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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릿글 초안

조한 2013.07.10 11:14 조회수 : 2325

 
지난 일요일에 혜윤이와 서울 시 집회 장소에서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지.
논지당 사건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토론과 남녀 문제를 정리해보겠다고 했고
정리를 깔끔하게 하는 것보다 토론을 하면서 든 생각과 흔들림을 그대로 드러내자고 했네.
일베논의는 자기보다 동선이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혜윤의 생각이고
혜윤은 다음 날 런던으로 떠나서 9월 1일에 돌아온다고 하고
서로 이메일로 원고를 돌려보기로 했지.

아래 책 머릿글 써봤는데 어쩔까 모르겠다.
읽어보고 의견 주고 자기들이 쓸 글감도 생각해보고.
교실이 돌아왔다 1과 그렇게 다를 수 있는지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군.
토요일 오후에 내 연구실에서 만나는 식으로 할까?

토요일에 에어콘 안 틀어주면 점심 식사를 하면서 알렌관에서 만나도 되고.
그 때 쯤은 감기가 나을테지.

유이나 조제, 올 때 글읽기와 삶읽기 1권과 교실이 돌아왔다 세권 정도씩 가져다 주시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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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

<교실이 돌아왔다: 지속가능한 삶의 탐구>

<교실이 돌아왔다: 우정과 환대의 아이들>

<교실이 돌아왔다고?: 일시적 자율공간의 기억>

 

책머리에

 

1. 교실이라는 작은 실험실

 

교수도 각자 성향이 다르고 그에 따라 교수노릇도 조금씩 다를 것이다. 나는 교수 중에서도 주로 학생들과 노는 교수였던 것 같다. 1979년 유학생활을 끝내고 돌아와서 2년 시간 강사를 하고 1981년부터 교수가 되어서 줄곧 신촌에서 학생들과 놀았던 것이 벌써 33. 올해로 나는 공식적 교수 생활을 마감한다. 교수라는 자리가 사회적 직위가 높고 존경을 받는 자리라고 하지만 나는 그 무엇보다 20대 초반,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 미래를 항해 자신의 가능성을 펼치기 시작한 싱싱한 청년들과 함께 시대 읽기를 한 수업 시간을 가장 즐겼던 것 같다. 싱싱한 청년이라니! 워낙 싱싱하게 살았던 나로서는 이 단어를 쓰면서 내가 환갑이 넘은 노인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충분히 오래 살았다는 생각과 함께.

 

박사 학위를 받고 처음 강단에 섰을 때 밤 세워 강의 준비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강의 준비를 나름 완벽하게 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으로 강의실로 들어간 날은 대부분 강의를 망치곤 했다. 혼자 떠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오히려 강의 준비를 제대로 못한 날, 학생들은 버벅거리는 교수를 안쓰럽게 보면서 강의를 흥미롭게 듣는 편이었다. 나는 강단 위에서 하는 일방적 강의가 적어도 내 몸에는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학생이나 된 이들에게 교과서 내용을 그렇게 자세하게 요약해줄 필요는 없을 테고 스스로 찾아 읽어보다가 질문이 있으면 가져와서 토론하면 될 것 아닌가? 게다가 갈수록 관심사는 다양해져서 모두가 집중을 하게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삼분 마다 학생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흥미를 끄는 강의기술을 익히는 것도 좋겠지만 게으른 내가 택한 것은 그것보다는 강단에서 내려가는 것이었다. 남의 뒤통수가 아니라 둥그렇게 둘러앉아 서로를 볼 수 있는 교실 배치, 자발적이면서 솔직하고 충실한 이야기가 오가는 실험적 교실이 내가 원하는 학습의 장이었다. 여기서 교수는 강의를 하는 연사가 아니라 무대를 기획하는 기획자이며 감독이자 연출가이다.내 수업의 목표는 단순하다.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사회적 삶과 연결해내는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1991년 봄 학기 문화이론을 수강생들은 이 작업을 아주 훌륭하게 해냈다. 1980년대 민주화 항쟁이 승리를 거두어 세상이 밝아오기 시작했을 때였다. 군사 정권과의 대결로 이판사판의 전투장이었던 대학 캠퍼스에 평화가 찾아왔고, 학생들은 약간 허탈한 상태로 새로운 시대를 찾아 나서고 있었다. 시대정신과 시대 언어를 만들어갈 장이 필요했고 우리들의 교실은 곧 그 탐구의 현장이 되었다. 글을 읽을 때 우리는 당연히 텍스트를 자신의 삶과 연결하여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읽어낸다. 아니 실은 대부분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소외된 책읽기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 내면에 자리한 식민지성을 발견하고 겉도는 글, 헛도는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작게는 입시 위주교육의 산물인 학생 자신의 고질적인 책읽기 습관에 대해, 크게는 식민지적 지식 생산 과정에 연루된 오퍼상지식인 집단의 형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 수업현장이 그 자체로 시대를 훌륭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믿기에 교실 현장을 문화기술지 ethnography 형태로 출간하였다.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 1: 바로 여기 교실에서]가 그 첫 번째 책이고 나는 내가 했던 방식의 페다고지를 다른 교수들이 참고하기를 바랐는데 실제로 많은 교수와 강사들이 이 책을 참고했었다. 시대를 조금 앞서 파악하고 실험하는 것, 자신의 삶을 사회적 과정에 담아내는 글쓰기와 지식 생산을 바로 여기, 교실에서시작한 것이다.

 

나는 대학은 교수와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실험의 장, 일시적 자율공간이라고 본다. 그 일시적 자율공간들이 시일이 흐름에 따라 대안적 공공영역이 되면서 바람직한 사회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상으로 게시판이 열리면서 서로의 글을 읽고 코멘트를 달 수 있게 되면서 교실 안 실험은 아주 풍성해질 수 있었다.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 지를 탐구하고 실천의 영역을 찾아가던 교실은 날로 활기를 띄어갔다. 그러나 2000년대에 접어들어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밀려오면서 교실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었다. 실험을 하려는 진취적 학생들을 줄어들고 불안한 기운이 교실에 감돌기 시작했다. 입학하자마자부터 취업 공부에 몰입하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수강신청을 하는 학생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대학을 뜰 때가 되었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함께 실험을 할 학생들이 없다면 내가 대학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는가? 그래서 교과 내용을 대폭 바꾸고 새롭게 수업을 기획했다. 2006년도 가을 학기 수업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여 즐거운 마당극으로 끝났다. [교실이 돌아왔다: 신자유주의 대학생의 글 읽기와 삶 읽기](2009)는 그 당시 수업의 문화기술지이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통찰하게 하려는 교수의 의도가 꽤 역력한 책이자 시간에 쫓기는 대학생들의 불안과 성찰이 담긴 책이다. 그 수업을 하면서 나는 학생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잔이 절반이나 비어있다고 보는 세대가 아니라 잔이 절반이나 찼다고 보는 아주 다른 세대의 등장을 보았다. 동시에 학생을 통해 시대를 읽는 나는 진리를 탐구하는 자율공간으로서의 대학은 아직은 건재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무리 신자유주의 바람이 거세도 그 자율공간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 책으로 교수들간의 학습 모임도 만들어지기도 했다.

 

2. 교실이 돌아왔다고?

 

그런데 그 책을 읽는 독자 중에는 냉소적인 이들이 적지 않았다. “교실이 돌아왔다고?” 학생들은 일시적 자율공간이었던 수업을 기억을 하긴 하겠지. 그러나 그들 중 상당수는 아직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제대로 찾지도 못하고 취직도 못하고 있지 않는가? 이 시대 교수가 할 일은 그들에게 취직을 잘 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아닌가? “교실이 돌아왔다고 우길 수는 있겠지만 선생의 교실은 똑똑한 학생들이 해낸 연출의 결과물일 뿐, 대학의 교실이 살아날 조짐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그들은 말했다. 실제로 대학가의 변화는 예사롭지 않았고 나 역시 방심을 할 수 없었다. 대학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점점 어려워져가고 있었고 학생들은 제대로 배우고 싶어하더라도 교환학생 등을 나가면서 교류가 끊어지고 부유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초경쟁의 입시전쟁을 통과한 이 학생들은 그러면 도대체 언제 자신의 삶을 사회적 과정과 연결하면서 스스로의 삶의 환경을 만들어가는 존재로 살아갈 학습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삶의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실험이라는 것에 거부감을 갖기 시작했다. 대안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아이들을 가지고 실험을 하는 곳이냐며 비난하듯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삶은 사실상 실험이라는 것 자체를 망각해가고 있는 것이다. 안전한 길 있다고 믿는 것은 좋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믿음 일뿐이다. 조심해서 중간만 가는 것도 각자의 선택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의 시대는 구식의 가치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관리하면 할수록 더 속수무책으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 문제 상황을 큰 틀에서 직시하면서 집단적으로 풀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이런 시대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학이 바로 시대를 통찰할 능력을 가진 탁월한 인재들을 키워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명문대학은 안전한 진로를 원하는 학생들을 위한 취업 준비학교가 아니라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우는 대학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2013년에 했던 수업은 바로 그런 불안 가운데서도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가는 학생들을 키우려는 프로젝트 였다. 내가 [지구촌 시대 문화인류학] 수업에서 시도한 한 것은 돈이 만들어내는 경쟁과 적대의 세상에 너무나 잘 길들여진 아이들과 좀 다른 일시적 자율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기대 이상으로 학생들이 그런 세상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보고 놀랐다. 나의 놀람이 주관적인 바램의 산물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세 번째 책 [교실이 돌아왔다: 지속가능한 삶의 탐구] 편에서 당신은 몸 풀기를 시작한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은 드디어 자신들의 삶, 또는 인류의 미래가 그리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과학과 종교의 분리로 시작한 근대는 이제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과학이 종교의 자리를 점하고 신을 죽인 자리에 돈을 앉혔다. 창백한 수학의 귀재들이 어딘가에 성을 쌓고 돈을 돌리면서 지구의 운명을 좌우하는 자리에 군림하고 있다. 극히 세속적인 그들은 성스러운 자리에 올라가서 일시에 집을 잃은 군중을 내려다 보고 있다. 그들은 그리 쉽게 세속의 자리로 내려올 것 같지 않다. 영화 메트로폴리스의 주인공처럼 그들은 실은 내려갈 길을 모른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히 사용해도 되는 돈을 갖는다는 것은 비극이다.

 

이 수업에서 우리가 한 것은 바로 그 돈의 세상이 만든 경쟁과 적대의 질서를 거슬러보는 실험이었다. 수업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무장해제 시켰다.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서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외롭지 않고 싶은 모습, 보살펴주고 싶은 모습, 보살핌을 받고 싶은 모습, 좀비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 사회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지만 마음 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온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돈의 세상이 하지 말라고 명하는 것을 그들은 슬슬 행하기 시작했다. 서로 따뜻하게 바라보기, 믿어주기, 들어주기, 시간을 내주기.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가 나누는 시시한 이야기가 시간 낭비가 아니고 즐거운 이야기라는 것, 때로 그것이 아주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합의는 으레 불가능하다고 간주하고 성급하게 다수결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삶이 정상적인 삶이 아니라는 것, 난감한 상황을 공유하고 머리를 맞댈 때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된다는 것도 알아가게 되었다.

 

소통의 힘을 확인하게 된 것은 자체내 토론을 통해서만 아니었다. 나는 학생들이 누구보다 훌륭한 자문을 할 수 있을 집단이라고 믿었기에 내게 자문을 구하러 오는 방송국 피디들을 교실로 초대했다. 이번 학기 네 번의 텔레비전 특집 팀이 우리 교실을 찾았던 것이다. EBS 하나뿐인 지구 당신이 동물을 버리는 이유, ebs 한국사회정산가족의 해체와 무연사회에 관한 다큐 YTN에서 다룬 남자의 몰락과 재탄생을 다루는 다큐의 제작 과정에 학생들이 적극 토론으로 참여를 했다. 피디와 작가들은 학생들의 다양한 경험과 감수성에 감탄했고, 대단한 전문가 한명보다 여러 명이 대학생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더욱 깊고 풍성한 정보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사족이지만 나는 끝 부분에 꼭 전문가가 나와서 마무리 하는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제작 스타일이 정말 마음에 안 든다.

 

학내에서 사건이 터지고 그것에 대해 누가 정보를 온라인 게시판에 올리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당연히 참여하는 것이 옳고 또 정보도 풍부하게 나눌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교수 우대 좌석을 만들었다고 학생들이 항의를 한 캠퍼스 셔틀 버스건으로 마음에상한 동료 치대 교수를 초대해서 학생들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고, 여학생 휴게실을 기웃거린 일로 논쟁거리로 비화한 건에 대해서도 당사자 선생님을 모시고 토론을 했다. 이 토론을 문제를 풀어내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학생 사이에 내부분열이 첨예하게 생기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충돌도 과정으로 소화해내는 힘이 있다면 그리 기분 나쁜 일은 아니며, 오히려 좋은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을 할 수 있었던 점이다. 이 수업에서는 팀 프로젝트로 에너지를 소진시키거나 무임승차를 하는 팀원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착한 일을 하거나 동료의 일을 돕는 일이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실은 돈의 세상에서도 착한 일을 하라고 권한다. 스펙에 들어가기 때문에 봉사점수를 따기 위해 초등학교 멘토링을 나가서 봉사를 하는 척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 수업에서 초등학교 멘토링을 했던 일학년 학생들은 그런 선배를 보고 크게 실망했지만 자신들이 기울인 성의를 보고 선배들도 좀 달라졌다고 자부심을 갖기도 했다.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정답과 팩트에 집착하는 초합리적인 바보짓을 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쓸 줄 알고 마음을 쓸 줄 알게 되었다

 

내가 수업에서 한 일은 총괄 기획을 하고 교재를 고르고 수업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매시간 3분여 정도의 동영상을 고르는 것, 이야기 흐름이 적절히 이어지도록 신경을 조금 쓰는 것 정도였다. 사또 마나부 교수가 말한 배움의 공동체의 원리 중 학생들을 무시하지 않고 그들의 능력을 믿어주는 것을 충실하게 지켰으며 판을 펼치면 끼어들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여유 있게 기다렸다. 실패나 성공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 과정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느끼기를 바랐다. 생각나는 대로 말해도 좋은 분위기를 통해 저절로 배움의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 느리게 가는 시간을 초조해하지 않는 것, 화요일 목요일이면 만나는 수업 시간의 좋은 기억이 내 몸에 쌓이는 것을 충분히 느끼고 표현하는 것 정도가 내가 한 일이었다. 여전히 만 바라고는 강한 나르시시즘이 드러날 때면 라는 것을 버리고 우리를 만나라는 말은 자주 했던 것 같다. 이번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처럼 살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스님의 말을 빌리면서……학생들은 서서히 성과주의 사회를 살아오면서 온몸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고 서로를 만나가고 서로의 존재를 축복하기 시작했다. 함께 반찬을 만들어 나누어 먹으며 느슨한 관계로 만나고 서로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조금씩 도우면서 넉넉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초창기로 정신없는 마을 방과후 학교에 가서도 아이들과 만나서 즐겁게 놀아주고 서로를, 또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만나가기도 했다. 이른바 명문대 사회과학 기초 수업에서 우리가 한 것은 예전에 내가 초등학교때 했던 협동 수업과 비슷한 것이었다.

 

시장이 질주하는 판이 만들어내는 강박과 불안증은 호락호락한 적이 아니다. 그 판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고 그것을 상상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혼자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혼자라는 것은 정말 무기력한 것이다. 그러나 친구를 가져본 사람, 존경하는 선생님을 가져본 사람, 도구적 사랑이 아닌 진정한 사랑과 우정을 경험한 사람은 강박과 불안증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자신의 두려움과 떨림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고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우애를 경험하면서 비로소 돈벌이 경제를 포괄하는 살림살이 경제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동료를 만나고 마을을 만들어갈 의욕을 조금씩 갖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자기 안에 머물고 있던 생각을 말로 만들어가는 것이 습관이 되고 그래서 자신이 살아갈 문화적 환경을 스스로 바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서로 조금 폐를 끼치며 사는 삶이 잘 사는 삶이라는 것, 상호 호혜적 삶의 비중이 높은 삶일수록 안정적이라는 것을 알아가기를 바란다. 나는 이런 것들이 바로 지금 학생들이 해봐야 할 지속가능한 삶의 탐구이고 사라진 사회를 다시 불러들이는 사회과학적 실천이라 생각한다.

 

학교란 바로 스승이 있고, 함께 일을 도모할 친구들이 있는 곳이다. 돈보다 명예와 존경이 앞서는 곳이고 서로를 존경하고 고양시키는 관계가 꽃피는 곳이다. 따뜻하고 즐거운 학습에 대한 기억은 어려운 시대를 견디게 만들고 평생을 통해 세상의 모든 생명에게도 예의를 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키워내는 곳이다. 보다 현실적으로 말한다면 적어도 전체주의의 망령에 자신의 영혼을 내주는 일은 안 할 만큼의 사고력과 사회에 대한 책임성을 학습하는 곳이다. 나는 이런 교실들이 기존의 학교안에서만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활발하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미황사에서 열린 청년 출가학교에 강의를 하러 갔었다. ‘가출이 아니라 출가를 생각하는 이들 20대 청년들은 멘붕의 시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세상을 원하고 있었고 그를 위해 기꺼이 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89일 절에서 수행과 학습을 끝낸 학생들은 스승이 있고 함께 가는 반이 있고 자연의 품속에서 진행된 출가 학교야 말로 자신이 가졌던 학교 중 가장 훌륭한 학교라고 말했었다. 절에서 출가학교를 마련하듯 겸허하게 신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고향을 떠난 이들이 다시 모여 고향을 만드는 마을 어린이 집이나 작은 도서관에서, 함께 밥을 나누는 옥상텃밭이 있는 연립 주택 공동 베란다에서, 이런 저런 사회에 필요한 일을 벌이는 협동조합원들의 사무실에서 새로운 시대의 학습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미 교실이 그런 여러 곳으로 돌아오고 있다.

 

온통 시장판이 되어버린 듯한 대학이지만 그래도 나는 교실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시장바닥이 된 대학을 떠나는 것에 내심 홀가분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삼십 여년 정든 교실과 이곳에서 만난 학생들을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 남아 있는 이들이 그곳을 다시 우정과 환대의 장소로, 배움의 장소로 거듭나게 하기를 기도할 것이다. 인간이 신의 자리에서 내려와 겸손한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배움의 즐거움으로 환히 빛나던 교실의 학생들이 그립다. 우리가 나누었던 일시적 자율공간에 대한 기억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삶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이 책은 사람답게 만들어준 아름다운 교실에 대한 기억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드리는 작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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