 그리고 프랑스 빈민가 백수의 하릴 없는 삶을 그린 암울한 영화 [캐미컬 제너레이션]이나 희망 없이 사는 영국의 청년들을 그린 [트레인 스포팅]과 같은 영화는 조만간 ‘고전’의 반열에 설 영화들이 아닐까 싶다.

‘정치 경제’의 시대가 가고 이른바 ‘문화의 시대’가 오는 줄 알았는데 오기도 전에 가도 더욱 암울해진 ‘노동의 시대’가 온 것이다. 국제통화기금 은행에 의해 뜻밖에 온 충격 때문이었을까? 그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갈수록 투기성이 짙어지는 글로벌 자본주의체제 안에 포섭된 한국사회는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흘러가게 되어있었던 것이며, 이렇게 가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던 만큼 더욱 충격과 패닉 속에 허우적 대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에서의 전쟁, 실업의 공포, 배제와 탈락의 공포 속에서 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 하는 ‘체제 순응의 시대’가 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간 문화의 정치학에 공을 들였던 서양의 지식인 학자들은 실제로는 좀 더 직접적으로 현실 정치의 장에 개입했어야 했었다고 후회를 하면서 적나라한 정치권력과 이권 게임을 다시 분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전 할머니들은 “점점 더 좋은 세상이 오는데 너희는 좋겠다“고 하시면서 좋은 세상을 한껏 살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것을 아쉬워하셨다. 그러나 지금 할머니들은 점점 더 혼탁하고 살기 어려워지는 세상을 보면서 손주들 보기 미안해하신다. ‘불확실성의 시대’ ‘위험 사회’ ‘고용 없는 성장’ ‘고실업 불안정 고용’ ‘중산층의 붕괴’ ‘90%가 하류로 전락하는 시대’ 등 온갖 시대를 규정하는 단어가 우울하기만 한 시대의 아이들, 그들이 읽어내는 자신의 시대는 어떤 것이며 그들은 그것을 어떤 언어로 표현하고 있을까?

이 시대에 존경을 받는 지식인인 신영복 선생님은 최근 한 인터넷 신문사 창간 기념 강연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삶속에서 가장 깊숙이 끌어들인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삶 읽기를 하는 사람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강조하고 계신 것이다. 다 아는 진리를 말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분의 말이 통하는 것은 자연을 통해 말하는 메타포의 힘, 그리고 그가 감옥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경험에서 오는 것일 것이다. 지식과 지혜의 생산에 참여하는 것, 자신의 삶을 시대의 삶과 연결시키는 것, 스스로 지식인라고 부르는 것이 쑥스럽고 부담스러운 시대임은 분명한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에는 사회와 자신의 삶을 연결시키는 지혜로운 사람들은 계속 있을 것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생존해온 가장 원천적인 능력이 바로 그 지적 공동체 활동이었으므로... 대학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여전히 [글 읽기와 삶 읽기]를 하면서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 책에서 우리는 바로 그런 일을 지속하는 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수업을 들은 최용락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학생들은 어딘가에 설 것을 끊임없이 요구 받으면서 동시에 실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안정도 정착도 없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남은 것은 휴식과 유목 뿐, 피곤하고 불안하다“고 장혜영 (해멍)은 말한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부생들의 통찰력을 탁월하다. 이 통찰력이 번떡이는 이들은 언젠가 책을 써내려 하지 않을까?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장이다. 우리 수업에서 [라디오 스타] (2006, 이준익 감독)를 본 것은 바로 라디오 방송국이 자기 동네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는 것을 보기 위해서 였다. 자, 이제 그런 일들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야 하는 ‘대학’, 다양한 학습들이 만들어지는 곳, 대학으로 가보자.

2. 강의실 붕괴, 인문학의 죽음을 이야기 하는 시대의 대학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 시리즈를 낸 후 나는 스탠포드 대학으로 안식년을 떠났었다. 돌아와 보니 고등학교를 튀쳐나오는 새로운 형태의 학업중퇴자들이 생겨서 큰일이라고들 했다. 그들은 기존제도의 ‘탈락생’이 아니라, 자발적 ‘탈학교생’들이었고, 좀 다른 학습과 좀 다른 세상을 원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주민이라고 보고 그들을 위한 ‘후기 근대적 학습’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이 연구로 자연스럽게 청소년 정책에 개입하게 되면서 급기야는 ‘하고 싶은 일 하기 싫은 일도 할래요“라는 모토를 가진 서울시 소속의 청소년 센터 (일명 하자센터)를 운영하게 되었고, 두 개의 작은 대안학교 교장 노릇을 하기도 했다. 2000대 중반, 아이들은 더 이상 학교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하지 않으며, ‘서태지과’에 속하는 아이들이 갈 대안학교들도 우리 주변에는 어느 정도 생겨났다. 대안학교에 대한 관심도 아주 많아졌다. 또 하나의 현장 연구가 이제는 끝나가고 있었다. 다시 안식년을 떠났고, 이번에는 미국과 일본 등지를 다니며 글로벌 시대에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
2006년 봄,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내가 몸담은 대학을 가까이 관찰하기 시작했다. 인류학 동료인 정병호 교수가 ‘강의실 붕괴’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학생들과 소통을 제대로 하는 괜찮은 강의를 하는 것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요즘 교실 분위기가 아주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자기 경험 쓰기’ 숙제를 내주었는데 스토킹하는 줄 알고 쓰지 않겠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강의실에서 집중을 하지 않고 딴짓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가장 충격을 먹은 것은, 학기말에 하는 종강파티는 모두가 모여서 팀별 발표를 하고 다함께 어우려져서 술도 마시는 아주 전통 있는 쫑파티인데, 그 파티에 이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제 시간에는 아무도 안 나타나지 않다가 30분 후에 두 명, 한 시간 후에 네 명 정도만 나타났는데, 소수정예나마 함께 잘 놀자고 근처 바닷가에 데리고 가려고 했더니 여학생 두 명이 시간이 없다고 또 빠지더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경험이 너무 당혹스러워서 교수 수양회에 가서도 ‘간증’을 했다고 했다.

큰 기대와 희망을 품은 청년들이 호기심에 찬 눈으로 강의실을 메우고 있는 것을 보는 설레임, 아마도 이것이 교수들이 가진 삶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일 것인데, 그의 말대로 교실이 그렇게 변하고 만다면 구태여 교수노릇을 계속하게 될까... 이런 염려하는 말을 듣고 대학원생 수업 조교는 대학이 학부제를 시행하면서 아이들을 다 망쳤다고 했다. 원하는 학과에 가기 위해 학점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대학생이 아니라 ‘고 4’이고 학점 관리에 눈이 멀어 인문학을 제대로 배울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내가 해오던 방식의 수업은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를 주었다. 그리고 보니 일학년 학생이 첫 시간에 학점을 매기는 것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거나 그런 확실한 기준이 잘 안 보여서 불안하다고 수강변경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학부제 되면서 선후배 관계도 소원해져서 사실상 대학 캠퍼스는 10년전 같이 않게 썰렁해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취업을 위한 고시나 영어공부에 관한 정보, 취업이 잘 되는 학과에 들어가거나 교환학생으로 가기 위한 학점 관리, 돈을 벌기위한 아르바이트에다가 점점 외로와져서 연애는 필수가 되어가고 있으니 강의실에서 제대로 집중 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교실붕괴한 고등학교에 학생들이 가는 것이 친구를 만나고 점심 먹으러 간다고 하더니, 학점 챙기고, 무선랜 장치가 된 캠퍼스 수업 시간에 인터넷 검색을 하고 문자 메시지 보내고, 인맥 쌓고 학위증을 따러 오는 대학에 오는 대학생들이 생겨나고 있는 모양이다. ‘배움’에 대한 열의는 사라지고 ‘생존’을 위한 기술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이 현실이라면 ‘강의실 붕괴’는 불가피한 현상일 것이다.

학생들은 파워포인트 수업에 익숙해져가고 그 거대한 교실에서 각자 파워포인트를 보면서, 동시에 자기가 할 숙제 등을 한다. 전공 수업은 어차피 재미있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학점을 잘 따기만 하면 되니까 조용하다. 그러나 교양학부 수업을 갈수록 하기 힘들어진다고 한다. 특히 시간강사의 수업에는 예의없는 학생들이 많고, 학생들은 이벤트식 강의나 3분마다 학생들을 웃겨주는 교수의 강의에 몰린다고 하였다. 게다가 논술세대인 이 학생들은 비싼 논술 과외를 통해 그 어려운 들뢰즈와 푸코까지 다 읽어서 지적 호기심도 별로 없다. 자신의 시대와 삶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을 하다보면 자신의 계획이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인문학 수업이 재미있어지려는 것을 애써 제어한다는 영리하고 솔직한 학생을 만난 적도 있다.

무엇보다도 강의실 붕괴가 불가피한 것은 이들 세대가 계몽주의 언어에 질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진리는 모두 이미 말해졌고, 문제가 무엇인지도 다들 알고 있다. 모든 새로운 제도들은 다 만들어보았고 다 있다. 문제는 사람이고 실행주체이다. 알지만 풀지 못하는, 그래서 미래가 암담한 시대에 지식인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들 묻는다.]

이들 중에 책을 통해 삶을 배운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논술을 위해 많은 책을 읽긴 했지만 ‘다이제스트본’을 읽으며, 독해법을 기술적으로 익히며 읽어냈을 것이다. 그래서 어려운 맑스와 푸코의 저서를 소화하려 무진 애를 썼던 것 같은 87학번 선배들의 글을 읽으면 우직해서 귀엽다고까지 하였다. 논술세대인 이들은 선배들에 비해 글을 쉽게 쓰는 편이다. 적어도 쪽글을 받아보면 자기 표현을 잘 하고 있어서 ‘겉도는 글‘을 쓰는 것 같지도 않고, ’헛도는 삶‘을 사는 것 같지도 않다. 영상세대이자 싸이월드 홈페이지 세대인 이들은 짧은 글과 영상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들을 위해서는 아주 다른 교양기초 수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실상 대학에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열심히 노력해왔다. 때로 그것이 부작용을 더 많이 일으키는 듯 하지만, 대학은 대학 나름대로 학부생을 위한 기초 교과를 전면 개편하고 기초교육을 강화하고자 노력해왔다. 연세대학교에서는 년도부터 ‘학부대학’을 신설하고 신입생들을 돌보는 ‘학부제 전담 교수제’를 마련 했다. 학부전담교수(*학부 강의교수와 상담교수? 확인 할 것) 란 학부제 이전에 선배들이 해 준 상담과 자문 역할도 해주는 분들로서 3년 계약직 트렉이다. 물론 학부제가 없어진다고 다시 선배들이 그 역할을 해주는 시대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은 거대하고 복잡해진 반면, 선배들은 점점 더 바쁘고 자기 앞가림하기도 힘들어져서 후배들을 챙기는 시대는 지나버렸다. 대학에 와서 수강신청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학생들이 생겨서 상담과 자문을 해줄 담임제도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나 외국에서도 대학생이 대량생산되는 시점에 도달하면 일어나는 보편적인 문제현상이기도 하다.

연세대 학부대학에서는 사이버 강의실을 적극 권유하면서 사이버 공간을 통한 수업 활성화를파일럿 강좌’ 제도를 통해 시범 모델 수업을 개발할 것을 장려했다. 교수들간의 상호 정보교환의 자리를 마련하기도 하고, 특강비를 따로 지원하기도 하면서 마지막에 수업 보고서를 모아내기도 했다. 세계의 일류대학들이 하는 교양 교육의 내용과 방법들을 벤치마킹하면서 어떻게 교수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해온 구태의연한 강의식이 아니라 21세기에 필요한 기본 능력을 제대로 길러줄 수 있는 수업을 하게 할 것인지 방안을 짜내어 이를 제도화하였다.

문제는 우리 교수들과 대학 당국에도 있다. 세계 100위 대학에 들어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한국의 일류대학들이 평가 점수 올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것만이 ‘자족적인’ 부동의 교수들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고 있거나 한국의 민도가 그 수준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모든 교수가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세계 학술지와 한국내에서 괜찮다고 평가된 학술지에 꽤 많은 편의 논문을 해마다 내야 한다. 그래서 교수들은 논문을 제조해내느라 정신이 없고 대학원생들은 교수를 도와서 논문을 많이 냈는데 배우는 것은 왜 없는지 신기해하고 있다. 특히 자연과학계를 기준으로 하는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문과학자들은 더욱 불합리한 제도에 적응 하느라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위해 깊이 궁리할 시간을 내지 못한다. 사실은 이렇게 변화한 학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분명 많은 연구와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역시 신자유주의의 쳇바퀴에 얽혀버린 교수들에게는 그 일을 할 여유가 좀체 나지 않는다. 오히려 취업 위주로 변화하는 대학 분위기 안에서 디지털 콘텐츠 사업가로 변신하는 인문학 교수도 생기고, 전공수업은 점점 더 졸업생 진로와 직결된 ‘기술적 수업’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대학당국은 당국대로 여러 가지 불확실한 조건 가운데서 글로벌 시대에 탈락하지 않는 대학이 되겠다고 이런 저런 불확실한 기획들을 해내느라 분주하다. 보직교수가 바뀌면 그간의 기획도 바뀌고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파일럿 강좌 프로젝트도 실은 결실을 보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2007년 2월 9일자 신문에 “하버드 대 30년 만에 교과 개편: 타문화 포용하는 세계인 양성 목적”이라는 기사가 났었다. 문제의 심각성을 먼저 알게되어서 새로운 시도를 먼저하긴 하지만 중간에 포기해버려서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이 후진국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연세대학교는 2000년부터 교과 개편을 서둘렀고 온라인 지원센터도 아주 활성화되어 있다. 살다 지치면 예전 수업 게시판에 들러 힘을 얻는다는 졸업생들도 있다. 그러나 대학은 그 공공재를 공유하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자물쇠를 채우고 있다. 2월 17일자에는“미 명문대 온라인 공짜 강좌 ‘펑펑’ : MIT, 예일, 스탠퍼드 등 주도...대학의 문턱 낮춰. ‘지식은 공동재’ 교육 민주화 추구, 기부금은 덤”이라는 기사도 보인다.

2007-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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