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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0306

johancafe 2010.05.13 17:24 조회수 : 3122

책 머리에

1. <배움>

이 책은 2006년 연세대학교에서 개설한 [지구촌 시대의 문화 인류학] 수업을 재구성해서 옮겨놓은 것이다. 영상시대, 온라인 시대에 구태여 그걸 책으로 펴내었냐고 한다면 약간 주춤거리게 되겠지만, 한마디로 ‘말’의 힘을 믿기 때문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수업을 왜 보여주려고 하냐고 물으면 우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 자신들도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여러 번 던졌었다. 책 마무리가 끝나기도 전에 개학날이 와버리자 더욱 우리는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더 바빠질 스케쥴 안에서 시간을 찾을 수 있을까 좀 망연해있을 때 캐나다에 유학 가 있는 제자로부터 이메일이 날아왔다.

“[글읽기와 삶읽기] 후속편이 나오는군요.난 그 책의 발상이 좋아요.강단에 선 인류학자가 바로 강의실을 필드 (field, 현장)로 삼는 것도 흥미롭지만,이 필드가 그 안에 사는 ‘대학생 원주민들’의 삶만을 보여주는 게 아닌,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프리즘이 되는 이중구조인 것도 좋아요.게다가 그 원주민들은 말, 글, 영화 등등 멀티미디어적으로 자기를 표현하지요.이번 책에서도 대화로서의 강의,
소통의 인터페이스로서의 강의실이라는 점이
잘 보여지면 좋겠어요.
조한의 강의록은 그 강의 방식 때문에
학생들의 말걸기/말대꾸인 쪽글과 짝을 이루어야그 그림이 온전히 나온다고 생각해요.”

이 친구, 양선영씨의 말대로 이 책에는 자신을 잘 표현하는 한 ‘원주민 인류학자’와 ‘대학생 원주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원래 똑똑하고 글도 잘 쓰는 편이었지만, 함께 수업 공동체를 이루어냄으로써 더욱 훌륭한 글을 쓰고 훌륭한 생각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원주민들’이 모인 교실현장을 통해 우리는 현 시대를 읽어낼 수 있고, 특히 앞서가는 젊은 세대의 생각과 감수성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안식년에서 돌아와 2006년 봄 [지구촌 시대의 문화인류학] 수업을 시작하는 날, 실은 설레임에 앞서 두려움이 있었다. 대학생들이 변했고, ‘강의실 붕괴’가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잘 될까... 그런데, ‘지시문’- 학생들은 이 긴 이름의 수업을 이렇게 줄여서 불렀다- 수업 분위기는 아주 좋았고, 행복한 수업으로 끝났다. 가을학기에도 같은 강좌를 개설했는데 역시나 한 학생의 표현을 빌면 ‘보석 같은’ 수업이었다. 참여자들은 꽤나 즐겁게 많은 학습을 하였고, 교실에는 늘 ‘좋은 기운’이 감돌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대학문화를 볼 수 있는 현장 기술지이면서 페다고지에 관한 책이다.

2.
2000년 대학이 21세기 인재를 기르겠다고 교양과목을 전면 개편할 때 나는 [문화인류학 개론] 강의를 [지구촌 시대의 문화인류학]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수업 방식도 대폭 바꾸었다. 강의를 되도록 하지 않을 것, 정답이 있는 교과서를 읽기보다 생각을 자극하는 책이나 영화 등 다양한 학습교재를 쓸 것, 교수가 강단에 서기보다는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실을 만들 것 등이 그 때 생각했던 수업 원리였다. 이삼 십명의 전공수업이야 자연스럽게 토론수업이 될 수 있지만 대형 교양과목은 주로 강의위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 때 수업은 상경대 강당에서 이루어졌었고, 근 200명 가량의 학생들이 수강하였다. 강당에서 수업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나는 그 곳에 영상시설이 좋아서 [콘텍트] [ ]등의 영화를 보기도 하고, 온라인 수업 게시판을 적극 활용하면서 대형이지만 소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수업 분위기를 적극적 참여의 분위기로 만들기 위해 초반에는 학생들로 하여금 ‘문화적’으로 자신을 포현하라는 과제도 주었고, 그래서 한 학생이 유끼 쿠라모토의 피아노를 멋지게 연주해주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렇게 두세번을 가르친 이후, 아무래도 거대한 강당에서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하고 하는 강의에 한계를 느껴서 한동안 그 강의를 하지 않았었다.

2006년 다시 그 강의를 맡았을 때 백 명 정도의 학생이 들어가나 의자를 옮겨놓을 수 있는 교실을 주문했다. 온라인과 오프 라인을 통해서 소통이 되는 수업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의자를 옮길 수 있는 강의실에서 백 명이 둘러앉아 수업을 하는 것, 왠지 그 실험적 수업이 잘 될 것 같은 예감이었고, 실제로 그랬다. 하버마스가 말한 ‘이상적 담화 상황’이 강의실에서 형성이 되면서 강의실은 아주 활발한 소통의 장이 되었고, 적극적인 앎을 향한 여행길을 시작하는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한 학생의 어머니가 이 수업 이야기를 듣고는 “니네 교수 참 편하겠다”고 하셨다고 했다. 강단에 올라가지도 않고, 파워포인트 준비도 하지 않고 강의도 하지 않고, 학생들 말이나 시키고 쪽글이나 써오게 하는 교수. 그러나 학생들이 행복해 하는 강좌. 이것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수업이었다. 이 수업의 핵심은 여러 가지 장치들이 엇물리면서 ‘정답’이 아닌 자기 이야기들이 터져나오게 하는 데 있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일단 말이 터져나오면 교수가 할 일은 별로 없다. 교수와 학생 모두가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게다가 아주 즐거워진다.

프랑스의 대학의 위기를 분석한 연구진은 현대에 강의라는 교육법은 가장 무의미하고 효과가 없는 교육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선험적으로 능력이 모자란다고 판단된 익명의 청중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는 것은 ‘정보의 손실’이 너무 많은 행위라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 싸게 학생들을 학교에 잡아둘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제대로 배우게 하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Areser라는 시민사회적 연구팀은 1997년도에 프랑스 대학의 문제를 [위기의 대학]이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정리하면서 강의를 통한 교육법을 비판하고 있다. 70쪽 (2003, 김교신 옮김, 동문선 현대 신서)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주 획기적인 정보를 주어야 할 분야에서는 강의 형식을 고수해야 하겠지만, 지금처럼 급변하고 다원화한 현대사회에서 쌍방적 소통 없이 농도 짙은 배움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스무명 남짓한 학생들을 데리고 강의를 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된다면 좀 큰 교실에서도 쌍방적 소통이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방법을 쓰면서 나는 홍미롭게도 백명 정도의 학생들이 둘러앉아 하는 수업이 때론 작은 수업보다 더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알아내었다. 소비대중사회, 또는 스팩타클 사회가 길러낸 ‘주민’답게 이제 갓 스무살이 된 학생들은 어느 정도 규모의 청중과 함께 모여 있거나 그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또한 자신들 안에서 존재하는 그 다양성을 보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있었고, 게다가 사람 만나기 어려운 시대에,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확률은 사람이 많이 모인 데서 더 높아지기 마련이다. 하여튼 근 백명의 학생들이 모인 수업이었는데 고밀도의 소통과 상당한 수준의 자기 주도적이고 협력적인 학습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감동스런 일이 아닌가?

이런 방식의 수업은 실은 내가 가진 독특한 성향과 기법, 특히 내가 문화인류학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일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런 수업이 쉽게 복제될 방식의 수업모델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내가 했던 식의 수업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스타일로 즐거운 강의실을 창조해보자는 말이다. 각자 자신의 강의실에서 ‘즐거운 배움의 공동체’를 만들어 내다보면 함께 나눌 것도 많아질 것이고, 그런 배움터들이 모여 ‘천개의 고원’ 기승전결과 클라이막스가 있는 ‘근대’를 넘어서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는 반복과 프렉탈의 시대를 잘 그려낸 들레즈와 카타리의 책(확인)이 있다. 이를 읽고 창조적 작업을 통해 멋진 변주를 연주한 이진경의 책 제목은 [천개의 고원] (200 ) 을 만들어낸다면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시대의 학습 생태계가 혁명적으로 달라져 있지 않을까?

우리 시대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해내려면 우리는 한층 더 지혜로와져야 한다, ‘배움’을 향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충족되는 시대가 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d; ‘돌봄과 배움이 있는 공동체’를 회복함으로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과 교수 모두가 강의실에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지역적 지식’ local knowledge 을 생산해내는 즐거움을 느끼게 될 때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딱히 대학 강의실에서만이 아니라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학원 교실에서, 또 방과후 학교와 시민대학, 그 외 다양한 작은 배움터에서 신뢰하는 사람들이 모여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창의적 학습을 해낸다면 현재 당면한 무수한 사회 문제들은 생각보다 쉽게 풀릴 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 저기서 생기 있는 학습 공동체들이 생겨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서로 연결하면서 좀 더 많은 일을 벌이다보면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량생산‘을 위한 ’근대적 학습 생태계‘가, 다품종 소량생산을 위한 ’후기 근대적 평생학습 생태계‘로 바뀌어가지 않을까?

전 세계는 여러 면에서 하나로 통합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문제는 곧 다른 나라의 문제이고, 다른 대학에서 찾은 대안은 우리의 대안이기도 하다. 세계 여러대학에서 학부 교육을 개혁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내 놓기 시작했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지에 대한 책들도 앞다투어 출간되고 있다. 켄 베인 2005 [미국 최고의 교수들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안진환, 허형은 옮김, 뜨인돌, 이와 함께 하버드 교수인 리처드 라이트 교수는 학부생들이 대학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대학 생활을 가장 잘 지내는 방법 Making of the Most of College]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한국에서는 [하버드 수재 1600명의 공부법]이라는 이상한 제목으로 둔갑해서 한국 대학생들에게 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협박용’으로 읽히고 있지만, 실제로는 변화하는 캠퍼스에서 고민하는 교수가 학생들을 위해 만든 가이드 북이다. 하버드 대학 이야기면 무엇이든 기사화하는 한국사회 언론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하버드 대학은 이제 하나의 기표이자 스타 대학으로 자리를 잡았고, 그런 맥락에서 하버드 대학의 기획자와 연출가, 그리고 배우들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세상일에 개입하기위해 필요한 일이다. 대학에 본격적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2월 17일자 신문에 “미 명문대 온라인 공짜 강좌 ‘펑펑’"이라는 타이틀이 눈길을 끌었다. 최근 MIT, 예일, 스탠퍼드 등이 주도적으로 대학의 문턱 낮춰면서 ‘지식이 공공재’임을 다시 확인해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기사였다. 강성만 “미 명문대 온라인 공짜 강좌 ‘펑펑’” 한겨레 신문 2007년 2월 17일. 기사에 따르면 MIT가 1500강좌의 강의자료를 제공중이고 예일, 스탠포드, 노트르담, 캘리포니아 대 버클리 캠퍼스 등에서도 소수의 강좌를 제공하면서 수를 늘려가겠다고 한다. 물론 이런 강의 공개에는 재단지원금도 활용되고 있어서 ‘공공재인 지식 공유’ 운동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교육의 민주화와 평생학습을 향한 행진이 쉬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강좌가 가장 빨리 이루어졌던 한국 대학에서 우리는 어떻게 지식을 생산하고 얼마나 잘 공유해가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가 온라인과 오프 라인을 넘나들면서 만들어낸 수업공동체가 꽤 흥미로운 작업들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그 창조적 공유지대 creative commons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와 학습 원리들을 동시대인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좀더 행복할 것이다.

3. 책 제목과 구성

학생들을 잘 ‘꼬시는’ 것으로 소문 나 있는 나는 수업을 책으로 엮어내기로 결정하면서 '학점'이 나간 후 방학 중에 아래와 같은 글을 수업 게시판에 올렸다.

“이미 이야기 했지만
방학 중에 관심 있는 이들과 모여서
지난 학기와 이번 학기에 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제목은 [신자유주의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

워낙 급하게 변하는 시대라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지요.
한 살에 세대 차이가 나고
남녀간의 소통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같은 교실에 앉은 팔십 여명이 한 경험의 장이 너무나 다릅니다.

이 냉소적인 시대, 자포자기한 시대에,
그나마 우리 수업에서는
한 한기 동안 '마당극'을 하면서
서로를 드러내었고,
아슬아슬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많은 학생들이 서로를 진지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잘 가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실의 여운이 아직 따뜻하게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있고
그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는 애정과 기운도 남아 있어
문화생산자와 소통하는 사람으로서의 작업을 책으로 이어가보지요.
creative commons를 키우는 작업말입니다.



자유롭게 의견들을 써주세요.
책의 구상부터, 구성, 추천글까지...
다른 친구들의 글을 이미 다 읽었고
읽으면서 신이 났었던 기억이 있는 친구라면
이 작업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즐거울 겁니다.

이 책은 내가 1992년부터 1994년까지 펴낸 낸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 시리즈의 연장선에서
나갈 책입니다.

인간의 숨결, 역사의 무게가 한 순간에
사라지는 듯한 지구적 개방과 신자유주의 시대에
종합관 303호에 차린 작은 쉼터,
아담한 대합실에 잠시 머물며 놀았던 우리들이
동료 대학생들와 선후배에게 멋진 선물을 마련해보지요!

여덟명의 학생들이 금방 참여의사를 밝혔고 나와 조교는 그들과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15년전에 [문화이론] 수업을 책으로 만든 경험이 있어서 연속성을 고려해서 [신자유주의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라는 제목을 달아 보았다. 그리고 첫 편집 회의에서 제목부터 토론하기 시작했다. 편집에 참여한 학생들은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도 좀 부담스러워하면서 ‘시대 읽기’에 방점을 찍고 싶어했고, ‘지식인’이라는 단어는 아주 좋아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별로 느낌이 없다는 학생이 많았다. 또한 자신들은 논술 세대이고 수업에서 글쓰기를 많이 했으니 그냥 명료하게 [신자유주의 시대 대학생의 글쓰기와 삶읽기]가 좋겠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대학생들이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인류 어느 시대나 철학자/지식인/일상을 읽어내는 현자는 있어왔다고 보기 때문에 ‘지식인’을 고수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뭔가가 맞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되면 글도 너무 무거워질 것 같아서 학생들의 제안대로 가기로 했다.

첫 부분은 교수가 어떤 무대를 마련하고자 했는지를 정리한 것이다. 무대는 어떻게 꾸려지고,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올라오고 어떤 일이 벌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기획과 매뉴얼을 간단히 정리한 것이다.

본문은 첫 수업부터 마지막 수업까지의 과정을 그려보았다. 수업 초반에 ‘마당극’이라는 비유가 나왔었고 수업은 마당극 분위기가 연출되었는데 그것을 책에서도 살려보려고 하였다.

첫 번째 막은 ‘소통공동체’를 형성해가는 과정이다. 배우와 관객이 있는 것이 극이지만 마당극이 배우가 관객이 되기도 하고 관객이 배우가 되기도 하는 설정이다. 제일 먼저 객석에서 한명씩 나와서 그간 각자가 해온 영어 공부 이야기를 통해 자기 드러내기를 한다. 모든 참여자들이 이 첫 막 어딘가에 무대 중앙으로 나와서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무대 중앙에 선다는 것은 딱히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패션과 바디 랭귀지를 다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앞뒤를 잘 이어가면서 객석을 즐겁게 하는 의무도 주어진다. 아니 그것은 의무가 아니라 배려이고 참여자들은 서서히 그런 배려의 미덕을 익혀가기 시작한다.

이어서 자신들이 바라는 수업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고, 배우들은 숨겨두었던 욕망을 절절하게 드러내주었다. 대학 가서는 공부다운 공부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리 잘 실현되고 있지 않다는 실망이 참여자 모두에게 감염되고 공유되면서 교실 분위기는 더욱 친숙해지고 서서히 익명이 공간이 실명의 공간으로 변해갔다. 이어서 추석을 배경으로 평소에 하기 어려운 가족이야기를 공적인 자리에서 풀어내는 자리. 꽤 많은 생각 나눔의 시간을 갖게된 참여자들은 상당한 수준에서 수업과 참여자들의 성격에 대해 파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신뢰감을 바탕으로 한 수준 높은 ‘소통 공동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즈음 되면 배우들도 노련해진다. 무대 중앙에 오르는 배우는 남의 말을 잘 듣고 그 말을 잘 이어가야 한다는 것, 특히 전체 마당극의 흐름을 고려해서 등장한다는 것 등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마당에 좋은 기운이 돌기 시작하면서 2막이 열린다. 참여자들은 이제 시대 읽기를 할 적절한 자극과 만나면서 시대를 학습하기 시작했다. 토마스 프리드만이라는 자기 자랑이 좀 심한 미국인 컬럼니스트의 [렉서스 와 올리브 나무]라는 에세이집이 던져졌는데, 참여자들은 그 교과서가 아닌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정답 찾기’를 포기하고, 그의 이야기속에 말려들면서 자기의 상황을 돌아보고 구체적으로 세계화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마가렛 에트우드 원작, 스필버그 감독의 [핸드 메이즈]를 보면서 참여자들은 좀 더 깊은 차원의 사회를 보게 되고, 상당한 충격과 절망감에 빠진다. 이어진 특강은 참여자들을 더욱 자극적이다. 2006년도 일년동안 진행된 KTX 여승무원 비정규직 관련 농성 사건에 관한 특강을 듣고 ‘고용 없는 성장’ 시대의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 상황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즈음 절묘하게도 이 시대의 현자인 침팬지 연구자 제인 구달 여사의 초청강연회가 캠퍼스에서 있었다. [희망의 이유]라는 주제의 특강에 참여자 모두가 함께 가서 구경꾼/관찰자가 되었었다. ‘저출산 세계 1위’ 를 기록한 한국에서 살고 있는 참여자들은 ‘저출산 대책’에 대한 동료 학생 세미나 팀의 발제를 듣고 드디어 국가와 개인, 연애,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 등의 주제로 이야기들을 마구 풀어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나름의 화두들을 갖거나 같은 화두를 던지는 동료들도 갖게 된다.

마치 드라마를 볼 때 스토리를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우가 좋아 보는 사람도 있고, 배우들의 패션과 화장, 집안 장식과 도시 풍경에 집중하는 사람이 있다. 이렇듯 이 마당극에서 참여자들은 이제 무대 위에 널려진 다양한 소품과도 친해지고, 그것들을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주제별로 주제를 정해 현장조사를 시작한 팀끼리의 조별 작업 게시판, 교수가 수업 후에 올리는 전자칠판의 [수업 일지], 자발적으로 관련 자료를 올릴 수 있는 자료실, 그리고 ‘왁자지껄’ 게시판에 감상을 올리는 등 다양한 형태의 학습마당이 무대 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다. 개별적 화두를 팀 작업으로 연결하는 작업이 일정하게 진행이 되면서 참여자들은 마당극 안의 마당극을 벌일 준비가 되기 시작한다. 2막이 내려지고 3막이 오른다.

3막에서 참여자들은 [열두명의 성난 사람들]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자신들의 소통의 습관과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밤샘을 통한 조별 활동을 통해서도 그런 현실을 직접 체험했던 터라 보다 생생한 이야기들이 터져 나온다. 발표를 끝낸 배우들은 자신들의 협동적 노력을 자축하면서, 마무리하는 글쓰기를 하고, 그간 자신이 한 ‘모노 드라마’, 그리고 ‘집체극’에 대한 점수도 스스로 매긴다. 이제 새롭게 만난 친구들,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자기의 부족’들을 찾아 강의실, 그 ‘일시적 자율 공간’을 주섬주섬 짐을 챙기면서 떠난다.

실제로 지시문 수업은 2006년 봄학기와 가을 학기 두 번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봄에는 고학년 중심의 수업이었고, 가을학기는 1학년이 다수인 수업이었다. 마당극은 가을학기의 수업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 책 부록에 봄학기 수업 평가 글을 실었다. 봄학기 수업은 교양교육 개선을 위한 파일럿 실험강좌로 이루어진 것인데, 파일럿 강좌 연구모임에 참여한 교수들은 각자의 수업목표와 방식을 항목별로 정리해서 “능력함양-목표 중심의 교양교육개선 연구” 보고서를 펴냈었다.

4.

이 책을 쓴 사람들은 백여명이 넘는다. 2006년도 봄 학기에 [지구촌 시대 문화인류학]을 수강한 68명(06학번 명, 05 학번)과 같은 과목을 가을학기에 수강한 89명(?)이 모두 필자들이다. 책에 직접 인용된 학생 수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여기에 실린 글은 상호 토론과 상호 인용의 결과물이므로 학생들 이름을 다 적어본다. (한 페이지에 단정하게 이름들을 디자인해서 올릴 것) 책에 인용된 이름은 그 솔직함이 공공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글은 가명으로 하였지만 실명이 대부분이다. 책 편집은 가을 학기 수강생 한운장, 방영화, 이승진, 유아람, 김연지, 홍아성, 노주환, 김한솔군이 함께 하였고, 봄학기 조교인 이송규호, 정가영, 가을학기 조교였던 정가영, 김윤희가 작업을 계속 함께 했다.

문득 15년 전 [문화이론] 수업을 했던 학생들이 생각난다. 숨가쁜 세월동안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 책이 1990년대 초반 ‘서태지’가 되고 싶어 했던 그 세대 대학생들에게도 좋은 선물일 수 있으면 좋겠다. 현재의 민주화 시대를 이끈 386 - 지금 40대가 되어서도 변함없는 열정으로 스터디 모임을 꾸리고 대안학교를 만들기도 하는- 세대와, ‘문화의 시대’를 열어가고자 했던 서태지 세대, 그리고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허우적대는 2080 세대가 이 책을 읽고 토론 하는 그림을 떠올려 본다.

책이 나오면 선후배가 만나는 조촐한 출판 파티라도 벌여보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대 인식을 공유하고 공감능력을 길러내면서 후기 근대를 살아갈 ‘마을들’을 만들어내면 좋겠다.
어디에 있든 시대를 읽는 즐거움으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압박에 망가지지 말고, 지혜롭게 잘 버텨나가기를! 어디에 있든 ‘지속가능한 성장’의 시대를 만들어내는 주체로서, 자율과 공생의 삶을 일구어내기를...

2007년 3월 1일 강진 다산초당에서 조한 혜정


학생들 이름:
감사의 글

기댈 데가 줄어든, 여유가 없어진 신자유주의 시대이지만
여전히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으시다.
도움을 받기 힘들어져서인지 요즘에는 전에는 지나쳤던 것에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들이 늘 내 곁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제도라고 해서 다 당연히 그런 일을 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먼저 연세대학교에 감사한다.
동그랗게 둘러앉아 공부할 수 있는 교실에
언제든 무선랜을 사용할 수 있고
커텐이 제대로 빛을 막지는 못해도
수시로 이런 저런 다큐와 영화를 볼 수 있는 최신 장치를 해 준 것,
그리고 일찍이 사이버 보조공간을 만들어서
다차원적 소통이 일어날 수 있게 해 준것,
또한 특강비를 지원하면서 파일럿 강좌 제도를 통해
학부교육을 잘 해보려는 제도적 노력에 감사한다.
지식 생산이 우리들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참고로 편집자들은 책에서 나올 인세의 일정부분을 학교에 기부하기로 했다.
연세대학교가 공공재인 지식을 풍성하기 생산하는 대학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머지 비용은 책 작업을 위한 실비,
그리고도 돈이 남으면 잔치 비용으로 쓸 것이다.
사실 책 읽는 인구가 1/10로 줄었다는 시대에 인세를 통해 얼마나 벌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숫자도 우리에게는 시대를 파악하는 지표일 것일 것이라
좋은 공부거리가 될 것이다.

이 작은 책을 내기 위해 크고 작은 신세를 진 많은 분들이 계시다.
책 마무리를 하느라 다산 초당에 가 있을 때
100 년 전 다산선생이 하셨듯 좋은 책을 내야 한다고
압력을 가하신 윤 동환, 국영애 선생께 감사한다.
브론테 자매가 집필에 몰두했던 하워즈 마을과 산책로,
그 마을과 산책로 못지 않게 아름다운 산책길을 가진
강진의 다산 초당은 책 쓰는 이에게 좋은 에너지를 돋아주는 곳이다.
다산 선생이 1801년 유배 오셔서 18년간 500여권의 책을 쓴 것도
바다와 산에 감싸여 있는 그 마을의 에너지 덕이었을 것이다.
늘 소박하면서 풍성한 식탁을 마련해주신 김미경...

* 각자 채워넣을 것

2007년 조한, 이송규호...

2007-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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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이론과 실천 프롤로그 2010.11.11 15538
3377 렉서스연지 2010.05.13 3003
3376 규호 2010.05.13 3119
3375 신자유주의 목차 2010.05.13 3139
3374 저출산 도입부 2010.05.13 2827
3373 서문 자업중 file 2010.05.13 3038
3372 저출산 도입부 2010.05.13 3025
3371 책 머리에 file 2010.05.13 2804
3370 파일 file 2010.05.13 2770
3369 결론 2010.05.13 3171
3368 책머리 수정 file 2010.05.13 2725
3367 서문 file 2010.05.13 3134
3366 새 목차 3월 5일자 file 2010.05.13 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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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4 2막 시대읽기 file 2010.05.13 3947
3363 신부록파일럿 평가 29매 file 2010.05.13 3252
3362 신편집 후기 file 2010.05.13 2883
3361 신3절 추석 이야기 file 2010.05.13 2784
3360 4절 렉서스 file 2010.05.13 2905
3359 5장 file 2010.05.13 2389
3358 6장 저출산 file 2010.05.13 2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