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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 경험의 죽음 (오늘의 교육 2)

조한 2012.01.14 20:47 조회수 : 3024

기말고사가 다가오면 큰 고민이 시작된다. 채점을 하는 것도 질리는 일이지만 시험문제를 어
떻게 내야하는지가 걱정이다. 요즘같이 경쟁이 치열한 때에는 시험문제와 답에 객관성이 없으
면 학생들이 바로 반발한다. 그렇다고 인문학 수업에 객관식이나 단답형을 내는 것도 깝깝하
다. 서술형이라고 하더라도 외워서 쓰는 것은 의미가 거의 없고, 말빨로 채울 수 있는 것도
한계가 많기 때문에 늘 고민을 하게 된다. 시험문제는 언제나 지금까지 배운 것을 잘 이해하
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현실을 바라보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를 점검해볼 수 있는 것이
어야 한다.
강의를 시작한 첫 학기에 낸 문제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 공연 동영상을 보여주
고 이 노래가 왜 주목받고 있는지를 수업시간에 배운 개념을 총동원해서 설명해보라는 것이었
다. 당시에 장기하와 얼굴들은 공중파에서도 종종 초대받아 나가는 성공한 인디밴드였다. 음
악적으로도 산울림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부터 한국적 랩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극찬까지
듣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동안의 아이돌이나 이러저러한 대중가요에 질려가던 사람들이 열광
하였다. 사람들이 장기하와 얼굴들의 어떤 부분에 감응하고 열광하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 시
대의 문화적 코드를 찾아보라는 것이 시험 문제의 핵심이었다.
이런 시험 문제를 내는 가장 큰 큰 이유는 시험을 보는 행위 자체가 공부를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공부를 ‘하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한다’
에는 정보의 습득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최단 시간에 최대로 많은 것은 암기하고
그걸 내 안에 저장하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는 생각이 필요 없다. 그래서 총명탕이나 뭐니 하
는 보조제들이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공부를 할 때 우리는 공부에 매몰된다. 그래서 공부
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
할 뿐이다.
그러나 공부를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는 공부의 즐거움을 깨닫게 된다. 공부를 경험하게 되면
‘이게 공부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공부하는 것의 즐거움과 참 맛을 느끼게 되었을 때 우
리는 계속 공부를 할 수 있다.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떠들 수 있다. 공부의 최종목적지는
지식도 정보도 아니라 공부를 향한 내 몸의 변화이다. 한 시인이 머릿속에 아무리 시상이 많
이 있더라도 시는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쓰는 것이라고 일갈한 것처럼 내 입으로
말해야하고, 내 입으로 말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깨달음 말이다. 이런 깨달음이 있
을 때 비로소 경험은 경험이 된다.
인간의 삶은 경험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로는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도 하고 때
로는 익숙한 것에서 전혀 낯선 의미를 찾아내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이 자기 사는 이
야기를 듣다가 나는 이들에게서 ‘경험의 빈곤’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분주하게 많은 일들을 하
고 있기는 하였다. 그런데 한 학기가 지나고 나서 그 중에서 기억나는 것을 떠올려 보라고 하
면 대부분 아무 생각도 안 난다고 한다. 뭔가 열심히 한 것 같기는 한데 뭘 했는지 생각이 안
난다는 것이다. 분주하게 자신의 삶에 대해 ‘한 마디’도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 학생은 당황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전 뭐하고 산 것일까요?”
보고 배우고 들은 것은 내 몸에 들어와서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짜릿한 자극 한
번을 주고는 휙 지나가버린다. 그러니 뭐가 나를 지나갔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떠들 수 있
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멍하니 있으면서 다음 자극을 기다리거나 찾아서 헤맨다. 삶은
당연히 헛헛해 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삶이 한 쪽에는 생존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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